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은 후손들에게 잠시 빌려 쓰는 유한 자산이다. 우리 세대만 잘 먹고 잘 사는데 사용하는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가 쓰고 있는 땅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아 사용하고 있는 귀중한 유산임을 알아야 한다. 선조들은 흙과 음식의 맛을 동일한 방식으로 판정하였다. 흙도 음식처럼 맛을 기준으로 좋은 흙 나쁜 흙을 구분하였다. 박지원이 쓴 과농소초(課農小抄)에 보면 지력(地力)의 판별기술로 “1척 깊이의 흙을 파서 맛을 보아 단맛이 나면 상토(上土), 달지도 짜지도 않으면 그 다음이요, 짠 것은 하토(下土)”로 구분하였다. 이 방법은 현대 과학으로도 타당성이 입증 된다. 토양의 산과 알칼리 비율에 따라 떫은 맛, 짠 맛, 신 맛 등으로 흙의 맛이 다른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선조들은 입으로 흙의 맛을 보는 정성을 기울여 만든 옥토를 우리들에게 유산으로 남겨주셨다.
우리나라의 국토면적은 약 997만 ha 이다. 그러나 농경지 면적은 이중 18%인 약 176만 ha에 불과하다. 이처럼 좁은 농경지 면적을 우리 조상들은 슬기롭게 관리하여 5,000년 역사를 이어오게 하였다. 농촌의 경사지 특성을 잘 활용한 측면도 있다. 어느 지역이건 농촌마을의 공통된 특징이 있다. 마을이 있으면 마을 맨 위쪽, 산 아래에는 조상들의 무덤이 있다. 무덤 아래로는 과수원이나 밭이 있다. 밭 아래쪽에는 사람 사는 집들이 있고, 집들 밑으로는 어김없이 논이 있다. 이처럼 우리의 선조들은 지형적 특성과 용도를 고려하여 토지를 적절하게 활용할 줄 알았다. 지구상에 흙 1cm가 만들어 지는 데는 약 200~300년의 기간이 필요하다. 이처럼 우리를 지탱하고 있는 우리 농토의 흙은 수억 년에 걸쳐 만들어진 것이며, 우리 선조들이 몇 천 년을 거름을 주며 가꿔온 귀중한 삶의 터전이다. 1970년 까지만 해도 약 230만 ㏊에 달하던 농경지 면적이 현재는 약 176만 ㏊에 불과하다. 지금도 매년 16,200㏊ 정도가 주택지, 산업용지 또는 도로용지로 전용이 되고 있다.
다행히도 우리나라는 1964년부터 시작한 전국 농경지 토양조사사업, 농토배양 10개년 사업, 세부정밀토양조사사업 등을 수행하였고 그 결과를 종합하고 정보화 하여 한국토양정보시스템, “흙토람(http://asis.rda.go.kr)”이라는 브랜드 명으로 통합하여 전 국민이 사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 하고 있다. “흙토람”에서 제공하는 정보로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토양전자지도이다. 축척 1/5000인 16,620 도엽(圖葉)을 전산화 한 자료이며, 여기에는 각 필지 단위별 토양의 pH, 토성, 유기물 함량, 논-밭-과수원 토지이용 추천 등 종합적 토양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토양전자지도에서는 각 필지 토양의 속사정을 보여주는 토층 사진도 볼 수 있다. 둘째로는 토양검정 성적을 바탕으로 필지별 적정시비량과 토양 개량제 사용량 등 농가별 맞춤형 시비처방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행정단위별 농업정책 추진을 돕는 다양한 토양통계 자료를 제공한다. “흙토람”은 이와 같은 세 가지 분야의 토양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현재와 미래를 위한 농경지의 합리적 활용과 보전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매년 6월 5일은 환경의 날이다. 환경의 날에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귀중한 자산인 “흙”의 고마움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우리 모두 우리가 사용하는 농경지 토양은 잠시 후손들로부터 빌려 쓴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잠시 빌려 쓰는 민족 자산인 토지를 사용할 때 조상들의 지혜를 본받았으면 좋겠다. 논은 되도록 논으로 사용하며, 밭에는 과수와 밭작물을 심고, 집터가 될 곳에 집을 짓고, 길을 낼 곳에 길을 내던 조상의 지혜를 본받았으면 좋겠다. 지난 45년간 수만 명의 연구 인력과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여 만든 세계 유일의 초정밀 전국 농경지 관리 시스템 “흙토람”을 활용하여 조상들의 지혜를 과학적으로 발전시켰으면 좋겠다. 더 이상 벼를 심을 논에 과일나무 심어놓고 농사 망쳤다는 말은 안했으면 좋겠다. 논 가운데 집 지어놓고 물이 찬다는 불평, 벼를 심을 논 가운데로 길 닦아 놓고 침수피해 겪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정광용 농촌진흥청 농업환경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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