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의 일벌은 태어나 한동안 집 안 일을 하다가 보름 정도가 지나면 집 밖을 나와 수명이 다할 때까지 꽃을 찾아다니며 꿀을 모으는 일을 한다. 그리고 노쇠해진 일벌은 문 앞에서 외적을 방어하는 일을 하는데, 이들의 무기는 벌침과 그 속에 들어있는 봉독(蜂毒)이라는 물질이다.

벌침은 톱니 같은 미세구조로 되어있어, 사람이나 짐승의 살갗을 쏘게 되면 빠지지 않고, 독주머니를 통해 계속 봉독이 주입되어 통증과 알레르기를 일으켜 심한 고통을 주게 된다. 벌침을 쏘고 나면 벌침과 함께 내장의 일부가 떨어져 나와 일벌은 몇 분 내에 죽고 만다. 벌통 안에 있는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살신성인의 숭고한 희생으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벌침과 연결된 독주머니에는 약 0.3mg의 소량 독액이 들어있고, 이 봉독은 40여종의 단백질 성분으로 구성된다. 이 중에는 ‘멜리틴’이라는 주성분이 있어 적정 농도에서 다양한 약리작용을 보여준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BC460)는 봉독을 ‘신비의 약’이라고 표현하며 다양한 질병 치료에 사용하였다. 고대 유럽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 대제가 오랜 지병이었던 통풍을 봉독으로 고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현재 한의학에서도 관절염 치료에 봉독을 시술하는 일이 보편화되었다. 7~8년 전 방영되었던 인기드라마 ‘대장금’에서 대장금의 미각을 되찾고자 벌침으로 치료하는 장면이 등장하였는데, 한류 붐을 타고 일본, 중국에서 이 드라마가 방영되면서 벌침의 치료효과가 집중 부각된 바 있다.

벌통 문 앞에 가는 전선으로 전류를 흘려 전기 자극을 통해 벌침을 빼지 않고도 봉독을 채취할 수 있는 한국형 봉독 채집기가 개발되어 국내 양봉농가에 보급되었다. 봉독은 적정량에서 류마티스성 관절염 등 관절 통증완화에 효과가 커서 주사액으로 사용되고 있고, 한편 강력한 항균작용을 갖고 있어 여드름 완화와 피부재생을 위한 화장품으로도 개발되어 봉독함유 화장품 상당량이 일본, 미국, 유럽 등에 수출되고 있다.

또한 소량의 봉독은 인체의 면역체계를 자극하여 체내의 대사촉진을 유도한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농촌진흥청에서는 이러한 원리를 가축에 적용하여 기존에 사용하는 항생제를 대체할 있도록 봉독을 가축의 질병 예방과 치료, 면역증강에 활용하는 방안을 다각도로 연구하고 있다.

봉독은 선진국에서는 아직 연구가 미흡한 분야로 우리나라가 기술개발을 주도하여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분야다. 꿀벌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사용하는 봉독이 우리나라 양봉산업이 세계로 도약할 수 있는 새로운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봉독은 꿀벌의 살신성인 희생정신을 통해 얻는 의약품 원료이기에 더욱 소중한 것이다.

<이명렬 한국양봉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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