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산식품부의 농식품 산지·소비지 협력사업이 농업계의 눈총을 사고 있다. 농식품 유통고속도로를 구축해 농민에게는 제값을 받게 해주고, 소비자에게는 저렴한 농산물을 제공한다는 게 이 사업의 근본 취지이지만 쉽게 동의하는 농민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 사업은 공급 드라이브 정책을 수요 드라이브 정책으로 전환하는, 다시 말해 산지유통조직에 지원하던 자금을 소비지 구매업체에게 지원하는 정책이어서 농민의 불만은 더욱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올해 처음 이 사업이 도입된 이후 산지에 지원돼야 할 자금 250억원이 롯데마트(100억원), 한성식품(50억원), 대상ENG(50억원), 제너시스(25억원), 푸드머스(25억원) 등 소비지 농축산물 구매업체에 지원됐다.

또 내년에는 올해에 비해 무려 5배나 늘어난 1426억원을 산지·소비지 협력사업비로 책정, 기획재정부에 예산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져 농업현장이 술렁이고 있다.

물론 판로가 없어 발만 동동 구르는 농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유통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고, 소비자의 니즈를 현장에 반영하는 데 소비지 유통업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데도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또 지원규모에 따른 농축산물 구매비율을 대형유통업체의 경우 250%, 식품·외식업체의 경우 125% 등으로 의무화해 놓고 있어 국산 농축산물시장이 이 비율만큼 늘어날 것이란 기대도 갖게 해주고 있다.

그러나 롯데마트의 경우 지난해 기준 3000억원 가량의 매출을 올린 점을 고려해 볼 때 100억의 정부지원자금으로 구입하는 농산물을 어떻게 구분해 낼지 의문이 들고, 여타 업체들의 경우도 이와 사정이 다르지 않다는 판단이다.

특히 그야말로 시장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민간업체에 정부자금을 지원한다는 것도 그렇고, 그것도 농민에게 지원해야 할 자금을 전용하는 것에는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그동안 바잉파워를 앞세워 농민들을 쥐락펴락 했던 사례를 곱씹어보면 더욱 그렇다.

쌀 수확기에 목돈 좀 만져볼라치면 쌀 저가판매를 주도해 쌀값을 떨어뜨리는가 하면 계절이 바뀔 때마다 특가판매, 할인판매 등을 실시하고, 여기다가 일반 공산품을 팔기위해 농축산물을 미끼상품으로 취급해 농민들의 애간장을 태운 게 한 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농식품부는 ‘한 술 더 떠’ 이 같은 행태를 일삼는 소비지 유통업체들에게 공식적인 힘까지 실어주는 정책을 펴고 있어 농민들을 두 번 울리는 꼴이 됐다.

시장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기업체들은 돈이 되면 하지 말래도 하고, 그렇지 않으면 돈을 안겨줘도 하지 않는 생리를 갖고 있는 만큼 오히려 산지의 경쟁력을 키워주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또 소비지 유통업체 및 식품·외식업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균일화된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것이지 정부의 생색내기용 자금지원이 아니란 점이다.

따라서 유통의 가장 기본인 농축산물의 품질고급화에 더 지원을 해야 하며, 산지조직화 등 현장을 먼저 챙기는 세심한 정책적 판단이 우선돼야지 이상한 논리로 농심을 멍들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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