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자·소비자 보호…법률 규제 아닌 생산자 교섭력 강화로 대응해야

뱀장어 위판의무화가 오히려 시장 왜곡
생산자·유통인단체 간 협의 통해 가격 책정

해수부, 위판의무화 시행하고도 장외거래 사실상 방치
수협, 안전성 관리·출장경매 약속 어겨
해수부·수협, 산지 조직화 나서야

[농수축산신문=김동호 기자]

오는 7월이면 뱀장어의 위판의무화가 시행 6년을 맞이한다. 20161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수산물 유통의 관리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하 수산물 유통법)’은 거래 정보가 부족해 가격교란이 심한 품목으로 해양수산부령으로 정하는 수산물은 위판장 외의 장소에서 매매 또는 거래해서는 안 되도록 규정했다. 이에 따라 해수부는 뱀장어를 위판장 외에서 거래할 수 없는 품목으로 지정했고 이후 2차례에 걸친 규제 재검토에도 여전히 존속되고 있다.

뱀장어 위판의무화 제도 도입에 따라 드러난 문제점에 대해 짚어본다.

 

# 가격안정효과는 글쎄

뱀장어의 위판이 의무화된 것은 가격교란을 막고 산지가격을 안정시킨다는 것이 그 목적이지만 실제로는 가격의 변동성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수산업관측센터의 관측통계에 따르면 20157월부터 제도 시행 이전인 20186월까지 3년간 가격을 보면 1kg3미 기준으로 22100원에서 4600원까지의 등락폭을 보였다. 이같은 차이는 제도가 시행된 이후에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20187월부터 지난 2월까지의 기간에서 가격이 가장 낮았던 시기는 202012월로 1kg3미 기준 17500원이었으며 가장 높은 가격은 202064만 원을 기록, 제도 시행 이전에 비해 오히려 가격의 등락폭이 컸다. 가격교란을 막고 산지가격을 안정화한다는 목표가 무색한 상황이다.

물론 실뱀장어의 입식량과 양성량에 따른 가격의 등락은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가격의 편차로만 볼 때 위판 의무화가 산지가격을 안정시키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 시장 왜곡 시키는 위판의무화

뱀장어 위판의무화 제도가 시장을 오히려 왜곡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산물 유통법은 뱀장어를 위판장에서 거래하도록 한 것이지 가격을 특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업현장에서는 생산자단체와 유통인단체 간 협의를 통해 가격을 특정함으로써 어업인 개인의 가격협상 권한을 사실상 박탈하고 있다.

민물장어양식업계에 따르면 생산자협회 등은 가격과 관련된 내용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꾸준히 발송해왔다. 실제로 지난 19일에는 어제 협의된 가격을 지키기 위해 위반한 행위를 한 생산어가나 중도매인이 있다면 그 실태를 공개하겠다가격을 먼저 내려 제시해 자기 것부터 판매한 생산자나 소비가 위축돼 판로가 없다며 단가를 낮춰 유도한 중간상인이 있다면 제보해 주시기 바란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가 발송됐다.

한국민물장어생산자협회는 지난달 13소비가 둔화돼 시장가격을 하락시킨다는 논리는 이유가 될 수 없다가격교란을 조장하는 중도매인과 생산자가 있을시 생산어가의 권익을 해치는 행위로 간주해 강경조치할 것임을 말씀드린다는 메시지를 발송했다.

20214월에는 민물장어양식수협이 오늘 유통상인과 생산자협회 협의는 월요일부터 우리 수협에서 지키고자 했던 가격이 아니며 생산자협회는 우리 수협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합의를 해버렸다우리 수협은 지난 월요일부터 조합장 이하 전 직원이 출장해 유통위원회에서 협의된 가격을 절대 고수하고자 했으며 내일부터도 가격을 유지할 것임을 알려드리니 이점 유의하여 주시기 바란다는 메시지를 발송했다.

이같은 메시지들을 보면 뱀장어의 위판의무화가 오히려 시장을 왜곡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각 경영체의 경영여건이나 품질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률적인 가격을 제시하고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제재를 가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 손 놓은 해수부

해수부는 수산물 유통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뱀장어를 위판의무화 대상 품목으로 지정했지만 그 이후 관리에는 사실상 손을 놨다.

현행 수산물 유통법은 위판장 거래가 의무화된 품목을 위판장이 아닌 곳에서 거래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해수부는 제도 시행 이후 위판의무화 품목의 장외거래를 단속하지 않고 있으며 장외거래 관리 방안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주산지 이외의 장소에서 거래되는 뱀장어의 판로 문제에도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뱀장어는 전남과 전북지역이 양어장이 밀집된 주산지이지만 경기, 충청, 경상, 제주, 부산 등 대부분의 지역에서도 양어장이 운영되고 있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경기지역이 연간 600여 톤, 강원 100~200여 톤, 충남지역이 400~500여 톤, 경남지역이 400여 톤을 생산한다. 현재 뱀장어를 위판하는 수협이 민물장어양식수협과 고창군수협, 영광군수협 정도에 그친다. 이는 현행 수산물 유통법대로라면 전남·북이 아닌 지역의 어업인들은 직접 판매하지 않을 경우 판로가 거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해수부는 전남·북 이외의 지역에서 위판이 이뤄지고 있는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2025년 규제 재검토 시기까지 효과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 책임지지 않는 수협

뱀장어 위판의무화를 둘러싼 여러 문제점들이 드러났지만 위판의무화를 주도한 민물장어양식수협은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민물장어양식수협은 일부 품목의 위판을 의무화할 수 있도록 규정한 수산물 유통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도록 한 주역이다. 당시 민물장어양식수협은 위판의무화를 통해 산지가격을 안정화하고 조합을 통해 계통출하되는 뱀장어는 철저한 안전성 검사를 거쳐 국민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위판장이 설치되지 않은 지역에도 현장 출장경매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같은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민물장어양식수협은 위판의무화 이후 위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자체적인 안전성 검사를 제대로 실시하지 않은 채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과 지자체가 시행하는 양어장에 대한 안전성 검사로 갈음하고 있다. 제도 시행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는 검사다. 또한 전남·북을 제외한 지역으로의 현장 출장경매 역시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남·북을 제외한 지역의 양만어업인들은 언제든지 범법자가 될 수 있는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다.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민물장어양식수협 등은 이제 해수부에 민물장어의 위판의무화를 시행규칙이 아닌 법률에 규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규제 아닌 생산자 교섭력 강화로 대응해야

수산업계의 전문가들은 뱀장어 위판의무화에 대해 법률에 의한 규제가 아니라 생산자들의 교섭력 강화로 대응해야한다고 지적한다. 위판의무화가 상인들에 의한 가격교란을 억제할 수 있는 수단은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원칙적으로 위판의무화가 시장경제의 기본적인 원칙에 위배되는 제도인만큼 생산자와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해야한다는 것이다.

이 일환으로 생산자들의 교섭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해수부와 수협이 어업인의 조직화에 나설 필요성이 제기된다. 유사한 사례로 농림축산식품부는 우루과이라운드(UR) 이후 정책적 차원에서 산지조직화에 나서왔다. 특히 2000년 농협의 연합마케팅 사업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산지조직화 사업이 추진됐는데 목적에 따라 다양한 유형으로 사업이 이뤄지고 있다. 농업계의 사례처럼 양만업계 역시 규제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수협 또는 생산자단체 등에 의한 산지조직화를 통해 유통업계에 대응, 교섭력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류정곤 한국수산회 수산정책연구소장은 해수부는 2017년 수산물 유통법 시행규칙을 개정하며 뱀장어가 소수 중간상인의 거래정보독점으로 인해 가격교란이 심하다고 했는데 위판을 의무화함으로써 이 문제가 해소됐다고 할 수 있나라며 위판을 의무화하는 것이 생산자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하면 법률로 규제하지 않더라도 어업인들이 자발적으로 위판을 할텐데 굳이 법령을 통해 규제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양만업계의 문제는 위판이 아니라 산지의 어업인들이 교섭력이 없어 유통인들에게 휘둘리게 되는 것이 문제인만큼 어업인들이 교섭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산지조직화를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수협 역시 단순히 정부에 위판의무화라는 강도 높은 규제조치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생산자들이 만족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수협에 위판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산업계의 한 전문가도 뱀장어 위판이 의무화된지 5년이 넘었는데 정부가 위법행위인 장외거래를 단속할 수 있나라며 현실적으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위판의무화를 도입하다보니 제도가 사문화돼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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