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최고 사법기관인 대법원이 WTO협정 위배여부까지 판결을 해야만 하는가? 지난 9일 대법원 3부의 “학교급식에 우리농산물을 사용토록 한 조례는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위배된다”는 판결을 접하면서 이같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대법원의 판결이라는 점에서 `옳다'' `그르다''고 왈가왈부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WTO가 유권해석을 해야할 사안을 사법기관이, 그것도 대법원이 판결을 내렸다는 점에 대해서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대법원이 국제적인 규범에 대해서까지 옳고 그르다는 판결을 내린다면 시장개방확대에 따라 앞으로 증가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는 외국과의 통상문제도 법원으로 가져가야 한다는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판결을 하고, 상대국은 WTO로 가져 간다면 국내 판결은 무엇이 되나?

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농민단체는 물론 시민·사회단체까지 벌집 쑤셔놓은듯 하다. 이들 단체는 대법원 판결을 무효화하라는 요구까지 하고 있다. 어쩌다가 대법원의 판결이 믿음을 주지 못하는 지경으로 접어들었는가? 대법원의 판결이 농민·시민·사회단체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는 상황이 됐으니 실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법원은 전북도 교육청의 지자체 학교급식조례 규정에 대한 무효확인 청구소송과 관련 최종적인 판결보다는 다른 대안을 찾았어야 했다. 특히 이번 소송의 핵심적인 배경이 법률상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부 예산상의 문제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이같은 사안에 대해 대법원이 최종적인 판결을 내렸으니 앞으로 예산상의 문제가 해소되더라도 지자체 조례에 의해서는 국산농산물을 이용한 학교급식이 어려워지게 된 것이다.

차제에 정부도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예산상의 문제로 발생한 사안을 내부적으로 풀려고 하지 않고 소송사건으로 끌고간 교육당국, 그리고 이같은 소송에 WTO 규정에 위반된다며 우리 농산물의 학교급식을 반대한 당국은 과연 국민건강을 생각하고, 국내 농업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마음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와 국회는 이번 판결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이번 정기국회에서 우리농산물 사용을 명시한 학교급식법 개정안을 조속히 처리해야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국민건강을 지키고, 우리 농업도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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