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두 번 태어나서도 우리 수산을 위해서라면 몸을 아끼지 않아

- 아픈몸으로 한·러, 한·일 어업회담 성공적 마무리
- ''어촌·어항협회'' 법적근거 만들어 수산기반 구축
- ''한국아쿠아포럼'' 설립…수산발전위해 모든 것 바쳐

배평암 회장이 목숨을 걸고 얻어낸 성과는 러시아로부터 우리 측의 당초 요구물량인 5만4400톤의 명태 어획 쿼터를 전량 확보했습니다. 일본으로부터는 저인망의 출어와 독도 주변의 자원 확보 등 어려운 사안들을 우리 측에 유리하게 풀어내면서 2000년도 입어량을 대량 확보하고 피해 어민들의 보상 재원 마련과 어민 설득 및 조정 업무를 잘 마무리한 것이었습니다. 그분의 목숨을 건 공무 수행에 관한 이항규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의 증언을 인용합니다. “2000년 초에 본인이 장관으로 취임하였을 때 배평암은 차관보로서 한·러, 한·일 어업회담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였으나 건강이 극도로 좋지 않은 상태에서도 폭주하는 업무로 인해 치료를 등한시한 채 한·중간 EEZ 획정 협정을 위한 회담 준비를 하였고 아픈 몸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김 수출 쿼터 협상을 성공시켜 1965년 이래 처음으로 우리 김 120만 속을 매년 일본에 수출할 수 있도록 길을 열었으며 한·중·일 3국의 수산 자원을 공동으로 관리하자는 제의를 관철시켜 제주도 표선에 ‘국제자원 관리센터’의 설립을 추진하는 회의를 주재하는 도중에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었음. 3일 후인 2000년 5월 1일 거동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부축을 받아 청사에 나와 사의를 표하여 내가 극구 만류하였으나 본인은 회생이 불가능하고 또 고위공직자로서 병원에서 장기 요양을 할 수 없다고 완강히 주장하는 바람에 부득이 사표를 수리하기로 하였음.” (2005년 3월 7일자 이항규 씨의 증언) 참으로 눈물겨운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배 회장이 되살아난 것도 거의 기적에 가까웠습니다. 서울대 병원에 입원 중인 그분의 병세를 담당 의사가 간 이식 전문 의사와 상의하여 수술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얻고 마침 수술 예정이었던 다른 환자가 수술을 못하는 사정이 생겨 천행으로 더 늦기 전에 수술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두 아들이 모두 아버지에게 간을 제공하겠다고 자원하였는데 의사가 장남이 더 좋겠다고 판단, 이식 수술을 해서 기적적으로 성공한 것입니다. 그분은 수술 후의 재활 노력에서도 보통 사람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초인적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수술 후 한 달 만에 퇴원을 하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매일 기를 쓰고 등산을 하여 6개월 만에 재활에 성공하였던 것입니다. 그분이 재발 방지를 위해 병원에 다니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동료들이 적극 나서서 2004년에 뒤늦게 공무원 연금관리공단에 공무상 요양 신청을 하였습니다. 공단과 1심 재판부는 간 질환을 공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은 기존의 대법원 판례에 따라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서울고등법원과 대법원에서 업무와 질병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여 공상이라고 판정, 종전의 판례를 뒤집어 늦게나마 배 회장을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게 해주었습니다.

배 회장은 자기는 2000년에 다시 태어나 이제 겨우 10살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분은 2003년에 한국어항협회장을 맡게 되자 끈질긴 노력으로 ‘어촌·어항법’을 제정, 2005년에 특수법인 ‘한국 어촌·어항협회’의 법적 근거를 만들고, 어촌관광과 어장정화 사업을 대대적으로 전개하는 등 협회를 수산 기반 구축을 주도하는 단체로 키웠습니다. 그분은 이학박사, 명예 수산학박사, 수산기술사로서 현직 시절 부산수산대(현재의 부경대학교)를 수산계 특성화 대학으로 적극 키우면서 ‘BK21’ 사업에 해양수산계 대학도 포함시켜 지원을 받게 하는 등 수산과학기술의 연구 개발에 앞장섰던 경험을 살려 2008년에 어촌·어항협회장을 그만 둔 뒤 2009년 ‘한국아쿠아포럼’을 설립, 이사장을 맡았습니다. 우리나라 수산분야의 전문가들이 200명 이상 가입하여 명실 공히 최고의 ‘수산 브레인 집단’이 된 이 포럼은 창립기념 심포지엄을 농어업농어촌특별대책위원회와 공동으로 부산에서 개최한 이래 2010년에도 농림수산식품부의 지원을 받아 서울과 동해안의 강릉, 서해안의 충남 보령에서 심포지엄을 개최하여 매번 수백 명이 참석하는 성황을 보이고 있습니다.

저는 배 회장의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면서 무한한 감동을 받습니다. 그분은 이 연재에서 자기가 소개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완강하게 그렇게 하지 말아달라고 몇 차례나 부탁하였습니다. 자신은 그런 자격이 없을 뿐 아니라 그로 인해 있을 수 있는 불필요한 주변의 시선이 매우 부담스럽다는 이유였습니다. 저는 그분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그 부탁을 들어줄 수 없었습니다. 그분은 두 번 태어나서도 몸을 아끼지 않고 우리나라 수산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칠 분이라는 것을 제 자신이 그냥 넘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 다음은 ‘정성헌’편이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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