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화되는 국제경쟁 속에서 농업분야 연구개발(R&D)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생산비용 절감을 위한 새로운 기술이나 외국 농산물과 차별화된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는 것은 우리 농업의 시장경쟁력 향상을 위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필요성에서 정부에서도 매년 막대한 예산을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R&D 분야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함에도 불구하고 그 성과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연구개발의 수요자인 농업인은 물론 연구를 담당하고 있는 전문가들조차 우리의 연구개발 체계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농업분야 R&D의 문제점으로는 먼저 국가연구개발 체계가 농림수산식품부 및 농촌진흥청으로 양분되어 예산집행의 효율성이 저하되고 중복 연구의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점이다. 아울러 농업분야 연구개발을 정부가 지나치게 주도함으로써 시장지향적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점이다. R&D 투자가 국가주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일부 기초연구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시장과 농업인이 요구하는 연구와는 괴리가 발생하게 된다.

연구비 배분을 국가가 주도하기 때문에 시장의 요구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고, 종종 연구자 중심의 연구개발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현재 농림수산식품부 주도로 진행되고 있는 수출연구사업단도 연구개발사업이 수출을 담당하고 있는 농업인이나 생산자단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대학 등 연구자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점이 핵심적인 문제점이다. 시장과 밀접히 연계된 수출관련 연구를 대학이 주도하다 보니 산업계의 요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문제점을 노출시키고 있다.

우리와 달리 농업선진국에서는 연구개발에 민간이 광범위하게 참여하여 시장지향적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경우 농과대학과 국가연구소가 통합하여 연구개발의 효율성을 높이고 있으며, 연구비도 국가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지원하고 있다. 기초 분야에 대해서는 국가 주도로 연구가 이루어지지만 산업 현장의 애로기술 분야는 민간투자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원예생산자위원, 축산물생산자위원회와 같은 민간조직이 거출한 자조금의 상당 부분을 연구개발비로 사용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도 농과대학 및 민간연구기관에서 수행하는 연구의 상당수가 생산자들이 납부한 자조금에 의해 지원되고 있다. 농업선진국에서는 연구개발비를 민간에서 지원함으로써 실용적인 연구개발 목표가 설정되고 연구성과에 대한 평가가 엄정해져 시장지향적 연구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를 참조할 때 우리도 지나친 정부 주도형 R&D 체계의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농업선진국 사례와 같이 농업인단체가 주도하는 연구개발이 확대되어 시장에서 요구하는 새로운 기술, 새로운 상품이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자조금 제도가 개선되어, 자조금 중 상당 액수가 연구개발에 활용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의 자조금 제도는 조성된 자조금을 참여 조합별로 다시 나누어 조합의 현안 사업 위주로 사용하는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진정한 의미의 자조금은 생산자들이 소액을 갹출해서 품목 전체의 발전에 사용하는 제도이며, 앞으로는 거출된 자조금을 참여 조합에 환원하지 않고 연구개발비 등 품목전체의 발전에 사용해야 할 것이다. 정부도 연구개발비를 단독으로 집행할 것이 아니라 일정 부분을 품목별 생산자단체에 배분하여 생산자단체가 연구과제를 선정하고 감독할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기초연구는 현재와 같이 국가가 주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현장에서 요구하는 연구는 민간 주도로 이루어짐으로써 연구의 시장지향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농업분야 연구개발의 시장지향성을 높임으로써 관련 연구의 유용성과 성과를 높이고 결국에는 우리 농업의 경쟁력 향상을 기대해 본다.

<김동환 농식품신유통연구원 원장·안양대 무역유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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