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교 GS&J 인스티튜트 원장

[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세계적 흐름 맞춰 수산자원 관리 기준으로 재분류해 WTO 엄격 통보 규정 대비해야

농업분야서 향후 우리나라 약속이행은 개도국 아닌 선진국으로 의무 이행해야

지난달 26일부터 29일까지 아랍에미리트의 수도 아부다비에서 제13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개최됐다. WTO 다자협상이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지긴 했으나 그래도 농수산부문만큼은 이번 WTO 다자협상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미래의 우리나라 농수산 보조 정책의 운용이 이번 협상 결과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당장 어떤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상의 관심과 관계없이 WTO 농업협상과 수산보조금 협상은 조금씩 앞으로 나가고 있으니 평소에 조금의 관심은 둬야 한다는 말이다. 
 

가장 큰 걱정은 수산보조금 협상이다. 지난 2022년 6월 12차 WTO 각료회의에서 불법 어업이나 남획된 어종에 대한 보조는 금지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각료회의에서는 그 당시 논란이 심해 미뤄뒀던 과잉어획과 과잉어획 능력에 기여하는 수산보조금 철폐 여부를 다룬다. 최근 발표된 수산보조 합의안은 과잉어획과 과잉어획능력에 기여하는 보조금을 예시하고 이를 금지하고 있다. 특히 어선의 유지관리나 현대화를 위한 보조금이 여기에 해당되어 자칫 우리의 수산보조 정책의 운용이 WTO 수산보조금 규정의 제약을 받을 수 있다.

뿐만아니라 우리나라가 수산보조금을 많이 주는 세계 10대 국가에 속할 가능성이 높고 이에 따라 엄격한 보조금 통보 의무를 이행하게 될 수도 있다. 물론 개도국에 주는 혜택의 정도를 놓고 선진국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어 최종 합의에 이를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그렇지만 세계 수산업이 지속 가능한 발전의 관점에서 수산자원의 관리를 중시해 자원관리를 잘하면 보조금 철폐에서도 일정한 예외를 인정해 주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세계적 흐름을 맞춰 기존 수산 보조를 수산자원 관리를 기준으로 재분류하여, WTO의 엄격한 통보 규정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농업은 지금까지의 협상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논의되는 이슈마다 참가국들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바람에 이번 각료회의에서도 특별한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인도주의적 목적의 식량원조에 대해서 수출제한을 하지 말자는 내용조차 "일부 국가의 반대 때문에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다른 이슈에 대해서는 합의 도출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능히 짐작이 간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관심을 거둘 수는 없다.

각료회의 직전 발표된 농업분야 합의안에 우리가 민감하게 생각하는 농업보조 감축과 관세감축에 대한 구체적인 방식인 모델리티를 제14차 각료회의(2026년으로 짐작)까지 도출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만일 제14차 각료회의까지 농업분야 모델리티가 합의된다면 이후 협상은 합의된 모델리티에 따라 작성된 이행계획서를 다자적으로 검증하면 끝나기 때문에 긴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농업분야에서 향후 우리나라의 약속이행은 개도국이 아닌 선진국으로서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선진국의 의무는 당연히 개도국일 때보다 보조나 관세의 감축폭이 크고 예외 인정도 거의 허용되지 않는다. 농업 부문의 고령화와 일손 부족으로 향후 현 수준의 농업생산 마저 유지가 쉽지 않은 한국 농업이 처한 현실을 감안할 때 설령 당장은 영향이 없다고 해도 사전 준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다양한 예상 시나리오를 설정해 보조나 관세 감축에 대비한 철저한 준비가 돼 있어야 지금의 국내 농업정책도 안심하고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WTO가 신뢰를 잃었다고 해도 여전히 농업무역과 수산보조를 관장하는 세계기구다. 우리도 조금은 관심을 둬야 한다.

저작권자 © 농수축산신문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