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산신문=박유신·이한태·김소연·박세준·이두현 기자]

지난 10일부터 이어진 집중 호우로 인해 농축산 피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16일 배수장 인근 지천 제방 붕괴로 물이 범람해 충남 청양군 청남면 인양리 축사들이 물에 잠겼다. 사진은 폭우로 잠겨버린 축사의 소들이 구조만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사진 : 연합뉴스]
지난 10일부터 이어진 집중 호우로 인해 농축산 피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16일 배수장 인근 지천 제방 붕괴로 물이 범람해 충남 청양군 청남면 인양리 축사들이 물에 잠겼다. 사진은 폭우로 잠겨버린 축사의 소들이 구조만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사진 : 연합뉴스]

 

충청, 전북, 경북에 집중된 유례없는 호우로 인해 전국적으로 3만ha가 넘는 농경지가 물바다로 변해 풍년을 꿈꿨던 농업인들의 한숨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10일부터 18일(6시 기준)까지 내린 호우로 농경지 침수 3만319.1ha, 낙과 86.4ha, 유실·매몰 659.2ha 등 농작물 3만1064.7ha가 피해를 입었으며, 축사 등 29.9ha의 시설파손과 69만3000마리의 가축이 폐사했다. 지역별로는 전북이 전체 피해면적의 절반가량인 1만4572.3ha로 가장 큰 피해를 입었으며 충남 1만329.7ha, 충북 2571.5ha, 경북 2160.7ha, 전남 1195.5ha, 경기·강원 등 기타 235ha 순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기록적인 호우로 피해가 갈수록 커지면서 현장 농업인들의 가슴도 타들어 가고 있다.

이번 집중호우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전북지역 이정용 김제농협 조합장은 “정부에서 권장하는 대로 논에 콩을 열심히 심었는데 가장 큰 피해를 봤다”며 하소연했다.

쌀 주산지 중 하나였던 김제지역은 현재 논콩 주산지가 됐다. 이중 김제농협 관내인 죽산면 의 경우 논콩으로의 전환율이 90%가 넘을 정도인데 이번 집중호우로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된 것이다. 실제 지난 10~18일 기준 전체 콩 침수피해면적 5260.2ha 가운데 2500ha가 김제에서 발생했다.

이 조합장은 “이달 말 개화기에 배꼽까지는 커야 하는 논콩이 현재 무릎까지 밖에 오지 않는다”며 “비가 그쳐봐야 알겠지만 집중호우로 ‘저수지에 콩 심은 격’이 되면서 뿌리가 썩어 성장이 안 되고 대체작물도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이 조합장은 “3000ha 이상의 논콩이 전멸한 것으로 추산된다”며 “이같은 상황을 감안해 재난지역 선포와 보험 규정 완화 등 농가가 생산비라도 건질 수 있도록 하는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농협 등에서는 이번 집중호우로 피해를 입고 대체작물 식재를 하지 못해 직불금을 지급받기 어려워진 농가를 대상으로 휴경 직불을 지급하고 보험 가입기간 연장 등 조건 완화를 건의하고 있다.

정부가 역점으로 추진 중인 가루쌀 재배지의 피해도 컸다.

전북 익산에서 24개 회원농가와 함께 60ha 규모의 논에 가루쌀을 재배하고 있는 이승택 미미농산 대표는 “이번 집중 호우로 절반 가량인 30ha가 침수됐다”며 “저수지처럼 변한 논을 보며 2020년에도 50일 넘은 장마로 농사를 망쳤는데 이번에도 망칠까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고 한탄했다.

더불어 이 대표는 “지난달 말 모내기를 마치고 지금은 볍씨를 만들기 시작하는 생식생장기로 전환되는 시기를 앞두고 있어 생산량이 떨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라는 하소연과 함께 “여러해 가루쌀을 재배하다 보니 일반 벼와 같이 바로 물빼기 작업 후 3~4일 정도 말린 다음 물에 요소를 섞어 뿌려주면 도움이 된다”며 가루쌀 재배 전문농업인으로써 노하우를 전하기도 했다.

지난 16일 이종범 청주축협 조합장을 비롯한 임직원들이 폭우피해가 가장 심한 축산농가 6곳을 찾아 피해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 16일 이종범 청주축협 조합장을 비롯한 임직원들이 폭우피해가 가장 심한 축산농가 6곳을 찾아 피해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70만여 마리의 가축이 폐사하는 등 축산 피해도 컸다. 특히 상대적으로 시설이 열악한 토종닭 농가의 피해가 큰 것으로 알려졌으나 아직까지 공급에 차질이 있을 정도의 피해규모는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토종닭협회 관계자는 “계열화 농가 중심으로 조사한 결과 작은 피해까지 합쳐 20여 농가에서 피해를 본 것으로 파악됐다”면서 “직접적인 폐사로 이어진 곳은 12농가로 총 13만 마리가량이 폐사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폭우로 소비 둔화가 이어지고 있어서 공급에 차질이 있을 정도는 아니다”면서 “다만 각 농가 입장에서는 생산비 급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와중에 폭우 피해까지 겪게 돼 경제적인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유례없는 집중호우에 산사태 피해도 컸다.

산림청에 따르면 지난 17일까지 신고된 산사태는 모두 325건으로 잠정 집계됐다. 인명피해만도 사망 10명, 실종·매몰 3명, 부상 5명 등이 발생했다.

잇따른 산사태 피해로 임업인들의 피해도 클 것으로 예상되지만 계속 내리는 비에 피해 신고 외 피해 상황을 조사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직접적인 비 피해는 아니더라도 지속적인 호우와 부족한 일조량으로 임가의 걱정도 늘고 있다. 충북에서 대추를 재배하는 한 임업인은 “다행히 직접적인 비 피해는 없었지만 대추가 개화기임에도 계속 비가 쏟아져 수정이 많이 안됐다”며 “지난해에도 흉년이었는데 올해는 지난해보다도 못할 것 같아 걱정이다”고 근심을 털어놓았다.

이처럼 전국 곳곳에서 농작물 피해가 늘면서 일부 농산물 가격도 급등했다.

지난 주말 이후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는 수박 상품 기준으로 1kg당 평균 2200원에 거래됐다. 이는 전주 대비 20%가량 상승한 가격이다. 상추와 백다다기오이도 상품 기준 각각 4kg 상자가 7만 원 내외, 50개 2만5000원 내외로 거래돼 전주 대비 40%, 30% 이상 상승했다.

이에 대해 이재희 중앙청과 과일영업관리이사는 “충남 부여, 전북 익산 등 대형유통업체와 계약재배한 수박 농가의 피해가 커 전체적인 물량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그나마 강원 양구 지역은 호우 피해가 적어 부족한 물량을 메꿀 수 있겠지만 수박 가격 상승은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종호 서울청과 이사는 “전국적으로 많은 양의 비가 내리면서 최근 출하되는 과일의 당도가 대체로 떨어진다”며 “장마가 길어지며 품위 하락과 함께 물량도 부족해지면서 전반적인 과일 시세가 불안정해질 수 있다”고 우려를 전했다.

잦은 비로 산지 출하 작업에도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광형 한국농업유통법인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알배추와 열무 등 산지에서 수확해 상자에 담아 출하하는 상품들의 경우 잦은 비로 작업이 불가능해 일정이 지연되고 비가 그친 후에도 쉽게 젖어 출하에 문제가 있다”며 “이런 경우 유통 과정에서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도매가격까지 나쁘면 손해를 볼 수 있는 만큼 시세와 물량 등을 잘 살피고 출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7일 집중호우 대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며 직접 호우피해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7일 집중호우 대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며 직접 호우피해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호우 피해가 갈수록 늘면서 정부도 긴급 대책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7일 집중호우 대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며 호우로 인한 피해 현황과 대처 상황을 점검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복구 작업과 재난 피해에 대한 지원 역시 신속하게 이뤄져야 하고 특별재난지역 선포 등 정책 수단을 모두 동원해 후속 조치를 신속하게 추진해 주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특히 윤 대통령은 농식품부가 중심이 돼 농가 피해 상황과 통계를 챙겨볼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이 지난 17일 집중호우로 피해를 입은 전북 김제시 콩 생산단지 찾아 피해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이 지난 17일 집중호우로 피해를 입은 전북 김제시 콩 생산단지 찾아 피해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이와 관련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은 지난 17일 집중호우로 피해를 입은 전북 김제시 콩 생산단지와 충남 부여군 시설하우스를 방문, 농업인을 위로하고 피해 상황을 점검했다.

정 장관은 이 자리에서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를 신속히 파악하고, 농가가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영농과 일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도록 피해 복구와 농가 경영안정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 정 장관은 “추가 피해 최소화를 위해 배수 처리에 최선을 다하는 한편 피해가 큰 콩에 대해서는 별도 지원대책을 마련하고 시설하우스의 조속한 복구로 농업 경영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전했다.

국회에서도 집중호우에 따른 농업분야 피해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번 집중호우로 피해가 컸던 전북 김제와 부안을 지역구로 둔 이원택 더불어민주당 전국농어민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7일 성명서를 통해 “전북지역을 비롯해 전국 많은 지역에서 농업분야 피해가 발생, 논콩을 포함해 대부분의 작물들이 파종을 마치고 개화기에 들어간 상태여서 피해가 더욱 심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벼 생산 농가에 대한 신속한 재배환경 복구와 정부와 농협 등을 통한 재정지원, 보험 지급확대, 전략작물직불제 품목 확대 등을 통한 적극적인 피해보상, 재해보험 가입기간 연장, 재파종을 위한 시설 복구 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위원장은 “피해가 심한 경북, 충북 등 최대한 많은 지역의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촉구하며 농업분야 피해가 심각한 지역 역시 특별재난지역에 포함돼 신속한 피해복구가 이뤄지도록 하겠다”며 “매해 농촌에서 반복되는 침수 피해를 막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으로 배수시설 개선, 침수 예측·경보시스템 구축, 신속하고 합리적인 재정 지원 체계 마련 등을 위해서도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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