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산신문=홍정민 기자]
디지털 전환과 조직화로 농축산물 유통의 판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농축산물 유통 구조가 전면적인 변화를 맞고 있는 가운데 단순한 물류 개선을 넘어 디지털 전환과 생산지 조직화, 인적 역량 강화 등 전방위 혁신이 강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유통 혁신은 농업의 미래이자 생존 전략”이라며 “기술과 함께 중요한 것은 이를 운영할 사람과 조직의 변화”라고 입을 모은다.
# 물류부터 유통까지 ‘스마트화’가 만드는 혁신
농축산물 유통 혁신의 첫걸음은 물류 개선에서 시작된다. 정부는 스마트 산지유통센터(APC)를 중심으로 물류의 디지털화를 추진 중이다. APC는 세척, 선별, 저장, 출하 전 과정을 자동화하고 실시간 데이터 기반 관리가 가능하다. 인공지능(AI)·5G·로봇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물류 실증센터’도 경북 등지에 개소하며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
서울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도 전자송품장을 도입, 출하 농산물의 품목과 수량을 사전 파악해 물류 혼잡을 줄이고 가격 안정에 기여하고 있다. 민간 기업인 그린랩스는 농산물 재고관리 솔루션(AMS)을 통해 농산물 유통의 복잡성을 줄이고 폐기율과 비용을 동시에 낮추는 실질적 성과에 집중하고 있다.
# 조직혁신과 ‘브랜드’ 전략으로 시장 경쟁력 확보
조직화된 생산지의 경쟁력은 곧 교섭력이다. 충남 부여군은 공동 브랜드인 ‘굿뜨래’를 통해 철저한 품질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3단계 심사 절차로 브랜드 신뢰도를 높였다. 그 결과 2023년 기준 3000억 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하며 국내 대표 공동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강원연합사업단은 연합 판매 체계를 통해 산지에서 직접 대형 유통망으로 농산물을 납품하고 있고 이마트·홈플러스 등 100여 곳과의 거래를 통해 거래 규모화와 수급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
경남 산청군은 온라인 유통채널 확대와 유튜브 홍보, 오픈마켓 입점 등을 통해 지난해 지자체 운영 쇼핑몰의 매출이 70억 원을 달성했다. 이러한 사례는 온라인 유통 활성화, 콘텐츠 기반의 교육과 소비자 커뮤니케이션 등이 중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 시스템을 움직이는 힘은 ‘인적혁신’에 달려
디지털 전환이 물리적 기반이라면 인적 역량은 그 기반을 운영할 동력이다. 김태현 농협 안성팜랜드 부장은 축산물 유통 전문성에 기반해 사내벤처공모전 1위를 차지하면서 ‘라이브 커머스 플랫폼’을 도입했고,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축산물 체험 교육 프로그램도 정규화했다.
김 부장은 “축산물 유통의 핵심은 신뢰와 경험이고 농업·축산업에 대한 소비자 인식을 바꾸기 위해선 현장의 콘텐츠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농촌진흥청은 청년 농업인을 대상으로 도매유통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도매시장 경매사와의 직접 소통을 통해 유통 흐름에 대한 실전 이해도를 높이고 있다.
# 산지 조직화 여전히 ‘난제’ 많아
산지 조직화는 유통 효율성을 높이고 가격 협상력을 확보하는 핵심 수단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가락시장 출하물량의 70% 이상이 연간 거래금액 1000만 원 이하의 영세 농가 출하물이라는 점은 현장의 난제를 여실히 보여준다.
김성훈 충남대 농업경제학과 교수는 “조직화는 이제 지역 단위를 넘어 품목 중심으로 전국 단위 확장이 필요하다”며 “자조금 제도 활성화와 빅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소비 트렌드를 반영한 조직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권승구 동국대 식품산업관리학과 교수도 “민간 조직, 특히 도매시장법인을 조직화에 참여시키는 방식이 필요하고 디지털 전문가 못지 않게 현장을 아는 유통전문가를 먼저 육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동환 농식품신유통연구원 원장은 “전사적자원관리(ERP), 빅데이터 등 디지털 기반의 유통관리체계는 산지에서의 디지털 전환을 이끄는 핵심이 될 것”이라며 “단순한 온라인 판매를 넘어 플랫폼 형성과 소비자 맞춤형 공급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의 지적대로 농축산물 유통 혁신은 단순한 시스템 개편이 아니라 물류 자동화, 조직화된 생산시스템, 전문화된 인력 양성이라는 세 축이 함께 유기적으로 굴러야 실질적인 변화가 가능하다. 디지털 전환은 이제 시작에 불과해 농협, 지자체, 민간기업이 협력하고 농업인들의 자발적 참여가 수반될 때 비로소 농축산물 유통의 새 판이 완성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