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쿤 WTO(세계무역기구)각료회의 실패이후 제네바를 중심으로 협상재개의 움직임을 보였으나 위임 받은 시한인 2월15일 WTO 일반 이사회에서 카스티요 의장은 새로운 텍스트나 구체적 협상일정을 내놓지 못하고 말았다. 결국 협상자체가 지연되고 언제까지라는 기약도 하지 못하게 됐다.
이번 DDA협상의 지연으로 내년도에 있을 우리의 쌀 관세화 유예 재협상만 남게 된 셈이다.

우리는 지난 1993년 12월15일 UR 협상결과에 따라 2004년까지 재협상을 하게 되고 상대국에게는 추가적이고 수용가능한 양보를 해야 한다고 돼 있다.
최근의 국제쌀 시세는 아주 불안정하다. 특히 우리가 먹는 중·단립미의 쌀 시장은 아주 협소하기 때문에 더더욱 등락에 차가 심하다. 또한 중요한 수출국인 중국의 쌀생산이 크게 증가하고 있어 우리 쌀 시장개방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 우리는 UR이후 재협상을 대비한 국내정책을 펴지 않고 가장 손 쉬운 방법인 쌀 값 올리는 정책을 계속하여 왔기 때문에 당장 관세화 할 경우 저가 쌀의 대량 수입이 불보듯 한 실정이다.
이와 같은 어려운 국내외 여건을 감안해 내년도 재협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먼저 정부는 쌀개방에 가장 이해관계가 큰 농민단체에게 원할 경우 유예협상을 할 용의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다만 협상 상대국들이 지나친 요구를 해올 경우에는 관세화도 불가피함을 전제로 함은 물론이다. 한편 농민단체는 관세화와 유예의 이해관계를 잘 따져 결정하고 협상을 할 경우 구체적 협상조건과 내용에 대하여는 정부에 일임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우리의 재협상 절차가 WTO에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협상절차에 대한 방안을 조기에 마련하여 WTO 사무국이나 관련 주요 상대국과 협의해야 한다.
셋째로는 협상에 필요한 카드와 상대국을 설득하기 위한 다양한 논리를 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상대국이 요구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과 우리가 제시할 수 있는 내용과 그 한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넷째로는 그 동안 쌀 값을 지지해온 가격지지 정책에서 손실보전을 포함한 소득지지 정책에의 발 빠른 전환이 필요하다. 이는 장래에 대한 대비뿐 아니라 상대국에게 불가피한 경우 관세화 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이는데도 필수적이다.
끝으로 협상의 책임자에서 실무자까지 조기에 팀을 구성하여 협상이 끝날때까지 계속 하도록 해야 한다.

협상은 국가이익의 최대한의 실현이 목표이다. 그러나 일방적인 것(one way street)이 아니라 상대가 있는 법(two way street)이다. 서로 국가 이익이 있으면 협상은 이루어지게 되어 있으며 또한 가능할 수 있다고 본다.
정부는 한국 농업의 장래가 걸려있는 이번 재협상에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며 농민들은 정부가 협상을 잘 이끌어가도록 뒷받침하고 쌀사랑의 국민적 합의(Consensus)를 모으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때이다.

〈최용규 세계농정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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