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12. 에콰도르의 알파카 산업
13. 콜롬비아의 농업개발과 지하경제
14. 베네주엘라의 석유와 농촌경제

콜롬비아는 미국 독립혁명에 심취해 있던 시몬 볼리바르의 이상주의의 산물이다.

카라카스의 부유한 귀족 가문 출신인 그가 스페인 유학에서 돌아와서 1808년 나폴레옹이 옹립한 스페인 국왕에 반기를 들고 남미 저항군을 조직, 1810년에 뉴 그래나다 식민지의 독립을 선언한 이래 콜럼버스의 이름을 딴 미합중국 형 ‘대 콜롬비아 공화국’은 그의 끝내 이루지 못한 꿈이 되고 말았다. 1813년 서른 살의 나이로 독립군 사령관이 되어 ‘해방자(Liberator)’로 불리면서 1819년 보야카 전투에서 승리, 1821년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고 1822년 산마르틴과 회동, 연합전선을 구축하여 1824년에 스페인군을 격멸하고 페루를 완전히 해방시켜 1825년 페루 북동부 지역을 그의 이름을 따서 볼리비아로 독립시킨 것까지는 괜찮았으나 대 공화국의 안정과 통일을 유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1828년 헌법기초를 위해 소집된 연방 의회가 결렬, 1830년 베네수엘라와 에콰도르가 분리 독립을 선언하자 대통령 직을 사임, 유럽으로 망명을 준비하던 차에 치명적인 폐결핵에 걸려 죽었으니 그 눈이 제대로 감겼겠는가? 이후 뉴 그래나다 공화국의 국호가 1868년 콜롬비아 공화국으로 최종 확정되어 이름이나마 그의 뜻대로 살기는 했으나 분열과 정치 불안이 계속되더니 결국 1940~50년대에 심각한 내전이 발발, 최소 18만이 희생된 쓰라린 역사를 기록하고 말았다.

아직도 내전이 끊이지 않아 2004년 현재 난민의 수가 290~340만명에 달하고 마약밀수와 납치, 살인이 횡행하는 무법천지로 알려진 콜롬비아의 비극은 식민지시대 이래의 전통사회가 근본적인 변화를 겪으면서 라틴 아메리카의 2중 구조에 저항한 좌파 혁명가들이 1950년대에 빈농 등 가난하고 수탈당하던 민중을 규합하여 공산 게릴라를 조직한데서 비롯되었다.

‘콜롬비아 혁명군(FARC)’으로 불리는 이 무장 집단은 정부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오지를 중심으로 세력을 확대하였으나 보고타의 중앙정부를 뒤집지는 못하고 40년이 넘게 정부군과 내전을 계속해 왔다. 자력으로 게릴라를 제압하지 못한 정부가 주민의 자위권을 인정하고 이를 지원하자 ‘콜롬비아 자위연합군(AUC)’이라는 반 게릴라 연합전선이 형성되었다. 1987년에 146개의 자위 무장집단이 있는 것으로 파악될 정도였다.

공교롭게도 이 나라가 마약의 원료인 코카(코카인)와 양귀비(아편) 재배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 불행의 씨앗이 되었다. 마약 관련 범죄조직이 이에 가세한 것이다. 반 게릴라 세력은 애초부터 마약 관련 수입을 비공식 주요 재원으로 삼았고 게릴라 세력까지도 차츰 이 수입에 의존하게 되어 이념은 간 곳 없이 그야말로 더러운 전쟁이 되고 말았다. 마약 카르텔로 불리는 국제 범죄조직의 두목들과 좌·우 양쪽의 무장세력, 부패한 정치인과 군·경 간부들이 서로 얽혀 사태가 더 복잡하게 꼬이면서 범죄뿐만 아니라 암살, 실종, 고문, 린치, 임의체포 등 엄청난 인권 유린의 현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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