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고강도 감사…협동조합 정체성·자율성 훼손 우려
농업·농촌 위한 역할 확대 필요…경영개입 중단 촉구

[농수축산신문=이한태 기자]

 

농업인 협동조합으로서의 정체성이 약화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농협은 최근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지배구조 등에 대한 강도 높은 감사를 받고 있다. 농협금융지주와 농협은행에 대해 배당과 농업지원사업비(농지비)가 과도하지 않고 적정하게 부과되고 있는지 따지겠다는 것인데 농협의 지배구조를 겨냥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협동조합의 정체성과 자율성마저 훼손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는 ‘농업인의 자주적인 협동조직을 바탕으로 농업인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농업의 경쟁력 강화를 통해 농업인의 삶의 질을 높이며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농협법 제1조이자 농협의 존재 이유를 위한 수익센터로서의 농협금융이 걸어온 길을 자본의 논리로 적절성을 따지겠다는 것으로 해석돼 논란이 일고 있다.

 

# 주주가치 제고하라면서 배당 과하다?

최상목 부총리겸 기획경제재정부 장관은 지난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자본시장 선진화 전문가 간담회’를 주재했다.
최상목 부총리겸 기획경제재정부 장관은 지난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자본시장 선진화 전문가 간담회’를 주재했다.

금감원은 최근 농협금융지주와 농협은행에 대해 강도 높은 감사를 실시했다. 농협금융의 배당이 과하고 농지비를 별도로 부과해 자본의 적정성과 건전성을 훼손시킬 우려가 있어 살피겠다는 것이었다.

이번 감사는 주주인 농협중앙회에 대한 배당과 농지비 부과가 적절한지에 대해 따지겠다는 것인데 과거에도 금감원은 금융시장의 불확실성 등을 이유로 농협은행에게 단순자본비율을 높일 것을 여러 차례 주문한 바 있다.

농협금융지주에 따르면 농협금융은 2022년 농협중앙회에 6750억 원을 배당하고 농지비로 4504억 원을 납부했으며, 지난해에는 6750억 원을 배당하고 농지비 4927억 원을 납부했다.

주주의 배당률 의결권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과연 배당이 과하다는 비판이 적절한가에 대해 따져볼 필요가 있다. 소위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자본시장 선진화를 강조하고 있는 금융당국은 최근 자본시장 발전을 위해 주주환원 확대를 통한 주주가치 제고를 주문하고 있으며 국내 4대 금융지주 역시 이에 발맞춰 배당성향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최상목 부총리겸 기획경제재정부 장관은 지난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자본시장 선진화 전문가 간담회’에서 “정부는 우리 증시의 저평가를 해소하고 자본시장을 한 단계 발전시키기 위해 주주가치 제고,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 수요기반 확충의 세 가지 축으로 정책대응을 강화하고 있다”며 법인세와 배당소득세 부담 경감을 약속했다.

이에 국내 4대 금융지주는 주주총회에서 주주환원율을 최대 50%까지 높이는 것을 목표로 일제히 주주환원율을 상향해 발표했다. KB금융지주 주주환원율은 37.5%, 신한금융지주 36%, 하나금융지주 33%, 우리금융지주 33.8%로 전년 대비 적게는 6%포인트 많게는 9.6%포인트나 상향했다. 특히 당기순이익 중 배당금으로 나가는 비율인 배당성향도 KB금융 25.3%, 신한금융 24.87%, 하나금융 28.64%, 우리금융 29.82% 등 30% 안팎으로 올렸다. 이는 농협금융의 배당성향 30%(최근 5개년 평균 26.07%)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수준이다. 게다가 상장사들이 주가를 통해 가치를 높인다는 점을 감안하면 농협금융의 배당이 지나치다고 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 배당·농지비 지원해도 바젤Ⅲ기준 충족

지난 2월 농협금융이 공시한 지난해 경영실적 현황 중 자본적정성 내용 발췌
지난 2월 농협금융이 공시한 지난해 경영실적 현황 중 자본적정성 내용 발췌

농지비는 ‘농협(NH)’이라는 브랜드를 사용함에 따른 사용료로 농업협동조합법(농협법) 제159조에 따라 산지유통 활성화 등 회원과 조합원에 대한 지도·지원사업의 수행에 필요한 재원 조달을 위해 부과된다.

농협금융이 2012년 농협중앙회로부터 분리돼 출범하기 전 신용부문으로 있으면서 연간 4000억~5000억 원가량을 부담하던 공통관리비, 지도사업비 등이 사업구조 개편을 거치면서 지금의 농지비가 된 것이다. 무려 10여 년 전 부담 규모와 비교해도 크게 과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농업계나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등에서는 농지비를 인상해 농협의 지도·지원사업과 경제사업 활성화에 보다 많은 자금이 투입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실정이다.

배당과 농지비가 농협금융과 농협은행의 자본 적정성과 건전성을 심각하게 위협하는가에 대해서는 금감원의 ‘은행지주회사 및 은행 BIS(자기자본비율)기준 자본비율 현황’ 자료를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금감원은 지난해 12월 “9월 말 기준 28개 국내 금융지주와 은행의 평균 BIS기준은 보통주자본비율이 12.99%, 기본자본비율은 14.26%, 총자본비율은 15.56%, 단순기본자본비율은 6.6%로 모든 국내 은행이 규제비율을 상회한다”고 설명했다.

당시 농협금융과 농협은행의 보통주자본비율은 각각 13.13%와 16.08%였으며 기본자본비율은 14.67%와 16.77%, 총자본비율은 15.95%와 18.67%, 단순기본자본비율은 5.04%와 4.8%였다. 농협금융과 농협은행은 단순기본자본비율이 평균에 미치지 못했지만 BIS 규제비율인 보통주자본비율 7%, 기본자본비율 8.5%, 총자본비율 10.5%, 단순기본자본비율 3%는 충분히 충족시켰다.

지난 2월 농협금융은 자본적정성과 관련해 “바젤Ⅲ기준 지난해 그룹은 BIS비율 15.87%·기본자본비율 14.48%·보통주자본비율 12.88%를, 은행은 BIS비율 18.3%·기본자본비율 16.41%·보통주자본비율 15.43%를 예상한다”며 “전략적 자본관리와 위험가중자산 적정 성장 모니터링 강화로 안정적 자본관리를 강화해나가겠다”고 공시했다.

 

# ‘농협 경영 개입 과하다’ 비판도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번 금감원의 감사가 농협에 대한 지나친 경영 개입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NH투자증권 대표이사 인선과 잇따른 농협금융 계열사의 사고 등을 빌미로 농협에 꼬투리를 잡아 길들이기를 하려 한다는 것이다. 특히 농협이 농업·농촌·농업인을 위한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경제지주와 금융지주에 대한 농협중앙회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고 요구하기도 한다.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는 지난 20일 ‘금감원 줄세우기식 농협 경영 개입 당장 중단하라’ 성명서를 통해 “금감원은 농협 금융계열사의 사고가 지배구조와 연관이 있는지 중점적으로 조사하면서 마치 농협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의 부재가 문제의 원인인 양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며 “농협은 농업인 조합원의 출자를 통해 설립된 국내 유일의 금융기업으로 관련 수익은 마땅히 농업·농촌 발전을 위해 활용돼야 하고 이러한 이유로 농촌 현장에서는 오히려 양대지주에 대한 중앙회의 직권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만큼 금감원은 농심을 외면하지 말고 농협 경영 개입을 당장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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