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산신문=이두현 기자]

전남 고흥군 금산면의 조생 양파 수확 현장
전남 고흥군 금산면의 조생 양파 수확 현장

섬과 섬을 잇는 다리를 두 개나 지나야 갈 수 있는 전남 고흥군 금산면. 제주에 이어 조생 햇양파 출하의 선두에 있는 지역이다.

지난 4일 방문한 금산은 예년 같으면 양파 수확이 한창이었을 테지만 전날부터 간간이 이어진 빗살과 흐린 날씨로 작업 중인 밭은 단 한 곳에 불과했다. 그 옆으로 수확을 기다리는 양파밭을 살펴보니 대다수의 양파에 꽃대가 올라오고 있었다.

김형관 양파생산자협회 고흥군지회장
김형관 양파생산자협회 고흥군지회장

그간 생육 환경이 너무 열악하다 보니 종족 번식을 위해 평소보다 일찍 양파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상태에서 10일가량 있으면 양파 가운데 심이 억세져 섭취가 어려워 상품성이 떨어집니다.”

수확 현장에서 만난 김형관 전국양파생산자협회 고흥군지회장은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작업을 강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궂은 기상으로 지난 4일 기준 고흥 지역 양파 수확 비율은 5% 남짓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 해 농사의 결실을 거둬들이는 수확 작업을 바라보면서도 그늘진 그의 낯빛에서 올해 양파 농사가 썩 만족스럽지 않았음을 읽을 수 있었다.

김 지회장은 지난해 12월 한파 피해에 이어 한창 생육해야 할 시기에 잦은 강수로 일조량이 부족해 양파가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생육 환경이 안 좋아 양파를 조금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평소보다 많은 약을 쓰고 두 배, 세 배 관리하다 보니 생산량에 비해 생산비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인부들이 수확해 한 단씩 묶어놓은 양파는 한눈에 봐도 알이 매우 잘았다. 더욱 애석한 것은 작업한 양파 주변에 뽑힌 채 그대로 뒹굴고 있는 소위 비품 양파들이 얼추 봐도 정상품의 절반가량은 돼 보였다는 점이다.

김준기 양파생산자협회 고흥군지회 사무국장
김준기 양파생산자협회 고흥군지회 사무국장

함께 양파 수확 작업을 살펴보던 김준기 양파생산자협회 고흥군지회 사무국장은 평년 같으면 양파밭 1평당 20kg 정도 수확하지만 올해는 17kg을 겨우 수확하고 있다이마저도 삼분의 일은 분구(양파 구가 2개로 나뉘는 것)해 상품성이 없어 밭에 그대로 버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실질적인 금산 지역 양파 생산량은 평년에 비해 40%가량 감소했다.

분구한 양파는 20kg 망에 담아 시장에 보내도 겨우 5000원 정도를 쳐줘 물류비를 건지기도 어려운 수준이다. 그렇기에 밭에 그대로 버리는데 이마저도 빨리 썩지 않고 연말 양파 정식시기까지 남아 자칫 병해를 유발할 수도 있다.

더불어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밭에 버린 양파를 몰래 수거해가 양파즙을 짜거나 장아찌를 담그는 등 시장의 양파 수요를 저해하는 행동을 하고 있어 올해 금산 곳곳에는 포전에 남겨진 양파 수거를 엄금하고 적발 시 강력히 조치한다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지난겨울 냉해와 잦은 강우에 따른 일조량 부족으로 고흥 지역 조생 양파 작황은 예년에 비해 10% 이상 감소했다. 더불어 양파 알이 작고 분구 등 상품과의 비율이 높아 실질적 생산량은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지난겨울 냉해와 잦은 강우에 따른 일조량 부족으로 고흥 지역 조생 양파 작황은 예년에 비해 10% 이상 감소했다. 더불어 양파 알이 작고 분구 등 상품과의 비율이 높아 실질적 생산량은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수확 현장에서는 이러한 분구 양파 역시 모양이 이쁘지 않고 다듬기가 다소 번거로울 뿐 섭취에는 문제가 없는 만큼 공급 물량 부족 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김 사무국장은 지난달 정부가 양파 조기 출하를 유도하기 위해 출하 장려금을 지원했던 것과 같이 분구 양파에 대해서도 일부 지원책을 세운다면 산지에서 분구 양파도 작업해 시장에 출하할 것이라며 이는 전반적으로 공급량이 적어 시세가 올라가는 상황에서 양파 가격 안정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처럼 작황 부진으로 농가의 근심이 깊은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부가 또다시 저율할당관세(TRQ)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지난 2‘2024년 양파 1차 세계무역기구(WTO) TRQ 실수요자 배정공고를 통해 50% 관세율이 적용되는 1차 물량 2000톤을 배정하고 2차로 3000톤도 추진한다고 밝혔다.

김 지회장은 정부는 산지 현황은 살피지도 않고 물가만 잡겠다는 탁상행정으로 햇양파 출하 초기부터 TRQ 도입을 발표했다농업인의 생존을 고려하지 않으니 젊은이들은 전부 농촌을 떠나고 지방이 소멸하는 것 아니냐고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흐린 날씨로 양파 수확 작업이 더딘 가운데 야속하게 양파 추대만 올라오고 있다.
흐린 날씨로 양파 수확 작업이 더딘 가운데 야속하게 양파 추대만 올라오고 있다.

기상도 도와주지 않고, 정부마저 농업 생산 기반 안정보다는 물가 안정을 선 순위에 두고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니 농업인 스스로 적응하고 생존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 사무국장은 지난해 가을 양파 파종 시기에 기상청의 중장기 예보를 확인하고 초겨울 날씨가 따뜻할 것으로 예상해 평년보다 늦게 파종했지만 대부분의 농가는 관행적으로 전년도와 같은 시기에 파종해 한파 피해가 상대적으로 컸다기후변화가 날로 심각해짐에 따라 양파 재배 여건도 이전과는 판이해지는 만큼 농가 스스로 변화에 적응하고 대비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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