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산신문=농수축산신문]
도시 총각이 시골 처녀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강산이 70번 바뀌더니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는 장인어른의 농담처럼 나는 결혼 후 처음으로 처가에 가서 장화도 신어보고 나무에서 사과와 배도 따보았다. 나의 어리숙한 농촌문화에 처삼촌은 가장 즐거워했다.
“어이! 이 사람 기억자 앞에서 낫도 모를 사람이네, 낫으로 밭을 가면 칼 주름이 잡히지!”
“자네 장모가 호미 좀 가져오라고 하네, 호미는 알지 길쭉한 막대가 달린 것이 호미야”
“우리 고구마를 누가 밤새 다 따갔어, 줄기에 가득 달려있었는데, 봐봐 하나도 없지!”
그럼 전 진짜 낫으로 밭을 갈고, 장모에게 호미 대신 곡괭이를 가져다 드리고, 땅속에 잘 있는 고구마를 훔쳐간 범인을 잡는다고 자동차에 달린 블랙박스 영상을 돌려보았고 가족들은 신이 나서 더 놀리며 즐거워했다.
농촌 생활은 하면 할수록 즐겁고 신기한 것이 많았다. 그중 가장 신기한 것이 고추였다. 초록색 고추와 빨간 고추는 열리는 나무가 다를 거라는 생각과 달리 줄기에서 덜 익은 열매가 초록 고추이며, 햇빛을 잘 받아 익은 것이 빨간 고추라는 것을 말이다.
고추를 따다 입이 심심하던 나는 초록 고추 하나를 입에 덥석 물었다. 근데 장인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고추를 먹지 말라는 거였다. 나는 너무 서운했다. 사위가 고추하나 먹는 것도 아깝다 말인가 하고 말이다. 나는 조용히 고추밭을 나왔다. 나의 행동에 아내는 깜짝 놀라 따라 나왔고 고추밭에 농약을 치기 때문에 밭에서 바로 따서 못 먹게 했다는 것이었다.
장모님은 그런 나의 모습도 귀엽다면서 채반으로 가득 고추를 담아주며 마음껏 먹으라고 했다. 점심을 먹고 다른 고추밭에 농약을 치려 가신다고 했다. 농약을 조재하는 장인어른은 신중하고 또 신중했다. 근데 농약의 배합을 보며 깜짝 놀랐다. 100배에서 5,000배 까지였다. 만약 분무기기 용량이 큰 배낭정도라면 유산균 음료병 정도의 농약을 물에 희석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이 정도 적은 량으로 병충해가 예방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 들었다. 장인도 처음에는 농약의 양에 불신이 있었고 사용설명서 보다 눈대중으로 적당하게 넣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농업관련 교육시설이 많아서 체계적으로 배우다 보니 적정량을 잘 지키고 과학적 영농을 한다고 했다.
농촌에서 과학적이라는 단어는 참 낯설었다. 몇 해 전 칠순이 훨씬 넘으신 장인이 영어를 못한 것이 한이 된다고 이야기했다. 친환경농업을 하고 싶은데 모든 것이 영어라고 했다. 시계 40년만 돌리면 우리나라 전체가 친환경농업이었을 건데 말이다. 아마도 EM이라는 단어조차도 어려우신 것 같았다. 장인이 가지고 계신 교재의 영어단어를 전부 한글로 번역해 드렸더니 엄청나게 좋아하시면서 이곳저곳에 사위 자랑을 하고 다니셨다. 그날 이후 장인은 농사에 관해서 나에게 많은 것을 물어보았다. 그럼 난 인터넷으로 열심히 찾아서 장인에게 보내드리고 설명을 해드렸다. 장인은 나에게 정말 어려운 과제가 있는데 혹시 해결할 수 있나고 했다. 마가목 종자를 발아시키고 싶은데 쉽지 않다고 했다. 새똥을 모아서 묻어도 보고, 황산을 사용해봤는데도 쉽지 않다고 했다. 역시 인터넷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강원도기술센터에서 마가목 발아관련 연구를 하였고 과육을 제거한 다음 노천에 매장한 다음 수산화나트륨으로 화학처리하면 발아율을 엄청 높일 수 있는 자료가 있었다. 그해 가을 장인과 함께 수확한 마가목 열매에서 과육을 제거하고 양파망에 넣어서 소독한 모래 속에 넣어두었다가 겨울을 보내고 봄에 수산화나트륨 용액에 약품처리 하여 두었더니 정말 발아율이 높았다.
장인은 엄청나게 기뻐하며, 본격적으로 농사를 시작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들은 깜짝 놀랐다. 그럼 지금까지의 농사는 무엇이었는가 말이다. 70년 이상을 농사를 지어셨고, 지역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농민이신데 본격적으로 농사를 하신다고 하면 그 끝이 어디인지 무섭기까지 했다. 장인은 나에게 또다시 미션을 주셨다. 제피열매 발아법을 찾아두라고 하셨다. 아마 20년 후에는 저 밭이 제피나무로 푸른 농장이 되어 있을 거라고 했다.
나는 조심히 묻고 싶었다.
“아버지 지금이 팔순이신데 20년 후면 백수신데 더 많은 농사는 어떻게 지어요!”라고 말이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알았는지 아내가 장인에게 쏘아 붙였다.
“아버지 이제 제발 농사는 그만 해요. 정말 농사하다가 골병들어요. 이제는 농사 못 지을 것 같아요. 딱 2년 팔순까지만 농사짓고 다 팔고 시내 가서 살아요. 서울 와서 살아도 좋고요!”
장인은 농사에 대한 기본 틀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과 모든 산업의 시작은 결국 땅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너희 6차 산업이라고 들어봤어? 농촌융복합산업이라고 농사를 지어서 가공해서 판매까지 하는 사업이야, 앞으로 10년 늦어도 20년이면 농업이 다시 최고의 산업이 될 거야. 알약 하나 먹으면 밥 안 먹어도 되는 미래가 올지 몰라도 옛날 맛을 찾는 사람들은 더 많아질 거야!”
틀린 말은 없었다. 나도 벌써 고향의 맛이 그립고 신선한 과일과 채소가 비타민 알약보다는 훨씬 좋으니까 말이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농업과 농촌의 가치는 훨씬 높아질 것이다. 장인은 지금 가꾸는 농장은 나중에 손자들이 잘 살 수 있는 밑거름이라고 했다. 20년이 지나면 나도 퇴직을 할 것이다. 어쩜 생각보다 빨리 로봇과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내가 생각한 시기보다 더 빨라질 수도 있다. 그때 장인의 해안에 정말 감사하며 제피농장을 가꾸고 있을지도 모른다.제피가 싹이 돋았다. 모묙용 컵에 하나하나 옮겨 심어 잘 키운 후 밭에 옮겨 심을 것이다. 10년이 흐르고 새싹이 나면 장아찌를 만들어 작은 병에 넣어 판매할 것이고, 열매는 씨를 잘 빼어 곱게 갈아 추어탕이나 생선조림 등에 넣을 먹을 양념을 만들 것이다.
아내는 나의 모습에 이제 농업인이 다 되었다고 한다. 요즘 도시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이 장화 신고 들어가서 구두 신고 나오는 사람이라고 한다.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 개발이 잘 되지 않은 아파트에 들어가서 불편한 생활을 조금 하다 보면 개발이 완성되고 편하게 살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반대의 삶을 꿈꾼다. 구두 신고 들어가서 장화 신고 나오는 사람이 될 것이다. 나의 직업에서 내가 필요한 동안은 열심히 일하겠지만 언제든지 농촌이 그리워지면 두말없이 장화를 신을 것이다. 동료들은 그런 나를 부러워한다.
이게 다 도시촌놈이 시골처녀를 만나서 행복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