이병오 강원대 명예교수

[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장자’에 보면 '임금님과 새' 이야기가 나온다. 옛날에 중국의 한 임금님이 바닷새를 좋아해 궁궐에 데려다가 키웠는데 사람들은 새를 위한다고 귀한 음악을 들려주고 맛있는 고기반찬을 줬지만 그 새는 낯설어하며 슬퍼하다가 3일 만에 죽었다는 이야기다. 이는 우화(寓話)이지만 우리가 동물복지를 생각할 때 인간의 관점이 아니라 동물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방향을 시사해 준다. 
 

동물복지의 목표나 기본 사고방식에 충분히 동의한다고 해도 이를 실천하는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그래서 동물복지에 관한 국제기준을 설정하고 추진하는 국제수역사무국(World Organization for Animal Health, WOAH, 182개 회원국)에서는 ‘WOAH 코드’(총 15부 중 제7부가 동물복지 편. 제7부는 14장으로 구성되는데 축종별, 기능별(수송·도축·질병관리·살처분 등))를 규정하고 실천을 독려하고 있다. 
 

동물은 우선 다음 5가지(배고픔·목마름·영양불량 해소, 공포·고뇌 해소, 신체적·열(熱)로 인한 불쾌 해소, 고통·상해·질병 해소, 통상의 행동 양식 발현)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 이를 위해 가축은 적절한 사양관리(매일 관찰·기록, 세심한 관리, 양질의 사료·물 급여 등)가 이뤄져 스트레스를 덜 받고 질병이 감소하며 그 가축이 본래 가지고 있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해 비로소 양호한 동물복지 실현됐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동물복지를 추진해 나가다 보면 다음 사례와 같은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곤 한다. 멧돼지 등 야생동물이 산촌의 농작물을 먹어 치우거나 농지를 훼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한 멧돼지를 통해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확산되거나 야생조류를 매개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HPAI)가 전파되면 대규모 살처분이 이뤄진다. 이럴 경우 해당 농가는 물론 정부에 막대한 재정적 피해를 주게 된다.
  이미 우리 식생활의 많은 부분이 동물성 식품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가축의 사육방식은 축산의 한 형태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급격한 사육방식의 변화는 산업에 큰 혼란을 초래하게 된다. 동물복지는 토지와 관련성이 깊어 우리와 같이 작은 땅덩어리에 많은 인구가 사는 나라에서는 그 제약이 더 크다. 자기 땅이라 하더라도 축사 간 거리를 충족시키고 지자체 와 인근 농가로부터 허락을 받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2021년 유럽연합(EU) 국가들은 산란계를 기존의 케이지가 아닌 개방형으로 키우도록 하자는 안을 WOAH 총회에 제출했으나 미국, 캐나다, 일본, 아프리카 등 여건이 다른 나라들이 반대해 채택되지 않았다. 2021년 조사결과에 따르면 케이지 사육 비율은 독일 6%, 프랑스 36%, 미국 72%, 일본 94%로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다.
 

산란계의 복지향상을 위해 개방형까지 가지 않고 케이지 면적만 약간 넓힌다고 해도 당장 사육 마릿가 줄어야 하고 계란 총생산량이 줄어 가격이 오르게 된다. 계란은 서민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섭취할 수 있는 유일한 단백질 공급원인데 계란 가격이 올라 그들이 계란을 적게 섭취하고 궁극적으로 건강을 훼손한다면 이는 동물복지와 사람복지가 충돌하는 사태를 초래하게 된다. 
 

신선 계란은 쉽게 망가지고 유통기한이 짧아 대부분의 국가에서 자급자족을 하고 있다. 가격이 올랐다고 해서 쉽게 사 올 수도 없고 수출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나라도 별로 없다. 더욱이 동물복지의 조건을 충분히 갖춘 나라에서만 계란을 수입하고자 한다면 수입은 더욱 어려워진다. 
 

우리의 동물복지 수준은 선진국들과 비교할 때 아직 시작 단계라고 여겨진다. 나라마다 사육 여건이나 소비자의 요구 수준도 다르다.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동물복지의 여건을 개선하고 수준을 향상시켜 나가야 하겠지만 제반여건을 고려해 내용과 속도를 조절해 나가는 것이 훨씬 실현 가능성이 높고 지속가능한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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