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쌀보다 제분 비용 절반…안정적 생산기반 조성 뿐 아니라 글루텐프리 등 장점 살린 제품화·홍보로 소비시장 만들어져야

쌀의 구조적 공급과잉 문제 해소
수입 의존하는 밀 일정부분 대체해
식량자급률 제고 기여 기대

올해 쌀가루 산업 지원에 71억 예산 편성
전문 생산단지서 1만 톤 물량 생산 기대

제분비용 뿐 아니라 상품화에 이르는
전 과정 투입비용 줄어야 경쟁력 생겨

쌀가루에 최적화된 상품·레시피 개발해
쌀가루만의 시장 만들어야
글루텐프리 식품 수요 높은 유럽 등 겨냥
상품화·소비홍보하면 수출 시장 노려볼만

수매부터 소비홍보까지
지속적 정부 지원 필요

[농수축산신문=이한태 기자]

지난 4월 27일 aT센터에서 열린 ‘2023 가루쌀 미래비전 선포식’에서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가루쌀산업 활성화를 다짐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드라이브 속에서 가루쌀산업 육성정책이 추진 중이지만 아직 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가공 적성을 최대의 강점으로 꼽고 있는 가루쌀을 활용한 상품화와 이를 위한 원료의 안정적인 생산과 공급, 그리고 정책의 예측가능성과 지속성 등이 주된 과제로 지목되고 있다.

가루쌀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과제를 살펴봤다.
 

# 가루쌀, 새로운 식품 원료로 기대

올해 정부는 쌀소비 감소에 따른 구조적 수급 문제 해결과 식량안보 기능 강화를 위해 가루쌀산업을 육성하기로 하고 전문 재배단지 조성, 쌀가루 제품개발, 쌀가루산업 소비판로 확대 등을 위한 지원을 실시하고 있다.

가루쌀을 활용해 쌀가공식품산업을 활성화 시킴으로써 쌀의 구조적 공급과잉 문제를 해소하고 수입에 의존하는 밀을 일정부분(10%) 대체해 식량자급률 제고에도 기여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가루쌀은 치밀한 전분 구조로 가공에 많은 비용이 소요되던 기존 밥쌀이 지닌 한계를 뛰어난 가공 적성으로 극복, 새로운 식품 원료로 활용될 수 있다는 높은 기대감을 안고 있다. 또한 이미 잘 갖춰진 논 기반에 별도의 설비를 갖추거나 할 필요가 없으며 늦은 모내기 시기로 이모작이 가능해 농가소득 증대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게 농림축산식품부의 설명이다.

이를 위해 농식품부는 올해 쌀가루 산업 지원을 위해 71억 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가루쌀 생산단지(31억 원) 38개소 2200ha에서 1만 톤 물량의 생산을 기대하고 있다. 가루쌀 제품개발(25억 원)과 관련해서는 지난 2월 7.2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기록하며 사업 신청을 마무리하고 15개 식품업체 19개 제품을 선정해 지난 4월 ‘가루쌀 미래비전 선포식’을 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쌀가루 산업 소비판로 확대(15억 원)를 위해 ‘가루쌀빵 신메뉴 품평회’를 열고 가루쌀로 빵을 만드는 동네빵집(제과업체) 19개소를 선정, 시상하고 소비 확대를 위한 지원 계획을 밝혔다.
 

지난달 22일 충남 서산 간척지에서 진행된 가루쌀 모내기 모습
지난달 22일 충남 서산 간척지에서 진행된 가루쌀 모내기 모습

# 뛰어난 가공 적성?

농식품부에 따르면 가루쌀의 가장 큰 장점은 가공 적성이다. 쌀은 밀과 달리 분쇄 시 가루가 되지 않고 깨지거나 부스러진다. 쌀가루 가공이 어려운 이유다.

이에 대부분의 쌀가루 가공(제분)은 전분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쌀을 물에 불려(수침) 기류를 이용해 분쇄하는 습식제분 방식을 택하고 있다. 습식제분이 그냥 분쇄하는 건식제분보다 품질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식품영양과학회지 ‘효소 전처리에 의한 습식제분 쌀가루의 이화학적 특징’ 보고서 등에 따르면 건식제분은 쌀가루의 전분손상 증가와 많은 열 발생을 초래하는 반면 습식제분은 수침 과정을 통해 전분구조 사이의 결합력이 약해져 건식제분보다 고르며 전분손상이 줄일 수 있다.

다만 습식제분은 비용이 증가하는 문제가 있다. 수침과정은 시간이 오래 걸려 생산성이 낮아지고 기류분쇄는 일반 롤러를 이용한 분쇄보다 설비는 비싼 반면 단위 시간당 생산량은 훨씬 적기 때문이다. 여기에 폐수처리에 따른 비용도 발생한다. 이같은 고비용의 처리과정 때문에 쌀가루산업은 밀가루산업보다 더딘 산업화 행보를 걸어왔다.

하지만 가루쌀은 이러한 쌀의 1차 가공(제분)에서 나타나던 한계를 크게 개선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가루쌀은 건식제분에 용이하기 때문에 밀가루를 대체할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올해 밀가루 제분시설에서 가루쌀을 제분했던 사조동아원의 이재강 제분연구소장은 “밀가루를 제분하던 설비 그대로 가루쌀을 제분했다”며 “밀에 최적화된 상태에서 제분을 했지만 제분이 가능해 가루쌀을 활용한다면 쌀가루 가공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농가와의 계약재배를 통해 3년째 가루쌀을 제분하고 있는 배금주 새롬푸드 대표는 “가루쌀은 연질이라 분말화가 잘 돼 일반쌀이 분쇄 시 시간당 200kg를 생산할 수 있다면 가루미는 500kg까지도 생산이 가능할 정도고 입자도 부드럽다”며 “같은 시간에 많은 양을 생산하니까 가공비용이 일반 쌀에 비해 절반 정도”라고 말했다.

반면 가루쌀의 장점이 아직은 크지 않다는 입장도 있다.

국내 한 소규모 제분업체 관계자는 “현재 시설과 설비 수준이 크게 향상돼 일반쌀도 건식제분이 충분히 가능하다”며 “반드시 가루쌀만 건식제분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품화 했을 때 일반쌀보다 맛 등이 우수해야 진정한 차별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습식제분으로 쌀가루를 생산하고 있는 또 다른 제분업체 관계자는 “가루쌀이 밀가루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빵, 과자는 물론 면이나 떡도 돼야 한다”며 “가루쌀 가공제품은 빵이나 과자는 어느 정도 가능한데 찰기가 필요한 떡 등은 습식제분과 비교해 가공 적성이 우수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 문제는 비용이다

가루쌀은 기존 쌀 제분에 비해 상대적으로 1차 가공비용이 덜 투입되기 때문에 밀가루를 대체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쌀가루를 만드는 과정뿐만 아니라 쌀가루로 쌀가공제품을 만들어 상품화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의 투입비용이 줄어야 한다. 쌀가공식품의 원료곡 공급가격이 줄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kg당 제분비용은 쌀을 습식으로 제분할 경우 600~950원, 건식으로 제분할 경우 300~500원으로 2배 가까운 차이가 난다. 생산성이 우수한 밀의 제분비용은 150원 수준으로 전해진다. 쌀을 아무리 낮은 비용으로 가공(제분)하더라도 밀보다 2배의 제분비용이 드는 것이다. 정부가 가루쌀 장려정책을 전개하는 이유다.

하지만 제분비용만을 절감해서는 한계가 있다. 과거 MB정부는 쌀 수급균형과 논 타작목 재배 유도를 목적으로 쌀가공식품 육성 정책을 추진했다. 주요 내용은 쌀가공식품 확산을 위해 기업과 쌀가공식품에 대해 연구개발(R&D)과 가공시설 투자 지원 등을 실시하고 국내 밀가루 사용량의 10%를 쌀가루로 대체하는 ‘R-10 코리아 프로젝트’를 통한 소비 홍보였다. 특히 쌀가루 제분에 필요한 비용의 일정부분을 정부가 부담해 업계의 쌀가루가공 부담을 덜어줬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이 사라지자 과감한 투자를 했던 제분업체가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등 관련 업계의 수익구조가 크게 악화됐다. 쌀가루 자체가 경쟁력이 있는 가격에 가공업체로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지 못한 결과였다.

때문에 업계는 이번 가루쌀 활성화 정책이 제분비용을 줄이는 것에 머물 것이 아니라 가공업체에 안정적이고 경쟁력 있는 가격에 쌀가루를 공급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길 희망하고 있다.

농식품부 주최, 한국쌀가공식품협회 주관으로 올해 열린 ‘쌀가공식품산업대전(RICE SHOW)’에 참가한 한 업체 관계자는 “가루쌀이 가공에 유리하다고 하는데 이는 단가가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 가운데 안정적으로 원료가 공급될 때 이야기”라며 “정부비축미 수준의 가격으로 공급되기 위해서는 정부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이에 대한 믿음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쌀가공식품업계에 따르면 kg당 공급단가는 일반 쌀가루가 3000~4000원, 정부비축미가 1000원 수준이며 밀가루는 500~800원 수준이다. 만일 가루쌀로 만든 쌀가루의 단가가 3000원 수준이 된다면 정부비축미 수준으로 공급단가를 맞추기 위해서는 kg당 2000원 가량의 정부 지원이 유지돼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와 관련 농식품부는 공급단가와 관련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며 이달 중 업계와의 간담회를 통해 적정 수준의 공급가격에 대한 의견을 청취하기로 해 귀추가 주목되고 있는 상황이다.
 

# 안정적 생산기반 조성

가루쌀 쌀가루가 안정적으로 공급되기 위해서는 생산 기반이 잘 갖춰져야 한다. 이에 농식품부는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가루쌀 생산단지에 대한 지원을 지속할 계획이다. 가루쌀 재배면적을 확대해 내년에 1만ha, 2026년에는 4만2000ha수준으로 확대하는 등 단지화와 공동영농을 지원할 예정이다. 특히 내년에도 교육·컨설팅, 시설·장비, 전략작물직불금 등을 지원하고 생산 전량을 정부가 매입하며 맞춤형 생산기술과 종자를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삭에서 싹이 터 쌀이나 종자로 사용할 수 없게 되는 수발아 문제가 완벽하게 해소되지 않았다. 올해 정부는 이모작 작부체계 구축과 함께 수발아 문제를 피하기 위해 가루쌀 이앙시기를 지난달 말에서 이달 초로 설정했다. 재배적지를 선정할 때도 수발아 위험이 낮은 곳 중심으로 선정했다. 수확 이후에도 최대한 빠른 시간에 건조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 수발아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전남지역에서 한 수도작 농가는 “올해 초 가루쌀과 관련해 ‘올해 심을 종자도 없을 정도로수발아 피해가 심했다’는 얘기가 돌았다”며 “정부에서 수발아 피해 최소화를 위해 맞춤형 영농지도를 한다고는 하지만 올해 폭우 우려도 있고 기후변화와 이상기상 등으로 어떤 피해가 발생할지 몰라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또 다른 농가도 “올해는 정부가 공공비축미 가격으로 전량 수매한다고 했지만 이러한 정책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상황”이라며 “가루쌀이 일반 쌀보다 수량성이 적은데 정부의 이같은 수매 지원이 앞으로도 지속된다는 확신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가루쌀 쌀가루만의 시장 만들어야

쌀가공제품을 단순히 밀가루 제품을 대체하는 상품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상품으로 인식시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재강 소장은 “가루쌀도 기본적으로 쌀이기 때문에 가공적성이 밀과 다를 수밖에 없고 가공하는 업체에 따라 활용도가 달라져야 한다”며 “이는 가루쌀 쌀가루를 새로운 식품 원료로 인식해 업체별·제품별로 최적화된 상품과 레시피를 개발해 활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가루쌀 쌀가루가 밀가루처럼 가공해 활용하기에는 용이하지만 기본적으로 쌀의 성질을 지니기 때문에 밀가루와 동일한 제품, 가공방식으로 접근하기보다는 가루쌀 쌀가루만의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종규 한국쌀가공식품협회 상임부회장도 “우리는 ‘쌀국수를 먹자’고 하면 쌀로 만든 잔치국수나 비빔국수를 떠올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베트남 쌀국수를 떠올린다”며 “쌀로 만든 대표적인 제품과 소스 등을 개발해 음식으로 연계시키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부회장은 “유럽이나 미국 등 글루텐프리 식품에 대한 수요가 높아 성장세인 시장을 겨냥한 제품화와 상품화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국내에서 쌀가루 가공제품은 균일한 품질과 상품화, 소비홍보 등의 과제가 있지만 이미 글루텐프리의 대표적인 쌀을 가공에 용이하도록 만든 가루쌀 쌀가루라면 그 자체만으로도 수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5월 3일부터 지난달 2일까지 경기 킨텍스 전시장에서 열린 ‘2023 쌀가공식품산업대전(RICE SHOW)’에서 전시된 쌀빵, 쌀과자, 쌀맥주 등 다양한 가루쌀 제품들
지난 5월 3일부터 지난달 2일까지 경기 킨텍스 전시장에서 열린 ‘2023 쌀가공식품산업대전(RICE SHOW)’에서 전시된 쌀빵, 쌀과자, 쌀맥주 등 다양한 가루쌀 제품들

# 정부 의지가 성패 가른다

현재 가루쌀산업 육성 정책 자체가 정부 주도로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만큼 성패는 정부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게 관련 업계나 농업 현장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정부 지원 중심으로 사업이 추진돼 민간에서는 정부를 믿고 시설이나 설비를 변경하는 등 투자를 했지만 정부 지원이 축소되거나 중단될 경우 손실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쌀가공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제분 설비만 해도 라인 하나에 10억 원 이상에 달하는 등 시설 설비를 갖추는 데에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고 밀가루 제분라인과 쌀가루 제분라인을 동시에 운영할 수는 없기 때문에 같은 라인을 사용하더라도 혼입 방지를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며 “정권이나 관련 부처 수장이 바뀌는 등 업계와 무관한 이유로 정책이 중단되거나 변경되더라도 손해는 고스란히 업계가 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 불안하다”고 말했다.

쌀가루 자체가 밀가루보다 비싸기 때문에 소비홍보 부분에 각별한 노력이 요구되는데 단기간에 효과를 체감하기 힘든 상황에서 민간에서 소비홍보에 지속적인 투자를 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정부에서 확실한 소비시장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보다 신경써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임병희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정부가 정책적으로 가루쌀 재배면적을 4만ha까지 늘린다고 했지만 이를 소비할 수 있는 시장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4만ha의 가루쌀 재배면적은 언제고 다시 밥쌀용 쌀 재배면적으로 돌아갈 수 있다”며 “공공비축미 가격에 정부가 전량 수매하고 가공단계에서 시설이나 기계 등을 지원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쌀가루로 만든 제품은 밀가루로 만든 제품보다 비쌀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이에 대한 소비자의 지불의사를 확대·반영할 수 있는 시장이 제대로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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