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한국 수산 생물을 최초로 총망라하여 체계적으로 분류
유학생 누구든 관심갖지 않은 수산 전공 ''''선견지명''''
- 고문헌, 어족방언 연구....팔순에 ''''한국어도보'''' 출간

정문기(鄭文基) 선생은 우리나라의 수산 생물을 최초로 총망라하여 체계적으로 분류한 한국 수산학의 원조입니다. 선생은 1898년 9월 19일 전남 순천시에서 한학자 정영숙 선생의 3형제 중 막내로 태어나 1995년 9월 27일 만 97세에 서울에서 별세하였습니다. 그분은 건강하게 장수한 이유로 ‘물고기 연구와 스포츠를 함께 한 것’을 꼽았습니다. 1983년(만 85세 때) 12월 8일자 동아일보 ‘나의 건강비결’에서 “남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어류학을 선택하여 물고기를 따라 강과 바다를 쏘다니면서 맑은 공기와 생명수를 마시고 맛좋은 물고기를 먹어온 ‘자연 운동장의 스포츠 식 공부’가 비결이었다.”고 회고하였습니다. 1968년 ‘한국수산기술협회’(당시 회장 김명년)가 발간한 ‘정문기 박사 고희기념 논문·수필집’에 그분이 직접 쓴 머리말을 인용합니다. “필자는 소학교부터 동경대학 수산학과를 졸업할 때까지 공부보다 스포츠 시간이 더 많았으나 대학 졸업 후부터는 수산학 연구시간이 스포츠 시간보다 더 많아졌다. 이는 연구논문을 발표할 때의 기쁨이 스포츠에서 우승할 때의 기쁨보다 더 크고 무게가 있을 뿐 아니라 영구히 기록으로 남아 후학들의 도움이 된다는 기쁨을 느끼는 까닭이었다.”
정 선생은 ‘순천보통학교’와 미국 선교사가 설립한 ‘은성학교(2년제 고등소학교)’를 마친 뒤 서울 ‘경신학교’ 3학년에 편입하였는데 4학년 때 전교생이 동맹휴학을 하고 4학년생 18명 전원이 ‘중앙학교’로 전학하여 졸업하였습니다. 인촌 김성수 선생이 설립한 중앙학교에 다닐 때 ‘공부와 체력관리를 병행’하고 “우리가 자주 민족국가를 만들려면 자연과학을 발전시켜야 한다. 학계에서 쉽게 두각을 나타내려면 남들이 안하는 학과를 선택하라”면서 수산분야를 권한 인촌 선생의 훈화가 그분의 가슴에 와 닿았고 그것이 그 후 일본 ‘마츠야마(松山) 고등학교’를 거쳐 1929년 동경제대 농학부 수산학과를 졸업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우리 유학생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못하였던 수산학을 전공하였으니 이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에 후일 이바지하는 바 클 것을 내다본 실로 유수(流水, 정문기 선생이 스스로 지은 호)의 선견지명이라 아니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분의 중앙학교 동기이자 평생 지기였던 일석(一石) 이희승(李 熙昇) 선생(해방 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장기간 옥고를 치룬 우리 국어 연구의 원로, 서울대 교수 역임)이 쓴 앞의 책 ‘고희기념 논문·수필집’ 서문의 일부입니다.

정 선생은 대학 졸업 직후부터 이조(李朝) 이전의 우리나라 수산에 관한 고문헌과 어족(魚族) 방언(方言) 연구에 착수하였습니다. 그분은 7순이 될 때까지 ‘조선 어명보(魚名譜)’(1934, 159종), ‘한국 어보(魚譜)’(1954, 832종), ‘한국 해조류 목록’(1955, 366종), ‘어자고(魚字考, 1959)’, ‘한국 동물도감 어류편’(1961), ‘한국 어류 연구사고(硏究史考)’, ‘어류생태학(1968)’, ‘한국 연해의 해황(海況)과 해양생물의 분포상(分布相)’ 및 ‘새로운 해양지식’ 등 10여 편의 저서와 100여 편의 논문·수필을 썼습니다. 그 이후에도 선생은 1974년에 ‘어류 박물지(博物誌)’와 정약전(丁若銓) 선생의 ‘자산어보(玆山魚譜)’를 번역 출판하였고 8순이 된 1977년에는 ‘한국 어도보(魚圖譜)’(872종, 흑백사진 2,038점, 컬러사진 600점)를 출간하였습니다. 그분은 참으로 혼신의 힘을 다하여 평생을 우리나라 수산학 연구에 바쳤던 것입니다.

정 선생은 동경제대 졸업 후 총장의 호의로 조선총독부 수산양식계장이 되었는데 몇 번 군수로 승진하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오직 수산학 현장연구에 몰두하였습니다. 그분은 1939년부터 평안북도와 인천, 목포의 수산시험장장으로 근무하였고 해방 직후 미 군정청 수산고문, 1946년 4월 부산 중앙수산시험장장, 1947년 3월 부산수산대학 학장, 7월~1948년 8월 농림부 수산국장 겸직, 1951년 2월 중앙수산검사소장으로 취임하였습니다. 1952년 ‘한국 수산학회’를 창립(초대회장), 1955년 대한민국 학술원 종신회원(어류학 부문)으로 선임, 1981년에 원로회원이 되었습니다. 1962년 부산대학교에서 명예 수산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1965년에 ‘한국 수산기술협회’ 회장, 1969~1980년 ‘한국 문화재 관리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하였습니다. 1957년 동국대 교수가 되었으며 이후 서울대, 성균관대, 경희대 등에서 강의를 하였습니다. 1955년 제 1회 대한민국 학술원상(저작상)과 서울시 문화상, 1967년 제 1회 한국수산상, 1973년 과학기술상(대통령상), 1978년 3·1 문화상과 수당 과학상 등을 수상하였고 정부는 그 공적을 기려 문화포장과 국민훈장모란장을 수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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