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감자·젖소개량 성과 가시화
기술보급 넘어 제도 개선까지 확대
[농수축산신문=이남종 기자]
파키스탄은 인구 약 2억4000만 명 중 4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는 농업 중심국가다. 하지만 기후변화와 비효율적인 재배 기술, 품종 노후화, 종자 수입 의존 등으로 인해 자국 내 식량안보와 축산업 기반이 취약한 상태다. 파키스탄의 요청에 따라 2020년 농촌진흥청은 파키스탄 농업연구청(PARC)과 협력해 ‘해외농업기술개발사업(KOPIA) 파키스탄센터’를 개소하고 현지 맞춤형 농업기술 보급을 통해 자급 기반 구축과 농가소득 증대에 기여하고 있다.
# 씨감자 자급률 제고, 1%도 안 되던 종자 체계에 혁신을
파키스탄은 연간 약 790만 톤의 감자를 생산하는 세계 9위 생산국이다. 그러나 정작 씨감자 자급률은 1% 미만이며 대부분 수입 또는 자가채종에 의존하고 있어 수확량과 품질 모두 불안정한 상태였다. KOPIA 파키스탄센터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수경재배기술을 활용해 무병 씨감자 생산체계를 단계별로 구축했고, 수경재배시설, 망실온실, 고랭지 시험포장 등 종자 생산 인프라를 대폭 확충했다.
지난해 기준 씨감자 총 520만 개(164톤)를 생산했으며, 참여 농가도 47호까지 확대됐다. 생산된 씨감자는 바이러스 검사를 통해 병 발생 여부를 철저히 관리하며, 농업인 교육을 통해 고품질 씨감자에 대한 이해도와 활용 능력을 높이고 있다. 현재까지 261명이 교육을 이수했고, 향후 연간 16만 톤 보급체계를 목표로 하고 있다.
# 우유 생산량 1/7, 젖소개량으로 생산성의 한계를 넘다
파키스탄은 세계 3위의 우유 생산국(연간 586억 리터)이지만 젖소 한 마리당 평균 우유 생산량은 연 1461리터로 한국의 7분의 1 수준이다. 이는 난교잡 품종 위주의 사육, 인공수정 기술 부족 등으로 인해 유전적 개량이 이뤄지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이에 KOPIA는 한국산 홀스타인 젖소 정액을 도입해 발정동기화·인공수정·DNA 분석까지 포함한 번식기술 패키지를 전파하고 있다. 지난 한 해에만 442건의 인공수정을 수행했고, 50명의 인공수정 전문인력을 양성했다. 체외수정 실험 결과에서도 60~81% 수준의 안정적 수정률을 기록하며, 기술의 현지 적응 가능성을 입증했다. 향후 3년간 1500개의 정액을 연차적으로 활용해 연간 600마리 이상의 인공수정을 실시하고, 고능력 F1 송아지의 혈통·우유 생산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예정이다.
# 사료 종자 국산화, 수입 의존 탈피 위한 품종 개발
파키스탄은 축산업이 농업 부가 생산품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중요한 산업이지만 겨울철 조사료 부족으로 인해 생산 효율이 크게 떨어지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특히 사료 종자의 76%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안정적인 생산 기반 구축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에 KOPIA는 24개 농가를 대상으로 고품질 사료용 귀리 품종(NARC OAT)을 보급하고, 비료, 제초제 등 농자재와 생산 기술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144ha에 보급해 다음 달에 14.4톤의 귀리 종자 수확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재배기술 리플렛 1500부 발간과 총 13회의 현장 교육을 통해 농가의 역량 강화에도 집중하고 있다. 사료용 귀리와 이탈리안 라이그라스는 조단백질과 조섬유 함량이 높고, 건초·사일리지로 활용 가능해 겨울철 가축 영양개선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 결실 맺는 ODA, 국제 무대에서 가시화된 성과
KOPIA 파키스탄센터는 기술 보급에 그치지 않고, 파키스탄 정부와 양해각서(MOU) 체결을 통해 종자 관리·감독 체계 정비, 지방정부 연계사업 확대, 농산업 민간기업 참여 유도까지 통합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특히 씨감자 시범마을 사업의 성과는 4개 주정부가 참여하는 전국 단위 사업으로 확대됐으며 파키스탄 정부의 매칭펀드 250만 달러 예산 투입으로 한국과 공동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KOPIA를 통해 검증된 기술적 성과가 제도적 확산 기반과 연결되고 있다. 씨감자, 젖소, 조사료라는 세 분야에서 이룬 성과는 단순한 농업기술이 아닌 파키스탄 농업 시스템의 구조적 혁신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앞으로도 KOPIA 파키스탄 센터는 연구-보급-교육-제도 연계를 통한 지속가능한 농업협력 모델을 확립하며, 파키스탄 농업의 미래를 함께 설계해 나갈 것이다.
[Interview] 조경래 KOPIA 파키스탄센터 소장
한국형 수경재배, 씨감자 생산 성공
한국 농업기술 위상 높여
“수경재배를 통한 씨감자생산은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이론적 틀을 세우고 우리나라가 실용화에 최초로 성공한 기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편화된 기술이지만 여기에선 낯선 기술이다.
협력기관과 과제선정 심의를 거쳐 확정한 다음 시공사를 선정해 계약하고 바로 수경재배시설 2동을 지었다. 이듬해인 2021년 여름에 완공을 하고는 박소천 전문가를 초빙, 씨감자를 재배했다. 씨감자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조직배양기술이 필요했는데 마침 협력기관이 이 기술을 가지고 있어 도움이 됐다. 재배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한국 농업 기술의 보급으로 국내 기업의 수출 가능성도 기대한다. 우리가 한국에서 도입한 수경재배시설과 저온저장고, 그린하우스, 농기계 등은 많은 농기업들이 방문해 도입 가능성을 문의했다. 어떤 그룹회장은 사장단들과 함께 방문, 씨감자 생산시설을 지어 주기를 희망했고 컨설턴트를 연결해 달라고 요청을 했다. 여기에 대한 관심을 가진 한국의 농기업들이 많지는 않고 소통의 어려움으로 잘 진행되지는 못했으나 여전히 한국의 선진 기술 도입을 열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단기간에 무에서 유를 창조한 놀라운 경험이 있다. 우리는 자원이 없을 때 성장한 경험과 중진국, 선진국으로 도약하면서 각 상황에 대한 대응 방식들을 몸으로 체득해왔기에 많은 나라들이 이러한 체험을 배우기를 원한다. 우리는 각 나라의 발전단계에 따라서 처방을 해 줄 수 있는 지혜와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이 가진 역량과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으로 이 해외기술개발사업에 뛰어 든다면 충분히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