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더미가 된 축사·산림, 복구도 막막…잃어버린 봄

[농수축산신문=박유신·안희경·박세준 기자]

의성 산불 피해를 입은 농장의 기자재가 모두 전소된 모습. 같은 마을에는 축사 두 동이 모두 전소된 농장 등 피해가 심각하지만 아직 복구작업은 시작하지 못했다.
의성 산불 피해를 입은 농장의 기자재가 모두 전소된 모습. 같은 마을에는 축사 두 동이 모두 전소된 농장 등 피해가 심각하지만 아직 복구작업은 시작하지 못했다.

봄이 완연한 중앙고속도로에서 남안동 나들목을 들어서면서부터 봄이 멈춘 듯 했다. 앙상한 나뭇가지가 꼬챙이처럼 꽂혀 있는 까만 산이 최악의 화재를 짐작하게 했다.

의성시내를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된 매캐한 내음은 단촌면으로 들어서면서 짙어졌다. 시내와 다르게 한 집 걸러 한 집이 까맣게 타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깨끗한 벽돌집 옆으로 까맣게 타버린 창고나, 그을음 하나 없는 외벽 옆에 엿가락처럼 까맣게 휘어버린 건축 자재들이 오히려 극명히 대비됐다.

“산에서 불이 내려와 동네를 덮치는데 한 시간 만에 불바다가 됐습니다. 소가 9마리나 불에 타 죽었습니다. 죽은 소를 늘어놓았는데 참담하더군요. 그런데 슬퍼할 틈이 어딨습니까.”

소 9마리가 타 죽고 4마리를 긴급도축한 D농장은 의성에서 가장 피해를 많이 본 농가다. 화재 당시 타버린 지붕은 자비 1500만 원을 들여 개보수를 마쳤다.

“피해복구를 기다릴 틈이 없습니다. 그렇게 오라던 비가 야속하게도 불이 다 꺼지고 오기 시작했습니다. 지붕이 다 타버려 소가 비를 맞는데 어떻게 합니까. 일단 자비를 들여서 지붕을 보수했습니다. 살아있는 것들은 살아야 할 것 아닙니까. 지자체 지원은 나중 문제지요.”

D농장 바로 옆에 위치한 농가는 주택과 기자재, 하우스 6동이 모두 불타버렸다. 복구작업이 한창이었지만 무엇을 복구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농가의 말에 더는 아무것도 물을 수 없었다.

D농장에서 차로 십 분쯤 달려 도착한 B농장은 축사 두 동이 전소됐다. 축사와 기자재가 모두 불타면서 1억5000만 원 정도의 재산피해를 입은 B농장 대표는 “그나마 소를 다 빼서 축사에 소가 없었다”며 소가 죽지 않아 다행이라는 말을 연신 내뱉었다.

이런 가운데 산불로 죽어버린 나무와 지반위로 올라온 나무 뿌리들로 토양이 불안정해지면 집중호우 시 산사태 발생 가능성은 더욱 커지면서 B농장은 이제 새로운 걱정을 시작해야 한다.

의성 지역과 함께 최악의 산불피해지인 경북 청송 지역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이번 산불로 청송 지역은 9320ha의 산림이 화마에 휩싸였다.

이 지역 독림가인 김길수 한국산림경영인협회 대구경북지회장은 당시 산불 상황을 떠올리면서 “강한 바람에 불이 고속도로도 뛰어넘으면서 엄청난 열기를 뿜으며 번지는데 사람이 미물이라는 걸 느끼며 계속 피해 다닐 수 밖에 없었다”며 “지금은 헬리콥터 소리만 나도 경기를 일으킬 지경이다”고 몸서리를 쳤다.

이어 그는 “매일 산에 가서 나무를 돌보고 가꾸면서 친구같이 지냈는데 시커멓게 탄 모습을 보니 눈물만 나왔다”며 “(산불 열기 때문에) 소나무 껍질이 다 터져서 매끈매끈해진 걸 보면 나무가 말을 못해서 그렇지 살아 있는 식물인데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산에 가면 우울해져서 잘 안가게 된다”고 한숨을 쉬었다.

김 지회장을 비롯해 많은 임업인들이 막대한 산불 피해를 입었지만 소외감을 감추진 못했다.

김 지회장은 “농산물과 가축은 재해보험이 있는데 임목은 재해보험이 없어 들고 싶어도 못든다”며 “아무리 산을 잘 가꿔서 치유의숲을 하든 뭘 하든 불 한 번 나면 끝나버리는데 이러면 누가 임업을 할 수 있겠는가”고 한탄했다.

청송 지역의 다른 피해 임업인도 “아무리 빨라도 20~30년이 돼야 복구할 수 있는데, 그때가 되면 내가 뭘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다”며 “수목원을 하는 게 꿈이었지만 이번 산불로 그냥 산을 팔아야 하나 싶다”며 말했다. 이어 그는 “피해신고에 임목은 아예 받아주지도 않아 신고도 못한다”며 “산주는 피해입은 국민이 아닌가”고 불만을 제기했다.

이렇듯 산불피해 현장의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국회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법적·제도적 개선을 통해 전방위적인 산불대응 체계를 마련할 것을 정부 측에 강하게 촉구하고 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지난 10일 전체회의를 열고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농촌진흥청, 산림청 등을 대상으로 신속한 산불 피해복구와 대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일 것을 요청했다.

이날 농식품부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9일 기준 농업분야 산불 피해는 농작물 3795ha(과수 3709ha, 기타 86ha), 시설하우스 715동, 부대시설 2180동, 축사 237동, 축산창고 29동, 농기계 8308대, 가축 21만8000마리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종 피해 상황은 이달 말까지 지자체 조사와 중앙합동조사를 거쳐 확정될 예정이어서 갈수록 피해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이다.

이날 농해수위 위원들은 앞다퉈 경남북·울산 등에서 발생한 산불재난 등과 관련해 △산불 피해 농가의 영농 재개를 위한 조속한 지원 △농업재해보험금의 신속한 지급 △임목 피해에 대한 농업재해보험 보상 확대 검토를 촉구하는 한편 산불을 사회재난으로 분류하는 현행 분류체계를 재검토하고 농업용수 활용을 통한 소방차 급수지 부족 문제의 해결 등을 요구했다.

임미애 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은 “현행제도는 발생 원인만을 기준으로 산불을 사회재난으로 규정하고 있어 피해 주민들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이 어렵다”며 “기존 재난 분류 체계를 바꿔 산불을 복합재난으로 규정해 피해 구제 대책을 마련하고 향후 대응 체계 정비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선교 의원(국민의힘, 여주·양평)은 “기후위기로 산불 발생 빈도가 높아지고 있어 과거의 산불 예방 지침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산불 대응 체계 정비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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