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부상조(相扶相助)와 친목을 위해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여러 종류의 고유한 계(契)가 대부분은 형체도 없이 사라졌지만, 어촌지역을 기반으로 한 어촌계(漁村契)만은 유일무이하게 실존하고 있다. 어촌계는 1962년 4월 수산업협동조합법 제정을 통해 법제화되었으며 그 목적은 어촌사회의 복리증진과 경제적 지위 향상, 부락공동체적 총유어장의 관리와 민주적 운영으로 자원 보존과 생산 확대에 있었다. 출발은 한 해 동안 전국적으로 1658개가 설립되고, 계원이 9만2366명에 이르렀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1980년 초중반부터 시작된 어촌개발사업 및 간척사업으로 인하여 국내 수산물 공급량은 급감하기 시작하였고,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의 타결로 인한 수산물 관세 인하, 1998년 수산물 수입 자유화로 인하여 수산물 수입이 급증하기 시작하였다. 급기야 2001년에는 수산 역사상 처음으로 수입이 수출을 초과하여 수출효자산업에서 탈락하게 되었으며 2010년에는 수산물 수입금액 (35억 달러)이 수출금액(18억 달러)의 2배에 달하며 수입물량은 470만 톤으로서 무려 6배를 차지하고 있다. 수산물은 그 특수성인 일시다획성, 부패성으로 인해 자급자족적인 농산물에 비해 시장지향성이 강하여 해외시장 개방에 있어서 농촌보다 훨씬 더 심각한 타격을 받는 특수성이 있다. 이로 인하여 어촌사회의 붕괴와 건강한 어촌계의 존립이 걱정되는 현실이다.

이제 새로운 형태의 어촌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어촌사회를 둘러싼 이해관계자의 기대는 변화하고 있지만 어촌계 내부에서는 외부의 위협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거나, 그럴 의사가 없다는 점에 문제점이 있다. 한중 FTA의 효율적 대응은 새로운 어촌계의 역할이라고 본다. 단순한 물량 비교나 수입 물량 관세인하에 의한 피해액 보정도 중요하지만 이미 어업생산량은 전성기를 지났으며 급격한 수익체감 상태에 도달한 상태다. 한때 생산과 수출, 어촌관광 등 수산산업의 번영을 기반으로 수립된 수산정책들이 사실은 수산업의 번영을 집어삼키는 함정이 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의미 있는 수산자원은 어획되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회복, 보충될 수 있는 증식가능한 자원이 되도록 하는 일관된 정책에서만이 유지되는 해양생물이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어촌계가 지속 불가능한 수산업이 되지 않게 자원의 조성, 보호, 관리에 힘써야하는 이유다. FTA 시대의 새로운 어촌계는 식량안보를 위한 최고의 무기인 수산식량 자급률을 충족시키는 지속가능성에 무게를 두어야 한다.

가치 있고 지속가능한 수산업이 되기 위해서는 어촌, 어업, 어민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어촌은 어장이라는 경제적 기반으로 어촌계가 중심이 되어 어업활동을 하는 마을이며, 어촌과 어업은 그중 하나를 선택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인 방법으로 끊임없이 그 둘을 화해시켜 나가며 양자를 어울러야 한다. 어촌이 없는 어업은 근본을 뿌리내리지 못하며, 어업이 없는 어촌은 그 정체성을 찾을 수 없다. 대규모 양식은 양적인 생산을 가능케 하지만 다원적인 어촌사회를 건설하지는 못한다. 거기에는 숨 쉬는 어촌문화와 행복을 느끼는 공동체의 주민참여가 없기 때문이다. 이 둘을 아우를 수 있는 강한 접착제는 수산 기업가가 아닌 바로 어민(漁民)이며 그 터전이 어촌계이다. FTA와 관련된 수산의 딜레마는 고르디언의 매듭Gordian knot)과 같다. 그 매듭은 새로운 어촌계의 역할로 풀어야 지속가능하지 자르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지속불가능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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