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디지털 치매’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컴퓨터나 휴대폰 등 디지털 기기를 너무 의존해 기억력이 떨어지고 무기력해지는 현대질병이다.

언제부턴가 노래방기기가 없으면 노래를 한곡도 부르지 못하게 됐다. 왜냐하면 노래방기기 화면에 뜨는 가사를 따라 부르기만 하면 됐기 때문이다. PDA나 휴대폰을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전화번호가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심지어 집이나 가족의 전화번호마저 기억나지 않아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휴대폰이 없을 때는 적어도 10여개에서 수 십 개의 전화번호를 외우고 다닐 때도 있었는데 말이다.

요즘 운전을 하다보면 네비게이션을 많이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한두 번 사용해보면 그 편리함에 끊기가 정말 어렵다. 아는 길도 네비게이션이 안내해 주지 않으면 왠지 불안해 운전석에 앉으면 네비게이션 작동부터 한다.
편리한 디지털 기기가 애써 기억력을 사용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버튼 하나로 우리의 기억력과 사고능력을 다 대신해주기 때문이다.

지난달 국회 농림해양수산위는 만장일치로 ‘쌀 목표가격’을 2012년까지 앞으로 5년 동안 지금 수준인 17만83원(80㎏당)으로 묶기로 했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농업현실을 생각하면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다가올 총선을 의식한 정치인들의 포퓰리즘에 농정이 뒷걸음친다는 우려와 물가인상률, 생산비 인상률에 근거한 최소한의 조치라는 주장이 팽팽하다.

우루과이라운드 타결 직후인 1994년 반발하는 농민들에게 정
부와 정치권은 농어촌구조개선사업으로 10년간 42조원, 농특세사업으로 10년간 15조원 지원을 약속했다. 1998년 DJ정부 역시 마찬가지로 천문학적인 자금지원 카드를 꺼내 농업 경쟁력을 키워 개방에 맞서겠다고 달랬다. 참여정부는 한·칠레 FTA, 한·미 FTA 이후 119조원을 농촌·농업을 위해 할 것이라고 제시했다.

그러나 현재 농민들의 삶이 나아지고 농업경쟁력이 좋아졌다는 얘기는 별로 없다. 정부나정치권이 내미는 손쉬운 것에 익숙해진 농업인들만 남았을 뿐이다. 푼돈과 장밋빛 대책에 익숙해져 미처 경쟁력을 키우지 못한 농업인들과 손쉬운 디지털 기기에 익숙해져 디지털 치매에 걸린 현대인이 자꾸 오버랩 되는 것은 왜일까?

<엄익복 농어촌경제팀 차장>
저작권자 © 농수축산신문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