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수산진흥의 밑거름이 된 수산학 고문헌과 현장연구
- 日, 고사류원 물고기 관련 일목요련 정리에 감명
- 후학위해 쉽고 참고할수 있는 고문헌, 수산연구

정문기 선생은 대학 시절부터 방학 때면 우리나라 연안 해변과 하천, 호수 등을 찾아 채집여행을 다녔습니다. 졸업논문을 쓰기 위해 도서관에서 물고기에 관한 책을 찾던 중 일본의 ‘고사류원(古事類苑)’이란 책을 보았는데 이 책은 메이지 이전 일본 학자들의 저작들을 분야별, 연도별로 정리한 자료집이었습니다. 그분은 이 책을 보고 크게 감명을 받고 우리도 이렇게 선현들의 저작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후학들이 쉽게 참고할 수 있는 책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 대학 졸업 후 바로 우리 수산 고문헌 연구에 착수한 동기가 되었습니다.(이길래, ‘바다, 그 영원한 보고: 해양 도전 6인의 발자취’, 1983, 유풍출판사, 수산학계의 거목 정문기 박사 편 114~5쪽 참조)

그분이 10여 년 동안 어렵게 찾아 모은 우리 물고기에 관한 고문헌은 36권에 달했습니다. 가장 오래된 것은 1425년에 간행된 ‘경상도 지리지’ 토산부에 23종의 어류가 기록된 것이고 물고기의 분류, 형태, 습성에 관한 연구는 1805년 정약전 선생이 16년간 흑산도 귀양살이를 하면서 조사 연구한 101종의 어류와 해조류, 새우류, 기타 수산물의 명칭, 생태, 이용 등의 내용을 기록한 책 ‘자산어보’가 가장 오래된 최초의 단행본이었습니다.(정문기, ‘한국어도보’, 1977, 일지사, 6~19쪽 ‘한국산 어류의 연구사’ 참조) 이 ‘자산어보’는 해방 전 1943년 시부자와 게이조 당시 일본은행 총재(강정택 선생 편에서 소개)의 부탁으로 정 선생이 일본어로 번역했으나 결국 빛을 보지 못하였고 우리말로 다시 번역, 1974년에 지식산업사에서 출간하였습니다.

정 선생은 대학 졸업 후 조선총독부 수산양식계장으로 근무하면서 한반도 수산생물의 생태를 조사 연구하여 그 양식방법과 수산자원 번식·보호법령을 제정하는 업무와 함께 바다와 하천에 서식하는 주요 수산생물의 분류, 생태, 분포와 산란, 부화, 먹이 및 난류와 한류의 회유 등 해황(海況)을 포함한 현장 조사·연구에 몰두하였습니다. 그분은 그 결과를 바로 행정에 활용하는지라 실감과 보람을 느끼면서 우리 연안의 바다가 세계에서도 드문 다양한 물고기의 서식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의 책 ‘유수회고록’ 159~61쪽 참조)

정 선생이 당시 고문헌의 수집·정리와 물고기 이름·방언 연구와 함께 힘쓴 현장연구는 명태와 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예로부터 동해안에서 많이 잡혀 우리 민족이 가장 즐겨먹은 명태를 산란기인 겨울철에 한꺼번에 많이 잡아 바닷가에 설치한 건조대에 널어 해풍에 얼려 말리는 세계적으로 손색이 없는 가공·저장기술을 우리 조상들이 익히고 있었음을 파악, 1936년 ‘조선명태어’를 일본 학술지에 발표하였습니다. 1935년에는 김의 성분, 종류, 산지, 생산고 등을 종합 조사, ‘조선 해태(海苔)’라는 보고서를 냈는데 이는 동경제대 수산학과 교재로 2년간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분은 우리나라 김이 400여 년 전 전남 광양에서 천연산 돌김으로 채취되다가 200여 년 전부터 완도에서 양식이 시작된 것을 밝혀내고 단백질과 요오드 등 영양소가 풍부한 건강식품인 김 양식이 우리 연해 어디서나 가능함을 확인하였습니다.

평안북도 수산시험장장 시절에는 멸종 위기에 처한 청천강 은어의 인공부화 및 치어 방류사업을 통해 자원을 회복시키고 1939년부터 4년간 신의주에서 백두산 밑까지 압록강을 세 번 오르내리면서 72종의 물고기를 ‘압록강 어보’로 정리, 1949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 1회 ‘인도·태평양 수산회의’에서 정식으로 발표하였습니다. 1941년에는 신의주 일대에서 유명한 ‘압록강 벗꽃뱅어’의 자원보호를 위해 조선과 만주국 사이에 국제협약을 체결, 평안북도가 주도권을 쥐도록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인천시험장장 시절에는 인천 앞바다의 선재도에서 큰 돌을 바다에 넣거나 대발을 쳐주어서 바지락 양식을 처음으로 성공시키는 한편 한강 하류에서 상류까지 수질과 생물분포의 조사·연구에 착수하였고 목포 시험장장 시절에는 영산강 하류인 몽탄강 일대의 수질과 갯벌의 성분 및 숭어와 어란 등 어족 자원 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해방 후 부산 중앙수산시험장장과 건국 후 중앙수산검사소장을 역임하는 동안에도 정 선생의 수산학 현장 연구 조사는 줄곧 계속되었습니다. 그분은 1930년대 초부터 30년이 넘게 우리나라 주요 어류의 표본을 채집하는데 주력하여 새벽 4시에 전국의 어시장에 나가 표본을 찾아서 즉시 분류하고 흑백과 컬러 사진을 찍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원색 사진도감을 출판하였습니다. 수집한 2000여 종의 표본은 경희대학교에 기증하여 수산학 연구의 밑거름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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