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산신문=박현렬 기자]

임채홍 대표와 부인 김태연 씨는 2015년 말 경남 함양으로 귀농한 후 식초와 청을 만들고 있다.
임채홍 대표와 부인 김태연 씨는 2015년 말 경남 함양으로 귀농한 후 식초와 청을 만들고 있다.

‘요리연구가가 만드는 식초와 청은 어떤 맛일까?’ 대학에서 토목을 전공했던 한 청년은 군 시절 취사병들과의 교류를 통해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됐다. 군 전역 후에는 조리학과로 편입한 후 요리경력을 쌓고 한국전통음식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돌며 강의와 요리로 유명세를 떨치던 임채홍 채연가 대표는 2015년 말 가족과의 삶을 위해 고향인 경남 함양 원산마을로 귀농했다.

원산마을에서 부인과 식초, 청을 만들며 소비자들이 분기별로 가고 싶은 농장 건설을 꿈꾸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정성껏. 정직하게 만드는 마음가짐
 

“농장의 이름은 부부의 이름인 임채홍의 ‘채’, 김태연의 ‘연’에 집을 뜻하는 ‘가’를 붙여서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이름을 내걸 정도로 제품을 정성껏, 정직하게 만든다는 마음가짐을 품었습니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자랑스러운 이름으로, 이제는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겠다는 의지이기도 하구요.”
 

임 대표와 부인인 김 씨가 정성껏, 정직하게 제품을 만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또 다른 이유는 전통음식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전통음식연구소 출신이기 때문이다.

임 대표는 국내 대학을 비롯해 다양한 센터의 강의와 더불어 인도, 앙골라, 아프리카 등 남들이 가기 쉽지 않은 국가의 대사관 만찬 행사에도 참여했다.
 

“부부 모두 음식을 만드는 것도 좋아하지만 만든 음식을 누군가에게 대접하는 것을 더욱  좋아합니다. 전통음식연구소에 입사하기 전 낮에는 전문대학에서 요리연구에 힘을 쏟았고 밤에는 식당에서 일하며 현장 경험을 쌓았을 뿐 아니라 이후에는 1년 정도 한식당도 직접 운영했습니다. 이 같은 과정과 아내의 지원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한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전통음식업계에서는 나름 유명했던 그가 고향인 함양으로 귀농하게 된 이유는 가족과의 삶을 위해서였다. 강의와 요리로 인한 잦은 출장으로 가족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아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큰아들의 아토피가 잘 낫지 않는 모습을 보고 ‘고향에서 산다면 가족 모두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귀농을 결정하게 된 것이었다.
 

“2015년 말 처음 고향으로 귀농했을 당시에는 수익이 없었기 때문에 저는 찾아주시는 분들이 계시면 강의를 했고, 아내는 빵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전통주와 전통음식을 연구했던 것을 토대로 식초를 만들었는데 처음에는 빛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죠. 24시간이 모자를 정도로 공부와 업장에서의 시간을 보내던 20대의 시간을 회상하고 같은 시기를 보냈던 아내의 도움 덕분에 꿋꿋하게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 셰프들이 찾는 식초 개발

채연가에서 온라인을 통해 판매하는 제품  
채연가에서 온라인을 통해 판매하는 제품  

“집 주변의 산에는 봄이 되면 진달래꽃이 만발하는 군락지가 있고 잘 아는 지인이 사과를 재배하고 있기 때문에 진달래꽃과 풋사과 식초를 만들었습니다. 판로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식초를 제조한 지 1년이 넘었지만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죠. 오래된 종초를 토대로 인공 감미료 사용 없이 원물 발효를 통해서만 만들기 때문에 품질을 자부할 수 있었지만 입소문이 나기까지는 오랜시간이 걸렸죠.”
 

지금은 주문 때문에 진달래 꽃이 피는 시기에는 연락을 받지 못할 정도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군락지와 발효공간에서 지내고 있지만, 임대표에게도 제조한 지 5년 가량이 지난 식초가 판매되지 않을 만큼 어려운 시기가 있었다.

전통음식을 연구하던 시절 친분을 가졌던 셰프들이 우연하게 그의 이야기를 듣고 채연가 식초를 맛본 후 주 고객이 됐다. 주문자생산방식(OEM)으로만 판매해도 될 정도가 된 것이다.
 

식초를 발효하는 공간에서 본 식초 항아리 중 20여 개는 모두 셰프들이 주문했을 정도로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셰프들은 가장 좋은 품질의 요리재료를 사용할 뿐만 아니라 발효제품은 직접 제조하거나 믿을 수 있는 곳에서만 주문한다.
 

“지금은 특별하게 주문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이 과정이 있기까지 역경도 많았습니다. 팔리지 않은 식초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도 많았죠. 지금은 한 항아리의 가치를 인정받을 뿐만 아니라 온라인을 통해 소량으로 구매한 소비자들에게 호평도 받고 있습니다.”
 

채연가의 제품은 식초뿐만 아니라 청도 유명하다. 생강청과 도라지청은 각각 1320㎡(400평)의 농장에서 직접 재배한 원물로 소비자들이 안전하고 안심하게 섭취할 수 있도록 만들기 때문에 한 번 맛본 소비자라면 누구나 다시 구매할 정도다. 
    
 

# 가장 맛있던 것 기억과 힐링을
 

“‘가장 맛있었던 기억을 떠올려 보세요. 그 안에는 그날의 기분이, 그 공간의 분위기가, 그 곁의 사람들이 함께 합니다.’ 우리 농장인 채연가의 슬로건입니다. 저는 제품을 만들 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상상하며 만들어요. 저의 마음에 따라 가공품의 상태도 달라진다고 믿거든요.”
 

임 대표는 채연가의 제품을 맛본 소비자들이 슬로건처럼 행복한 기분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항상 제품을 만든다. 또한 직접 농장에 방문해 가공현장을 보고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에게 ‘언제든 힐링이 필요하다면 오세요!’라고 말한다. 소비자들이 산세와 계곡, 맑은 공기가 오감을 자극하는 채연가가 너무 편안하고 힐링이 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가공공장을 건립하고 이곳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문하시는 분들이 모두 치유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에 단기적으로는 가공품을 열심히 만들어 매출을 올리고 장기적으로는 이곳에서 치유농장으로 조성하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전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힐링을 제공할 수 있도록 다양한 치유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습니다. 1년에 분기별로 가고 싶은 그런 농장을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미각이 기억하는 맛보다 마음이 추억하는 맛에는 설레임과 오래도록 되새겨지는 힘이 있습니다. 그 추억은 우리에게 때로는 위로를, 때로는 그리움을, 때로는 즐거움을, 때로는 힘을 줍니다.’ 채연가의 온라인 홈페이지 대문에 적힌 글귀에 한 대목이다. 임 대표가 자연 안에서 매일 새롭고 다채로운 자연의 시간을 차곡차곡 담은 먹거리를 앞으로도 선보이길 바란다.

 

# [특별인터뷰] 정용호 함양군농업기술센터 지도사
 

 

“채연가는 청년농업인중에서도 농산물 가공분야에 특화돼 있습니다. 창업 전 발효에 관한 연구와 요리경력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발효식초와 청 등을 가공식품으로 만든 것이 채연가를 알리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정용호 함양군농업기술센터 지도사는 2019년부터 청년농업인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부산대 원예학과를 졸업한 그는 외가에서 어렸을 적부터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농촌이 친숙했으며 농촌진흥청의 코피아 인턴으로 에티오피아에 다녀오면서 이론적인 연구를 실제 현장에 적용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농촌지도사의 길을 선택했다.
 

“함양의 청년농업인 대부분이 청년4-H연합회에 가입돼 있습니다. 4-H연합회가 구심점이 돼 다양한 활동을 통해 영농정보 교류와 농업·농촌생활을 함께 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있는 것이죠. 신소득작물이나 창의적인 아이디어 등 신기술 등을 적용할 수 있는 4-H영농시범사업을 자체적으로 추진할 뿐만 아니라 올해부터는 품목별로 소규모 동아리를 구성해 학습활동, 강의 등을 통해 전문농업인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4-H연합회의 사업도 사업이지만 함양군에서는 청년후계농 영농정착지원사업, 청년농업인 경영진단분석 컨설팅 사업, 청년농업인 취농직불제사업, 청년농업인 취농인턴제사업, 청년농업인 커뮤니티 활성화 지원, 차세대농업인 성공모델육성사업, 청년농업인 경쟁력 제고사업, 청년농업인 품목별 동아리운영·과제교육 등 다양한 지원사업도 펼치고 있다.
 

“청년농업인들은 농업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청년농업인들이 농업기술센터와 꾸준히 소통하고 협업함으로써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실현해서 안정적인 영농정착과 청년농업인의 성공모델로 정착시킬 수 있도록 적극 육성하고 지원하는 데 일조하겠습니다.”
 

정 지도사의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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