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재협상을 앞두고 농민들이 극도로 불안해하고 있다.
쌀 재협상을 둘러싼 국내외 여건이 반드시 유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하개발의제(DDA) 농업협상이 농산물 관세를 대폭 낮추고 농업보조금도 대폭 감축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쌀 재협상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국내적으로도 쌀 시장개방불가피론이 상당한 세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어려운 여건 속에서 과연 우리나라 쌀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협상은 상대방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결과는 예단할 수 없지만 우리의 자세와 의지에 따라 매우 다를 것이다.

쌀 수출국에 있어서 쌀은 단순히 하나의 농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입장에서 쌀 수출이 느는 것은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필사적으로 매달릴 만큼 중요한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쌀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농산물이고, 협상 결과에 따라서는 그 영향이 치명적일 수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불리한 협상 여건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뒤집어보면 최소한의 양보로 쌀 재협상을 끝낼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하다.

우리는 쌀 수출국에 대해서 UR 농업협정 당시에 쌀 관세화를 유예하기 위해 다른 부문에서 얼마나 많은 양보를 하였는가를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즉 쌀 관세화 유예는 우리가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얻어낸 성과물(기득권)이란 점을 분명히 하고 당당하게 협상에 임할 필요가 있다.
또한 UR 이후 우리 농업과 농촌이 처한 심각한 상황을 설명하고, 쌀이 우리 농업과 농촌사회에 얼마나 중요한 농산물인가 하는 점을 혼신을 다해 호소할 필요가 있다.

쌀 재협상의 전망을 비관적으로 하게 만드는 이유는 국제적 여건보다는 쌀을 지키겠다는 우리의 의지가 매우 약하기 때문이다. 협상도 개시하기 전에 경제부총리는 “활발한 경제 교류와 더 나은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 쌀 개방은 이제 불가피한 시대적 선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제통상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관변 농업경제학자들은 이른바 자동관세화론을 제기하면서 교묘하게 쌀 시장개방을 유도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엉터리 국익론과 개방 논리가 보수언론을 통해 증폭되어 국민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2004년 쌀 재협상은 단순히 쌀 시장을 개방할 것이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공산품 수출을 위해서는 농산물시장 개방이 불가피하다”는 박정희 개발독재 시대 이후의 수출지상주의의 천박한 경제논리를 답습할 것인가, 아니면 농업·농촌을 살려 진정한 의미의 지역균형발전을 추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것인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박진도 충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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