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15년전인 1991년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서 식량자급율은 급격히 떨어져 이제는 대부분의 쌀 수급을 미국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미국정부의 막대한 보조금으로 생산된 싼 가격의 쌀이 밀려 들어오자 온두라스 농민들은 제대로 된 저항 한번 못해보고 자국시장을 내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 온두라스의 총 수입량중 미국산 쌀이 90%를 차지하고 있고, 이는 온두라스의 쌀 생산량을 무려 87% 가량이나 줄어 들게 만들었다.
또 1980년대 2만5000명이나 되던 농민수를 10년만에 2000명으로 급감시켜 온두라스 농민들에게는 미국과의 FTA체결이 ‘쌀 스캔들’로 기억되고 있다.
문제는 세계화로 인한 농산물무역자유화의 피해가 과연 온두라스만의 사례로 끝날 수 있을까 하는데 있다.
많은 개도국들이 미국 등 농산물수출국들과의 품질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 중국, 브라질 등 소득수준이 낮은 나라들과의 경쟁에서는 쌀 가격을 대폭 낮춰야만 하는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전세계의 농민들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파고가 거세질수록 온두라스 농민들과 비슷한 운명에 처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 미국과의 FTA ‘쌀 스캔들’로 기억
우리나라의 경우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해 쌀 협상비준안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우리나라는 올해부터 22만톤의 쌀을 수입해야 하고, 수입량은 매년 4%씩 늘려 2014년까지 41만톤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한다.
특히 이번 협상에서는 수입량의 10%를 밥상용 쌀로 시중에 유통시키도록 규정해 놓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곡간’이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완전개방이라는 관세화를 10년간 연기해 그만큼 시간을 벌어놓은 측면도 있고, 시판되는 수입쌀은 국내 총소비량의 0.2%에 불과해 시장에 미칠 영향이 미미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관세화유예기간이 끝나는 10년 뒤에는 전면개방될 가능성이 높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TO)의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결과에 따라 이보다 먼저 ‘쌀 시장의 빗장이 열릴 수 있다’는 우려가 지배적이다.
따라서 무역장벽이 너무 쉽게 무너진다거나 새로운 국제룰에 적응할 수 있는 기간이 너무 짧을 경우 쌀 산업이 함몰될 수 있다는 온두라스의 교훈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음이다.
# 우리의 ‘곡간’ 위험에 노출
현재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26% 정도에 불과한데 그나마 쌀을 제외하면 2%도 채 안되는 실정임을 고려해 볼 때 쌀은 우리나라 농업기반을 유지하는 유일한 품목인 셈이다.
더욱이 쌀을 생산해 얻는 소득이 우리나라 농업소득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고, 쌀 전업농의 경우 농가소득의 전부인 만큼 쌀 산업의 몰락은 우리나라 농업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파괴력을 가져올 수 있다.
윤석원 중앙대 교수는 “밀, 옥수수, 콩, 잡곡 등을 수입하는데 드는 비용이 매년 수조원에 달하고 있는데 쌀 마저 수입될 경우 수십조원을 쏟아 부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쌀이 지닌 의미는 단순한 경제적가치만이 아니다. 홍수방지기능을 비롯해 공기정화, 토양유실 방지, 수질정화 등 논이 지니고 있는 무형의 가치는 이루말할 수 없다.
또 쌀 농업을 통한 농업기반유지는 지역공동체를 유지시킬 수 있으며, 우리의 전통과 문화가 숨쉴 수 있는 공간으로도 제공된다.
이같은 쌀 농업이 지니고 있는 다원적·공익적기능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널리 인정되고 있으며, 선진국들은 이를 지키기 위해 많은 보조금을 쏟아 붇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의 ‘곡간’이 반드시 지켜져야 할 이유이다.
# 전통·문화 숨쉬고 있는 농촌
WTO 체제 아래에서는 자유무역을 위한 수입개방은 불가피하고, 농산물도 여기서 예외가 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양자간에 체결하는 자유무역협정은 이미 가동에 들어간 상태이고, 쌀 시장개방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또 메가톤급 통상협상인 WTO/DDA 농업협상 타결시한도 올해로 정해져 우리농업이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형국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쌀 산업을 ‘생’의 길로 인도해야 한다.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와 함께 해온 우리의 쌀 산업을 향후 10년과 바꿀 수 없다.
“온두라스의 모든 지역은 푸른색이었지만 더 이상 푸른색이 될 수 없고, 온두라스 농민은 쌀과의 모든 인연을 끊었다”는 온두라스 농민의 절규가 쌀 농업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