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계 벼 육종계의 선도자로 개도국에 이론·기법을 전수하다

1960년대 중반 당시 벼 육종기술상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원연종(遠緣種) 간의 육종을 3원 교잡을 통해 가능케 하여 육성해낸 통일벼는 세계적으로도 획기적인 품종이었고 이는 세계 벼 육종사에 획을 그은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허 문회 선생은 그 업적으로 1975년에 동탑산업훈장, 1977년에 은탑산업훈장과 5·16 민족상 학예부문 본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그분은 통일벼의 약점인 내냉성과 밥맛이 미흡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일생동안 연구를 계속하는 한편 다수성 ‘통일찰벼’를 육성하여 찹쌀의 대중화에도 크게 기여하였으며 병충해 복합 저항성을 가진 계통을 육성하여 중간모본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분이 벼 육종분야에서 이룩한 연구업적을 요약해 봅니다. (허문회 선생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 헌정 후보자 공적조서, 2009 참조)

첫째는 벼의 인디카 및 자포니카의 다수성 초형(草型) 유전자들을 분류하고 상호관계를 검토하여 다수성 육종의 지침을 제시하는 동시에 육종 재료를 육성, 벼 다수성 품종 육성에 국내외적으로 공헌한 것입니다. 특히 혁신적 육종기법으로 일컬어지는 ‘1대 잡종 육종법’ 실현을 위해 ‘통일형’과 ‘자포니카형’ 각각 웅성불임(雄性不稔)계통, 불임유지계통, 임성(稔性)회복계통의 여러 세트를 육성하여 국내외 연구기관이 활용하도록 한 것은 그분을 세계 벼 육종계의 선도자로 확고히 자리 잡게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둘째, 내냉성, 내염성, 내충성, 내병성, 내도복성 등에 대한 육종방향과 구체적인 육종기법을 제시했습니다. 내병성의 경우 ‘유전자 순환(Gene Rotation)’ 개념을 최초로 제안하였고 내충성은 ‘내성(耐性, Tolerance)’과 ‘항생(抗生, Anti-Biosis)’을 명백히 구분, 유전자 이용의 방향을 분명히 하는 동시에 각 내성에 대한 육종재료를 육성하여 연구기관이 이용할 수 있도록 공여하였습니다. 특히 내염성 유전자원을 이용하여 염해에 특히 강한 계통을 육성, 신 간척지와 만주의 알칼리 토양에서도 이용되도록 하였습니다. 셋째, 밥맛과 가장 관련이 많은 저장전분 내의 ‘아밀로즈’ 함량 관여 유전자에 대한 ‘시용효과(Dosage Effect)’를 세계 최초로 구명하였고 미질 다양화를 위해 몇 종의 특수 미질 인자를 개발하였습니다. 또한 2717계통의 벼 유전자원을 수집하였고 잡종 강세의 발현 정도와 잡종의 조합능력을 수식(數式)화하는 간편한 통계적 방법을 고안하는 등 다수성, 품질, 내병충성 육종기술의 혁신적인 발전을 선도하였습니다.

허 선생은 1960년 9월부터 서울대 농대에서 연구와 강의를 계속하면서 앞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1964년부터 2년간 IRRI에 파견되어 연구원으로 통일벼를 육성하였고 1972년부터 1992년 정년퇴임 시까지 농촌진흥청 겸직연구관으로 활동하였습니다. 그분은 1977년부터 2년간은 네팔왕국 수도시험장의 수도육종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당시 우리보다 처져있던 가난한 개도국 네팔에 벼 육종이론과 기법을 전수하여 그 나라의 쌀 증산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중국과 수교 직후인 1992년에 그분은 3개월간 중국 연변 농학원(우리의 농과대학에 해당)에서 육종학 강의를 하면서 현지 조선족 동포들의 벼농사에 도움이 되도록 열심히 육종기법과 이론을 전수하였습니다. 1993년에 다시 중국 길림성 중앙농업연구소의 초청으로 1개월간 벼 육종학 강의를 하였는데 그 때 길림성 서북부의 알칼리 토양지대를 둘러보고 그곳에 적합한 내염성 품종 개발을 위해 노력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분은 이러한 해외의 연구·교육 활동을 통해 한국을 알리면서 한국인이 좋은 이웃이자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임을 몸으로 실천해 보여주었습니다. (서울대 농생대 ‘농학교육 100년을 빛낸 영광의 얼굴들, 자랑스러운 102인의 농학자’ 84~5쪽)

저의 미시간 주립대학교 클래스메이트인 FAO 아·태지역본부 정책담당관 네팔인 무드바리(P. Mudhbary) 박사는 3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네팔의 벼 전문가들은 허 선생의 인품과 네팔의 벼농사 발전을 위해 애써준 노력을 잊지 않고 있다고 저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제가 1998년 7월 중국 연변과기대 교수로서 부설 ‘동북아농업개발원’을 설립, 원장을 맡았을 때 저와 함께 그 일에 동참했던 연변농학원 전 원장 장기건 박사(중국 옥수수 육종의 1인자로 불리었음)를 비롯한 많은 교수들은 허 선생이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가르침을 주었는지, 어떻게 조선족들이 개척한 만주의 벼농사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데 힘쓰도록 격려해주고 서부 길림의 알칼리 토양 황무지를 개척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주었는지 등에 대해 저에게 여러 차례 말해주었습니다. 제가 그분의 제자라는 사실이 그렇게 고맙고 자랑스러울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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