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급불균형·경영부담은 여전…생산비 절감대책·업계 계획생산 필요

[농수축산신문=김신지 기자]

생산자와 유업체간 팽팽한 입창차를 보이다 극적으로 타결된 용도별 차등가격제가 시행된 지 1년이 지났다.

용도별 차등가격제는 지난 한 해 동안 저렴한 가격으로 가공유용 원유를 공급하고 변화하는 국내 소비 트렌드에 발맞춰가는 첫 단추를 끼웠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더불어 수급불균형, 유업체의 분기별 총량제 도입 등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시행 1년을 맞아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용도별 차등가격제의 추진현황과 과제를 톺아본다.

# 용도별 차등가격제, ‘걱정 반·기대 반’

국내 원유 가격은 시장논리가 아닌 원유 생산비와 소비자 물가를 반영해 가격이 결정되기 때문에 유업계에서는 수급불균형에 따른 용도별차등가격제의 필요성을 계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이에 용도별 차등가격제는 2021년 낙농산업 발전 위원회 제3차 회의에서 본격적인 협의가 시작됐고 많은 논란을 거쳐 이듬해인 2022년 11월에 낙농제도 개편 세부 실행방안이 합의, 지난해 1월부터 시행됐다.

현장에서는 지난 한 해 동안 시행한 용도별 차등가격제에 대해 기대와 걱정이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낙농육우협회의 한 관계자는 “현재 시행되고 있는 제도에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원유 가격 협상 구조”라면서 “원유 수급상황이 정상이더라도 원유 가격 협상 시 원유생산비 인상분에 대해 100% 반영할 수 없어 앞으로 계속 이런 구조로 협상이 진행된다면 농가는 적자가 날 수 밖에 없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에 대해 낙농진흥회의 한 관계자는 “지금 시점에서는 우리나라가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도입했다는 것에 대한 선언적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며 “2026년부터 미국과 유럽 우유가 무관세로 수입되기 때문에 그 전에 농가에게 원유를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가격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라고 밝혔다.

# 용도별 차등가격제, 형평성 문제 제기

용도별 차등가격제는 국산 원유로 생산하는 유제품의 국내외적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음용유용 원유보다 저렴한 가격의 가공유용 원유를 생산자들이 유업체에 제공하도록 하는 정부 차원의 낙농 지원사업 제도로 대부분의 낙농 선진국이 이 제도를 운영 중에 있다.

낙농진흥회는 올해부터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시행함에 따라 현재 분기 총량제를 적용해 원유 가격을 지불하고 있다. 낙농진흥회가 채택하고 있는 분기 총량제는 분기마다 집유된 전체 원유량을 조사해 개별 낙농가에서 집유한 원유량에 대해 음용유용 비율을 적용하지 않고 전체 원유량에서 음용유용 비율을 적용하고 있다. 따라서 조사된 전체 집유량이 음용유용 비율을 넘지 않는다면 농가들에게 음용유용 비율에 해당하는 원유 가격을 되돌려주고 있다.

하지만 유업체들은 예산상의 문제를 이유로 낙농진흥회의 분기 총량제를 적용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전체 집유 물량에 대한 분기 총량제가 아니라 낙농가 개개인에 대한 분기 총량제를 적용 중이다.

이에 대해 낙농가들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타 유업체들도 낙농진흥회와 같은 방법으로 분기별 총량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형평성 문제는 다른 곳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시행하고 있는 용도별 차등가격제는 유업체들이 참여 여부를 취사 선택할 수 있어 또 다른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빙그레와 서울우유협동조합은 이러한 부분을 이유로 지난해 용도별 차등가격제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의 한 관계자는 “용도별 차등가격제는 법이 아니라 제도일 뿐”이라며 “유업체들에게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강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지난해 용도별 차등가격제에 참여하지 않은 빙그레는 올해부터 참여의사를 밝히며 “국내 낙농산업의 발전을 위해 시행한 용도별 차등가격제의 필요성을 느끼며 동참 의지를 갖게 됐다”며 “앞으로 제도가 잘 정착되길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한편 용도별 차등가격제의 쿼터는 2년마다 조정되며 농식품부는 음용유용의 비율을 줄이고 가공유용의 비율을 증가시키는 것을 목표로 계획 중이다.

지난해 용도별 차등가격제의 쿼터는 205만 톤으로 195만 톤의 음용유용과 10만 톤의 가공유용으로 결정됐으며 이 물량은 지난해와 올해 2년 동안 유지된다. 내년과 내후년 적용되는 물량은 올해 물량 조절 협의를 통해 정해질 예정이다.

# 용도별 차등가격제 시행에도 수급불균형 여전

용도별 차등가격제 시행의 가장 큰 목적은 국산 유제품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고질적인 국내 낙농업계의 수급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업계에 따르면 용도별 차등가격제 시행으로 수급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는 아직 요원한 상황이다.

지난해 음용유용 원유의 추정 생산량은 193만 톤으로 지난해 국내 흰우유 소비량 약 170만 톤을 제외하면 23만 톤 가량이 남는다. 유업체는 이 23만 톤의 물량을 음용유용 가격으로 구매해 가공유로 생산, 국산 원유값의 절반인 국제분유를 사용해 만든 가공유와 경쟁해야 한다.

용도별 차등가격제 시행으로 음용유용의 비율이 전체 쿼터의 90%가 넘어가던 것에 비해 현재는 88.6%만을 음용유용 가격으로 지불해 유업체의 원가 절감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유업체의 경영적 부담은 아직 존재한다.

하지만 낙농가들은 농가 운영을 위해선 본인이 보유하고 있는 쿼터대로 생산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낙농가들은 보유 쿼터에 따라 원유를 생산하고 유업체는 이에 맞춰 필요 이상의 물량을 사들이는 상황 속에서 낙농선진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인해 값싼 유제품들이 국내로 유입되고 국내 소비 기반이 약화되는 사태가 벌어진 만큼 유업계에서는 용도별 차등가격제가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보고 있다.

낙농진흥회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수입 유제품과 가격 경쟁을 할 수 있어야 소비 기반이 강화되고 이것이 결과적으로는 농가의 원유 재생산 기반을 마련하는 길”이라며 “지난해는 생산자와 수요자들이 용도별 차등가격제에 적응하는 해였다면 올해와 내년, 2026년까지 3년 동안은 실질적인 용도별 차등가격제의 효과를 만들기 위해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고 전했다.

# 원유생산비 절감을 위한 제도적 장치 필요

낙농업계의 전문가들은 성공적인 용도별 차등가격제 시행을 위해서는 낙농가들의 원유생산비 절감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흰우유를 사기 위한 가격 지불 의향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낙농업계의 한 관계자는 “원유생산비 증가로 인해 원유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게 되면 유업체가 판매하는 판매가도 같이 상승하게 되고 유통업자 또한 비용을 높인다”며 “소비자입장에서는 이렇게 가격이 올라간 국산 우유와 수입 유제품을 비교할 수 밖에 없고 결국 값이 싼 수입 유제품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구조로 정부의 제도적 장치 마련과 지원책 강구가 시급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 낙농업계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는 ‘계획 생산’

다른 나라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고 있을까. 우리나라와 가까운 일본은 현재 계획 생산을 적용 중이다. 일본은 ‘제이-밀크(j-milk)’라는 기구에서 일본의 모든 유업체에게 원유 수요량을 받은 뒤 j-milk에서 예측한 원유 수요량과 비교해 일본낙농협회(JDC, japan dairy council)와 한 해의 원유 생산량을 협의하고 JDC에서는 j-milk와 협상한 물량을 낙농가에게 배분한다.

낙농 선진국인 캐나다 또한 1967년부터 음용유용과 가공유용, 두 가지의 쿼터로 나눠 원유를 생산하기 시작해 현재는 용도를 총 6개의 클래스(class)로 나눠 계획 생산을 하고 있다.

풀링 제도(milk pooling)로 불리는 캐나다의 계획생산은 유업체는 원유를 용도별로 가격을 지불하고 캐나다 낙농생산자 기구(MMB)는 유업체가 지불한 용도별 가격을 합해 균등하게 개별 낙농가에게 지불한다. 

하지만 현재 국내 원유가격 결정구조를 살펴보면 이들과 확연히 다른 점이 존재한다. 바로 유업체가 빠져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낙농진흥회 관계자는 “풀링 제도를 국내에 도입해 계획 생산 체계를 구축하고 수요를 예측할 수 있어야 앞으로 줄어드는 소비량과 끊임없이 수입되는 유제품에 맞서 국산 우유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며 “용도의 세분화를 통해 원유가격이 다양해진다면 유업체와 생산자 모두가 만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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