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산신문=이한태 기자]
본격적인 수확기가 시작되고 있지만 농가는 기쁨보다 걱정이 앞서고 있다. 정부의 대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산지 쌀값 하락세가 지속되면서 올해산 벼 수매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달 25일 산지쌀값은 80kg 정곡 기준 17만4592원으로 지난해 수확기(10~12월) 평균 20만2797원 대비 2만8205원, 13.9%가 하락했다. 가장 가격이 좋았던 지난해 10월 5일 21만7552원과 비교해서는 무려 4만2960원, 19.7%나 폭락했다.
문제는 이러한 하락세가 반등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농협의 쌀 재고는 아침밥먹기 운동, 수출 지원, 가공용 쌀공급 등 부단한 소비 확대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하순 기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만 톤 이상 많았던 것으로 추산된다. 쌀값이 곤두박질하니 벼값이라고 버텨낼 재간이 있을 리 없다. 경남지역에서 40kg 벼 한 가마니가 5만1000~5만2000원에 거래가 이뤄지는 등 가격은 폭락을 거듭하고 있다. 현장에서 창고 여석 부족을 우려하며 조속한 격리물량 배정·처리를 성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충남 지역 한 농협 조합장은 “추석 등 휴일을 핑계로 시장격리 물량 배정이 자꾸 늦어져 창고 여석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협이 많다”며 “어차피 할 시장격리였다면 정부가 애초에 많은 물량을 한 번에 격리했으면 지금처럼 현장이 혼란스럽지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낮은 가격에 창고를 차지하고 있는 지난해산만 문제가 아니다. 벼멸구, 집중호우 등으로 피해가 발생했다고는 하지만 생산량은 여전히 수요량을 크게 초과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폭염으로 웃자람이 발생하고 수발아가 늘어 품질은 오히려 지난해산 보다 못할 것이란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에 시장에서는 올해산 햅쌀이 나오고 있지만 지난해산에 대한 선호가 있어 가격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벼 40kg 기준 6만1000~6만2000원대에 수매를 했던 충남, 전남·북, 경남 등 지역의 농협들은 올해산 조생종 벼를 5만 원 초반대에 매입했지만 가격을 결정하지 못해 정산을 연말로 미루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임병희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은 “쌀값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가운데 벼멸구, 폭염, 집중호우 등까지 덮쳐 일부 수확량 감소가 예상된다고 하는데 그래도 생산량은 수요량을 크게 웃돌 것으로 보인다”며 “수매가격 등 농가가 체감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확기 대책이 시급히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급습한 벼멸구와 집중호우로 온전히 수확이라도 할 수 있는 농가는 그나마 낫다는 농업인들도 많다. 벼멸구와 집중호우로 피해를 입은 벼는 정부에서 희망물량 전부를 수매하겠다고 밝혔지만 도복은 2등급, 벼멸구는 등외가 될 가능성이 높아 제대로 된 피해보전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에 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의길은 지난달 30일 서울 용산 대통령집무실 인근에서 ‘병충해·수해 특별대책 촉구대회’를 열고 쌀값 폭락에 벼멸구 창궐과 수발아, 침수 등으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