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우리 음식 조리법을 널리 전파하는데 일생을 바친 조자호

방신영 선생이 이화여대 교수로 반생을 보내는 동안 조자호 선생은 신문에 한식 조리법을 연재하면서 강습회를 개최하는 등 우리 음식을 일반 대중에게 전파하는 일에 열중하였습니다. 조 선생은 구한말의 명문대가 출신이었습니다. 1912년 6월 1일에 태어난 조 선생은 순조 26년에 장원급제하여 고종 2년에 영의정이 된 양주(楊州) 조씨 문헌공(文獻公) 조두순(趙 斗淳) 대감의 4대 손녀로 비운의 마지막 순종황후 윤비(尹妃)와는 이종사촌간이 됩니다. 큰 언니는 민 충정공의 며느리가 되었고, 둘째 언니도 민씨 집안에 출가하였습니다. 당시 명문가의 딸아이는 학교에 보내지 않는 관례였는데 조 선생은 공부가 하고 싶어서 가출을 감행하였다고 합니다. 결국 집안과 가까운 조동식 선생이 설립한 동덕여학교에 입학이 허락되어 1927년부터 1930년까지 3년 과정을 졸업하였습니다. 그분의 차남 정운희(鄭 雲熺) 씨의 증언에 의하면 이렇게 신식 교육을 받은 것이 후에 전통 한식을 일반에 전파하는 활동을 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조 선생은 이종 언니인 윤비와 가깝게 지내면서 자신의 친정인 조선 사대부 집안의 음식과 궁중음식을 두루 익힐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윤비를 곁에서 모셨던 김 상궁, 성 상궁, 대궐 수라간 나인 출신인 한희순 상궁과 교류하면서 양반가의 음식 조리법을 체계화하여 일반에 알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분은 찬거리 담당인 한 상궁에게 궁중과 양반가 음식 조리법을 체계적으로 일러주었는데 한 상궁은 한식 관련 무형 문화재 제 1호가 되어 황혜성, 염초애 등의 한식 전문가를 길러내었고 그 맥이 오늘날 황혜성 선생의 딸 한복려 씨 3자매로 이어지고 있다고 조 선생의 아들 정운희 씨, 며느리 최창순 씨, 농심 음식문화원 이종미 원장이 함께 증언하였습니다.

한편으로 조 선생은 1938년 ‘조선요리법’을 출판하여 방 선생의 책 ‘조선요리제법’과 쌍벽을 이루었습니다. 이성우 선생의 ‘식생활사 문헌연구 한국 식경대전(1981)’에 24번째로 소개되어 있는 이 책에 조 선생이 직접 쓴 자서(自序) 일부를 인용합니다. “현재 순전한 조선요리를 찾기에는 곤란이 많습니다. 그것은 재래의 조선 음식이 여러 가지 이유로 세상에 나타나지 않은 관계도 있습니다...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널리 세상에 그 만드는 법이 알려지지 못하는 일이 왕왕이 있어 어떤 경우에는 아주 소멸되어버리는 것도 있으니, 나는 이것을 크게 유감으로 여기어...우수한 음식이 많이 부활되고 산출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지금까지 보고 들은 바를 아는 데까지 기술한 것입니다.” 그분의 염원이 잘 나타나 있는 글이라고 생각됩니다.

조 선생은 일본 동경 제과학교에 유학하여 1939년에 졸업하였고 1940년에 박순천, 황신덕, 박승호 선생들과 함께 ‘경성 가정여숙(女塾, 현재 중앙여고의 전신)’을 설립, 교사로 취임하여 전통음식과 예법을 복원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1937년부터 1940년 8월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한 기사들을 보면 그분이 얼마나 우리 음식을 일반에 전파하는데 열심이었던지 짐작이 갑니다. 기사 제목들을 나열해 봅니다. ‘음식 중에는 대표적인 조선 요리 몇 가지-손님 청할 때 꼭 참고가 됩니다.’, ‘조선 요리로 본격적인 정월 음식 몇 가지-이것 쯤 모르시고야 말이 됩니까? 못해 잡수어도 알아는 두십시오.’, ‘생각만 해도 입맛 나는 봄철의 조선 요리-햇것 나는 대로 시험해 보십시오.’, ‘남녀 아가 구별이 있는 돌상 차리는 법-떡은 짝 맞추지 않는 법입니다.’, ‘봄이 되면 차리기 좋은 환갑잔치 차림’, ‘봄 타는 입에도 맞는 조선 음식 몇 가지-특히 술안주에 적당합니다.’, ‘첫여름에 차릴 수 있는 생일과 신랑신부의 상’, ‘주부의 자랑이 되는 여름철 조선 요리-경제 되고 제조법도 간단합니다.’ 등등 제목부터 정감이 들고 호기심이 생길 듯합니다.

1939년 4월 17일부터 6일간 ‘여자기독청년회(YWCA)’ 주최로 동아일보 학예부의 후원을 받아 조 선생의 ‘춘계요리강습회’가 열렸습니다. 당시의 동아일보 기사를 인용합니다. “강사 조자호 씨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순 조선식의 고유한 요리의 패권을 잡고 있으며 그 요리법이 탁상론이 아니고 실제에 있어서 만들어보고 큰 일 치러보고 수가 없는 실습이 있는데다가 작년부터 동경에 건너가 여러 가지 영양을 연구하고 불철주야로 여러 가지 요리법을 연구하고 돌아온 지 몇 날 안 되어 이번에 첫 솜씨를 보게 된 것입니다.” 이 요리 강습회의 내용은 동아일보 지상에도 10회 연재되었습니다. 당시 그분의 명성과 열성이 돋보이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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