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쿼터배정 요구 가능성…TRQ 물량 자율권 확보
한우, 세이프가드 기준 낮춰 현실적으로 재조정
낙농, TRQ 연한 설정 등 불리한 협상 바로잡아야
양돈, 美·中·유럽 등 글로벌 상황 종합적 판단 대응

한·미 FTA에 대한 재협상 논의에 따라 농축산업계는 향후 쟁점분야에 대해 촉각을 세우고 있다. 쌀의 경우 미국 쌀 생산량 증가로 재고물량이 늘어나 가격이 하락하고 있어 쿼터물량 배정에 대한 우려가 일고 있으며 과일·과채 분야 역시 고삐가 풀린 상태이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축산분야의 경우 한우는 세이프가드의 수위 조절에 대한 논쟁이 일 것으로 보이며 낙농은 TRQ(저율관세할당) 연한 설정이 빅이슈로 제기될 전망이다. 양돈은 아직 유럽산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유통단계 축소를 통한 냉장육 시장확대를 꿰할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편집자주>

 

#쌀, 쿼터배정 요구 할 듯

2007년 체결된 한·미 FTA에서 멥쌀, 찹쌀, 벼, 쌀가루 등 쌀 관련 16개 품목은 양허에서 제외됐으나 재협상이 이뤄지면 미국이 쌀 개방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우리나라와 쌀 시장구조가 비슷한 일본은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참여조건으로 관세율은 지키되 미국산 쌀 8만톤을 추가 수입키로 한 바 있다. 미국은 이 같은 자국산 쌀 수요처가 TPP 탈퇴 선언으로 무산, 한국이 이 물량의 대체수요처가 돼주길 바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은 한국 쌀 시장에서 수입쌀 수요처가 확대되는 가운데 미국 쌀이 생산량 증가로 재고물량이 늘어나 가격이 크게 하락하고 있다는 점도 우려를 사고 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관계자는 “트럼프 정부가 한·미 FTA 재협상에서 자국산 쌀에 대한 쿼터배정을 요구할 공산이 높은데 미국산 쌀 가격이 하락해 중국산 쌀 가격에 근접해 있어 더욱 우려스럽다”며 “쌀 목표가격 조정과 미국의 쿼터배정 요구 또는 WTO(세계무역기구) 의무수입물량과 별도로 미국산 쌀을 추가 수입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맞물릴 경우 우리 쌀 산업에 상당한 타격이 돼 올 하반기 농업계 뇌관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농민단체에서는 이번 재협상을 통해 쌀 TRQ 물량에 대한 자율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임병희 (사)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쌀 의무수입량 40만9000톤 내에서의 쿼터 배정은 의미 없다고 본다”며 “오히려 이를 계기로 WTO에 제출한 관세화 결정통보 이후 미국 등 이의제기국과 협상을 신속히 종결해 TRQ 물량에 대한 자율권을 확보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

# 과일 과채, 수입 심화 우려

현재도 유통채널에서 미국산 수입과일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상황에서 미국이 자국 보호 원칙으로 자동차, 제조업 부분의 손해를 채우기 위해 농업부분의 추가 개방을 요구할 경우 국내산 과일, 과채 농가의 피해는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게 유통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대형유통업체의 주요 매출순위에 미국산 과일이 상위를 점령하고 있는 상황에서 반입량이 증가하거나 품목이 다양해질 경우 국내 과일, 과채 소비는 지금보다 더욱 감소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대형마트 3사는 미국에서 재배되는 주요 과일의 원산지 공식이 깨지기 시작하고 있는데 이 시기에 FTA 재협상으로 미국산 과일 품목이 다양해지고 반입량도 늘 경우 미국산 과일의 판매 의존도는 지금보다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제주도 감귤 재배농가는 겨울철 오렌지 수입으로 신품종을 식재하고 오렌지와 비슷한 품목으로 전환하고 있지만 소비감소는 막지 못하고 있다. 감귤재배 농가들은 오렌지를 비롯한 미국산 과일이 증가할 경우 감귤가격이 낮아져 재배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 입을 모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오렌지와 마찬가지로 대중과일로 정착한 체리는 이미 시장을 좌지우지 하고 있다. 포도재배농가는 FTA로 인해 폐원을 하고 다른 과일로 작목을 전환하고 있지만 미국산 체리, 포도 등의 영향으로 어려움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가락시장 유통인들은 수입채소가 우리 식탁을 점령한 것처럼 수입과일이 과일섭취에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며 소비자들은 새롭고 다양한 품목을 선택할 수 있지만 생산 농업인들은 뾰족한 방안이 없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공영도매시장에서도 미국산 과일이 차지하는 비율은 점차 늘고 있다”며 “현 상황에서 미국산 과일이 더 반입된다면 농가들은 살길이 막막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 한우, 세이프가드 발동 기준 현실화

한우업계는 미국과의 FTA 재협상 시 한우산업을 보다 안정화시킬 수 있는 요구조건들을 강력하게 피력할 방침이다.

그 가운데 하나는 쇠고기 세이프가드 기준을 낮추는 것이다. 세이프가드는 정부가 과도한 수입을 막을 수 있도록 내놓은 일종의 보호장치다. 한·미 FTA 세이프가드 물량은 첫해 27만톤을 시작으로 매해 6000톤씩 증량, 올해는 30만톤이 수입을 제한할 수 있는 발동 기준이 된다.

지난해 한우소비량은 22만톤 가량인데 이보다 월등히 높은 세이프가드 기준을 낮춰야 한다고 한우업계는 지적했다.

이형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축산팀장은 “FTA 체결 당시 미국산보다 상대적으로 수입량이 많은 호주산 쇠고기에 대한 세이프가드 기준에 집중하다보니 상대적으로 미국산 쇠고기의 세이프가드 발동 기준이 비현실적으로 설정됐다”며 “지나치게 높아 현실적으로 발동이 불가능한 세이프가드 기준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밖에도 한우업계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중단 요건에 ‘비정형’ BSE(소해면상뇌증, 일명 광우병)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미국 내에서 광우병이 발생했지만 비정형이라는 이유로 수입중단이 아닌 현물검사 확대 조치만 진행됐기 때문이다.

특히 비정형 광우병이 정형 광우병보다 위험하지 않다는 어떠한 과학적 증거도 없이 단순히 현물검사 강화 조치만 내려진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장기선 전국한우협회 국장은 “FTA 체결 이후 미국산 쇠고기가 빠르게 국내 쇠고기 시장을 잠식하면서 한우농가 수는 반토막이 났다”며 “따라서 국내산 쇠고기의 소비 활성화를 보장할 수 있도록 세이프가드 기준을 낮추고, 미국에서 광우병이 재발할 경우 수입이 중단될 수 있도록 수입위생조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 낙농, 굴욕적 협상결과 바로 잡아야

한·미 FTA 재협상 여부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낙농업계는 낙농품에 대한 전면적 재협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미 FTA 협상타결로 탈지, 전지, 연유에 대해 TRQ 5000톤을 배정하면서 연한 설정 없이 매년 복리 3%로 증량하게 됐고 치즈 역시 15년 관세철폐와 TRQ 7000톤을 미국측에 양보하는 등 굴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는 게 낙농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육우업계도 FTA 체결에 따른 쇠고기 수입확대로 인해 국내산 쇠고기 자급률이 10% 이상 떨어진 상태에서 수입육과 직접 경쟁하는 육우농가들은 직격탄을 맞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육우농가 수익성은 2013년 이후 2016년까지 4년째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고 실제 육우고기 평균가격은 이달 현재 kg당 7741원으로 지난해 평균가격 9566원 대비 19.1%나 떨어진 상황이다.

이에 이승호 한국낙농육우협회장은 “한·미 FTA 낙농품 협상에서 유례없는 불리한 협상결과에 따라 큰 피해를 입고 있는 만큼, 한·미 FTA 재협상 시 우리 정부가 낙농품에 대한 재협상을 미국측에 강력히 제기해야 한다”며 “특히 우리 정부가 분유 TRQ 복리증량에 대한 연한 설정, TRQ 관리방식 변경(국내산 구매조건 등), 농산물세이프가드(ASG) 적용대상에 낙농품 포함을 재협상 의제로 설정해 굴욕적이고 잘못된 낙농품 협상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양돈, 글로벌한 시장상황에 대응

양돈업계는 한·미 FTA 재협상에 대한 관심과 함께 미국, 중국, 유럽 등 글로벌한 시장상황에 대응할 구 있는 정책마련을 촉구했다.

정상은 한돈자조금 사무국장은 “구이문화인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냉장 삼겹살은 주로 독일 등 유렵에서 수입되고 있어 미국, 캐나다의 영향은 미미한 게 사실”이라면서도 “미국산은 최소 21~25일 정도면 국내 유통으로 풀려 향후 냉장육의 비중이 높아질 경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정 사무국장은 “돼지고기 수입의 경우 미국만의 상황을 볼 게 아니라 중국, 유럽 등 글러벌한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실제 앞으로 미국은 도축장 4곳이 신규로 오픈할 예정인 가운데 이들 신규 도축장은 우리나라 전체 생산 전체 돈육 물량의 50% 가량을 매년 도축할 것으로 알려져, 만약 미국산 돈육의 생산·공급량이 증가하면 자국내 소비를 충족하고 남는 물량에 대해 수출 확대가 예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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