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만화 수산경제연구원장

관중(기원전 약 725~645)이 쓴 ‘관자’에는 제나라 환공과 재상인 관중이 인접한 노나라와 양나라를 정복하는 방법에 대한 대화가 나온다. 관중이 말하기를 “노나라와 양나라의 백성은 비단을 짜니 제나라에서 비단 짜기를 금지하면 반드시 노나라와 양나라에서는 더 이상 농사를 짓지 않고 돈이 되는 비단을 짜고 파는 데 여념이 없을 것입니다. 이때 환공께서는 신하와 백성에게 비단옷을 입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러고 나서 관문을 폐쇄하고 두 나라와 교역을 금지하면 자연스럽게 정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전한다. 그 결과 이미 농사 기반이 없어진 노나라와 양나라의 양식 가격은 엄청나게 뛰어 굶는 자가 속출했다. 2년 뒤 노나라와 양나라의 백성 중 6할이 제나라로 이동했고 3년 뒤에는 노나라와 양나라의 군주까지 귀순요청을 하였다 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생각지 못한 ‘생존과 관련된 무서운 전략’이 2700년 전에 이미 중국에 있었다. 식량의 자급자족이 없으면 어떤 산업의 부흥도 국가의 역할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의미 있는 교훈이다.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을 위한 필요조건으로는 주된 단백질 공급원으로서 식량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는 지속가능한 수산업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볼 때, 중국과의 FTA 체결에 대응하기 위한 수산부문의 대안 중 하나를 수산물 위판제도에서 찾고 싶다. 우리나라의 수산물 위판제도는 1911년부터 강제상장제 형태로 운영되었으나 1995년 이후 위판수수료의 부담, 유통단계 중복, 유통기간 지연으로 인한 상품성 저하 등의 이유로 임의상장제로 전환된다. 그러나 그 내면을 살펴보면 1990년대 이후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몰락으로 시장경제가 만병통치약으로 그 우월성을 확인시키는 시기에 우리나라를 포함한 거의 모든 국가들이 규제완화라는 이름으로 정부의 비중을 대폭 축소시킨 결과물인 셈이다. 바로 시장의 확대가 경쟁적으로 공공재의 영역까지 파고들어갔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수산물은 어디까지나 공유재이다. 즉 소비는 경합적이나 배제에 따른 비용 부담이 과중해 배제의 원칙이 적용되기 어려운 재화이므로, 정부는 국민 모두가 수산물을 이용할 수 있도록 어선건조, 영어자금지원, 면세유류 공급, 어선원공제 보조, 수협위판장 시설지원, 어업정보 통신국 운영 등에 소요되는 자금을 융자나 보조형태로 지원한다. 하지만 그렇게 생산된 어획물은 최종 위판단계에서 임의상장제로 인해 판매 장소, 판매 가격에 대한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게 되는 아이러니한 결과가 발생한다. 여기서 다시금 위판제도에 있어서 국가개입의 필요성이 야기된다.

수산물 위판에 있어 이러한 계통판매제를 채택할 시에는 첫째 각 어선의 어획량이 수협위판장으로 집계됨으로 우리나라 수산자원에 대한 거버넌스가 가능해 진다. 이는 TAC 제도의 도입을 가능케 하며 과학적으로 정밀하게 배정된 어획할당량만 잡을 수 있어 수산자원은 당연히 보호될 것이다. 둘째 국제 협상에서 협상력이 높아질 것이다. WTO/DDA 협상에서 Fish Friends 국가군이 주장하는 과잉어획방지에 논리적으로 대응할 수 있으므로 어업용 유류의 면세제도 유지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셋째 불법어업의 근절이다. 불법으로 어획된 수산물의 유통이 원칙적으로 차단될 것이다. 넷째 생산통계의 정확성을 꾀하여 수산정책 수립에 유리한 정보를 제공한다. 신뢰성 있는 수산통계는 매년 정부가 방류하는 수산 종묘와 인공어초, 바다 숲 조성 등 수산자원 정책이 실질적으로 어떠한 효과를 거두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주요 척도로도 활용될 것이다. 다섯째 연근해를 자연양식장처럼 운영하면 지속적인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안정된 식량자급률이 확보된다. 여섯째 건강하고 행복한 어촌공동체의 존속으로 어업인과 어촌은 삼면의 바다를 지키는 국가안보의 역할까지 담당할 것이다.

중국과의 FTA 대책은 단순히 정부 보조금을 얼마나 많이 지원하느냐 뿐만 아니라 어떻게 국내 어업기반을 확고히 조성하느냐에 달렸다고 본다. 그리고 어업기반조성의 제1차 과제는 바로 수산물 유통의 첫 단계인‘계통판매제’라는 위판제도의 도입이라고 본다. 수산물의 중요성, 공유재로서의 성격을 무시한 채 단순히 규제완화라는 측면에서‘임의상장제’가 더 낫다라는 단편적인 시각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현행 시장경제의 폐해를 뛰어넘어 국가이익을 위한 기능으로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 정만화 수협중앙회 수산경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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