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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나리 연암대학교 교수(플로리스트 전공·농학박사)

지난 13일 본래라면 우리 대학의 학위 수여식이었다. 졸업식 날은 대학 정문에서부터 시작해 캠퍼스 구석구석까지 꽃물결이 넘실거린다. 화훼디자인을 전공하는 교수인 내 입장에서는 플로리스트의 자격을 손에 쥐고 교정을 나서는 제자들의 앞길을 꽃이 밝혀 주는 듯해 더욱 좋았다.

그런데 올해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우리 대학도 졸업식이 취소됐다. 전국적으로 졸업이나 입학식 외에도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가 취소되면서 꽃 소비가 얼어붙고 있다. 도·소매 꽃상가에서 일하고 있는 제자들에 의하면 꽃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줄어 꽃값이 급락했다고 한다. 도매시장에서는 아예 “거래 자체가 없다”며 꽃 재배 농가에 꽃을 출하하지 말라고 문자를 보내기도 하는 실정이라고 한다.

결국 일부 화훼 재배농가에서는 비닐하우스에 꽃이 피어 서있는 채로 한 해 농사를 마감해야 하는 곳도 있다. 그래서 소위 ‘청탁금지법’ 이상의 직격탄이라는 곳도 있다. 그런데 꽃은 단순히 화훼농가의 소득원에 그치지 않는다. 그 여파는 계속해서 연쇄적으로 일어나게 될 것이다.

서울대병원이 중고생 1900여명에게 ‘최근 1년간 2주 이상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슬프거나 절망감을 느꼈는지’ 등 우울 경험을 물었더니 13.6%가 그렇다고 답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36개 가운데 1위라고 한다. 심지어 16년 연속 1위의 불명예까지 안고 있다. 한편 동서양을 막론하고 꽃은 정서 함양에 큰 역할을 해오고 있다. 일상생활에 희로애락의 순간을 함께 해온 꽃이다.

하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꽃은 입학식, 졸업식, 결혼식 등 행사장에서나 볼 수 있다. 전체 꽃 소비액 중 약 70%가 경조사용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이른바 나를 위한 꽃이 아니라 너를 위한 꽃인 것이다.

최근 라이프스타일과 소비 트렌드는 ‘네가 아닌 나를 위한 소비’가 주목받고 있는 데 꽃 소비는 여전히 ‘너를 위한 꽃’에 머물러 있는 수준이다.

꽃은 팍팍해져 가는 세상을 따뜻하게 지피는 모닥불의 온기를 안고 있다. 그래서 꽃 생산은 농림축산식품부의 일이지만 꽃 소비를 늘리는 것은 보건복지부의 일이기도 하다.

정부나 업계는 소비자들이 쉽게 꽃을 구매할 수 있도록 소비접점을 늘려야 한다. 지하철역이나 극장 등 유동인구가 많은 다중이용시설에 노출빈도를 높여 꽃 소비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궁리가 필요하다.

다행히 정부에서는 지난해 8월에 ‘화훼산업의 발전 및 화훼 문화 진흥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화훼산업 육성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외에도 소비저변 확대를 위해 현재보다 더욱 화훼 판매코너를 확대하고 새로운 시장을 창조해 내야 한다. 농산물은 직거래 장터가 많아지고 있지만 꽃은 직거래 장터가 없다. 농산물처럼 생활 주변에 직거래 장터가 열린다면 꽃 소비는 훨씬 증가할 수 있다.

행사장 꽃으로 기울어진 꽃 소비의 기형적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미래세대를 대상으로 한 꽃 생활화 교육이나 관련 직업군의 양성은 필수적이다.

졸업식이 취소되면서 꽃이 사라진 교정을 바라보며 ‘나를 위한 꽃’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당장에 오늘은 그동안의 너를 위한 꽃에서 나를 위한 꽃을 선물해 보면 누군가에게는 고마운 일이고, 어쩌면 나에게는 평생 처음인 뜻깊은 일의 시작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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