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료검사 대상이 조개젓에 국한
어장서 채취된 바지락은 하절기 5~6일, 동절기 7~10일 정도 보관
원료검사만 10일 이상 걸려
현실에 맞지 않아
조개젓 생산업체에 검사 의무화하면서 관련업계 의견조회 과정 거치지 않아
'조개무침'으로 변경 판매는 검사의무 없어

[농수축산신문=김동호 기자]

 

수산식품기업 육성을 위한다고 수산식품클러스터를 조성하고 있는 해양수산부가 법적인 근거도 없이 수산식품기업을 규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A형 간염 유행 당시 역학조사를 통해 A형 간염바이러스가 국내·외에서 생산된 조개젓에서 기인했다고 밝혀졌다. 이에 따라 당시 질병관리본부와 해수부, 식품의약품안전처, 환경부 등은 관계기관 회의를 통해 조개젓 생산·판매 과정의 안전관리를 강화했다. 당시 해수부가 수립한 ‘조개젓 원료관리를 위한 바지락 A형 간염 바이러스 검사계획’에 따르면 바지락 안전관리를 위해 바이러스가 없는 바지락을 조개젓 원료로 사용하도록 바지락 납품업체가 납품하기 전 조개젓 원료에 A형 간염 바이러스 검사를 실시, 검사증명서를 발급받아 제조업체에 제출하도록 했다. 또한 분석기관은 A형 간염 바이러스 분석결과를 해수부와 식약처에 통보해야한다. 이 과정을 거쳐 생산된 최종 상품인 조개젓은 다시 한번 A형 간염바이러스 검사를 받은 후 그 결과를 식약처에 제출해야 판매할 수 있다.

하지만 해수부가 실시하는 원료검사는 법적 근거가 사실상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료검사의 법적 근거를 묻는 본지 기자의 질문에 대해 해수부 수산물안전정책과 측은 식품위생법 제4조에 따라 해수부가 원료검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식품위생법 4조는 ‘위해식품 등의 판매 등 금지’를 규정하고 있는 조항으로 인체의 건강을 해칠 우려가 있는 식품, 유독·유해물질이 들어있거나 그러할 염려가 있는 식품, 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에 오염됐거나 그러할 염려가 있어 인체의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식품 등은 판매하거나 판매할 목적으로 채취·제조·수입·가공·사용·조리·저장·소분·운반 또는 진열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식품위생법은 식약처 소관 법률인데다 제4조에는 해수부 장관이 원료를 검사할 수 있다는 조항이 없다. 해수부의 설명대로라면 해수부는 명확한 법률적인 권한도 없이 수산식품기업 측에 원료검사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위법적인 행정행위라는 지적이 나온다. 2019~2020년 당시 A형 간염의 확산을 막기 위해 긴급하게 시행된 조치라 하더라도 사후적으로 법적 근거를 마련했어야 하나 해수부는 법령을 제·개정하지 않은 채 법적 근거도 없는 규제를 유지했다.

해수부가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 규제를 지속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20년 1월 취해진 원료검사 의무화 조치는 ‘별도 통보시까지’ 한시적으로 운용한다는 계획이었다. 2019년 당시 A형 간염 감염환자가 급증하면서 이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후 A형 간염의 유행세가 잦아들었음에도 여전히 규제가 유지되고 있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연간 A형 간염 발생 건수는 2017년 4419건에서 2019년 1만7598건으로 늘었다가 2020년 3989건, 2021년 6583건, 2022년 1890건 등의 추세를 보였다. 즉 2019년 이후 A형 간염바이러스의 확산이 잦아들었던 것이다.

법률적인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조개젓 생산업체들에게 원료검사를 의무화하는 과정에서 조개젓 생산업체 등의 의견도 묻지 않은 채 해수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했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정책을 결정하거나 규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는 통상적으로 이를 설명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거친다. 하지만 해수부는 조개젓 생산업체에 검사를 의무화하면서 관련 업계의 의견을 조회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아울러 해수부가 실시하는 원료검사가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어장에서 채취된 바지락은 하절기에는 5~6일, 동절기에는 7~10일 정도 보관할 수 있다. 하지만 해수부가 실시하는 원료검사만 10일 이상 걸린다는 것이 조개젓 생산업체 측의 지적이다. 즉 해수부의 원료검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에는 바지락을 폐기해야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원료검사의 대상이 조개젓에 국한된다는 것에서 실효성이 없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현재 원료검사가 의무화되는 대상은 조개젓 생산업체밖에 없다. 동일한 산지의 동일한 유통업체가 판매하는 바지락이라 하더라도 대형유통업체에서 판매되는 바지락은 검사의무가 없으며 기업이 상품을 ‘조개젓’이 아닌 ‘조개무침’으로 변경해서 판매할 경우에도 검사의무가 없다. 즉 해수부가 시행하는 원료검사는 A형 간염의 유행을 막는다는 목적을 이루는 데도 유효한 수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박은희 강경형제식품 대표는 “정부가 요구하는 검사를 보면 국내산 바지락으로는 조개젓을 담가 팔지 말라는 것으로 느껴진다”며 “2021년부터 수차례에 걸쳐 해수부와 식약처에 관련 문제를 제기하고 국민신문고에 글도 올려봤지만 달라지는 건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수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A형 간염 발생 건수가 연간 4000건 수준에서 2019년 1만7000건까지 치솟으면서 원인으로 지목된 조개젓에 대한 관리가 필요했었다”며 “하지만 A형 간염 확산세가 안정화된 이후에는 검사를 의무화한 것을 철회했어야 하나 이를 이행하지 않은 채 지금의 상황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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