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은 양봉농가들에게 기억하기 싫은 한 해다.

벌꿀 농사의 약 80%에 해당하는 아카시 벌꿀 채밀이 평년 수준의 20%에도 못 미치는 등 양봉농가들이 큰 고통을 겪으며 폐업 위기에 몰렸기 때문이다.

그 후 3년간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지난해 어느 정도 회복 기미를 보였던 꿀 농사에 올해 또 다시 흉작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 Again 2004?

한국양봉협회측은 올해 꿀 농사 사정이 2004년 최대 흉작과 비슷하다고 내다보고 있다.

5월 현재 생산량이 전년도의 40%수준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이렇다 할 원인이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양봉협회는 일단 고온 현상 등 달라진 기후 조건을 꼽고 있다.

지난해에 비해 평균 기온이 높아 낮 기온이 5월에도 30℃에 가까운 기온을 보이는 등 아카시 꽃의 개화시기에 고온이 계속되면서 꽃이 더디게 자라고 꿀 분비량이 저조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아카시 나무의 잎이 노랗게 말라죽는 황화현상이 5월에도 관찰, 꿀 채밀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특히 아카시나무는 국내 꿀 생산량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어 황화현상은 그대로 꿀 생산량 감소로 이어져 양봉농가가 직격타를 맞고 있다.

# “정부대책 절실”

지난 9일 배경수 한국양봉협회 회장은 전문지 기자간담회를 갖고 “국내 양봉산업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정부에서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고온 현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산업을 위한 아무 준비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양봉산업의 존립 자체가 힘들다는 지적이다.

또 FTA 체결 등으로 경쟁이 심해질 것이 뻔한 상황에서 국내 꿀 생산량조차 적어지면 수입 꿀이 그 틈을 타고 들어올 것이고 가짜 꿀 역시 성행할 것이란 우려도 전했다.

이에 따라 배 회장은 밀원수 식재 보급을 확대하고 기후 변화에 맞는 밀원수를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등 정부의 대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양봉 농가가 현장에서 느끼는 심각성은 아주 크다”며 “정부가 밀원수를 심을 수 있는 법적인 조치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경남에서 30년째 양봉업을 하고 있는 정현조 씨 역시 “황화현상은 물론 벌도 줄어 꿀을 수확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며 “소나무 재선충병 예방한다면서 꿀 수확하는 시기에 항공방제를 강행하는 등 정부에서 양봉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소비자 신뢰 회복해야

여기에다 최근 일부 언론에서 설탕을 먹인 사양꿀이 가짜꿀로 소개되면서 꿀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이 높아진 상황이다.

일부 소비자들은 아예 꿀을 먹지 않는 것이 낫겠다는 반응까지 보이고 있다.

개화하는 꽃을 따라 채집해야 하는 어려움 없이 설탕 등을 먹여 많은 양의 꿀을 얻을 수 있는 사양꿀.

사양꿀이 저가에 유통되다보니 천연꿀이 잘 팔리지 않는 등 문제가 불거진 것은 한 두 해 전이 아니다.

여기에 최근에 방송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사양꿀이 가짜꿀로 인식되면서 ‘꿀’자체에 대한 불신이 이어지자 홈플러스와 롯데마트 등 대형유통업체는 아예 매장에서 사양꿀을 철수시켰다.

벌에게 설탕을 먹여 얻어내는 사양꿀이 진짜 꿀인지, 아닌지를 떠나 사양꿀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국내 꿀 자체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가 떨어지는 것은 분명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 업계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이와 관련 양봉협회는 지난 4일 농림수산식품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청과 협의를 갖고 벌꿀 제품 내 사양꿀 표시를 강화하기로 했다.

소비자의 알권리를 보장해주는 차원에서 업계 자율적으로 사양꿀일 경우 제품 내 사양꿀이라는 표시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사양꿀 임을 표시하지 않았을 경우 해당 업체를 공개하는 등 제제 조치도 마련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최규칠 양봉협회 사무총장은 “천연꿀인지 사양꿀 인지를 소비자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는 한편 가격은 천연꿀보다 저렴하게 책정해 선택은 소비자가 하도록 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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