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토종벌은 작년부터 애벌레가 물주머니처럼 부풀며 죽는 ‘낭충봉아부패병’ 바이러스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다. 토종벌 농가의 집계에 따르면 전체 40여만통에 달했던 벌통의 95% 이상이 집단 폐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시대부터 2000년 이상 한반도에 자리를 지켜온 우리 토종벌이 갑자기 창궐한 바이러스 질병에 의해 최대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발생한 토종벌의 낭충봉아부패병은 이미 1980~1990년대에 중국, 인도, 파키스탄, 태국, 베트남, 미얀마 등의 우리 토종벌과 같은 종(種)인 동양종 꿀벌에서도 대량 발생한 기록이 있다. 그 당시에도 각 나라별로 토종벌의 95% 이상이 폐사하여, 농가에게 큰 고통을 주었다. 당시 현지 잡지기사를 보면 갑작스런 토종벌 폐사로 생계가 막연해진 농촌마을에서 일부 토종벌 농가들이 자살까지 시도했다는 기사를 접할 수 있다. 토종벌 질병이 불러온 재앙을 실감하는 대목이다.

과거에 낭충봉아부패병으로 큰 피해를 입었던 두 나라는 각고의 노력으로 4~5년 뒤부터 점차 회복하여 현재에는 토종벌 산업을 왕성하게 부흥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에도 낭충봉아부패병이 이들 토종벌에 잠재하면서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있지만 더 이상 우려할만한 피해는 주지 않고 있다.

아시아 토종벌이 원상회복한 과정에는 일차적으로 벌통을 현대식으로 개량한 것이 주효했다. 이를 통해 벌통 내부를 수시로 관찰하며, 질병을 조기에 진단하여 병원균의 번식 조건을 없애고, 토종벌의 영양관리와 여왕벌을 유전적으로 개량하는 등 과학적 관리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토종벌 사육에서 일대 혁신을 시도함으로써 토종벌을 유지해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토종벌 농가들이 선호하는 통나무나 재래식 사각벌통은 벌통 내부의 통풍이 되지 않아 습한 환경을 좋아하는 병원균이 번식하기에 좋은 조건인 반면 벌집을 꺼내어 질병감염 여부 등 애벌레의 건강상태를 면밀히 점검하는 것은 어렵다.
이런 상황인 만큼 이제부터라도 다소 번거롭지만 환기가 잘되고, 벌집을 꺼내어 질병 감염 등의 점검이 가능하고 봉군세력을 강화할 수 있는 서양 벌통 모양의 개량 벌통으로 교체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에 추가하여 여왕벌 격리를 통해 바이러스의 증식처인 애벌레 공급을 일시 중단하는 방법을 응용하고, 단백질 사료를 추가 공급하여 영양을 개선하고, 질병에 강한 여왕벌을 육성하는 등 현대화된 생태적 봉군관리 기술을 적용해야 한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에서도 외국학자들은 물론 국내 선도농가들과 손잡고, 질병에 대응할 수 있는 생태적인 토종벌 관리기술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2000년 동안 한반도에서 고락을 함께 해온 토종벌이 갑자기 창궐한 낭충봉아부패병으로 큰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끊임없이 야외 식물생태계와 교감하고 있는 토종벌은 기후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오랜 기간 사람이 사육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생존하는 야생성이 감퇴하였다. 농가들이 벌통 구조에 대한 인식을 빨리 전환하고 과학적인 관리기술을 발휘하여 우리 토종벌을 하루빨리 복원하는 것이 절박한 시점이다.

<이명렬 한국양봉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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