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산림 전문가로는 처음으로 산림정책의 총수 자리에 오르다
-대학졸업후 ''임목육종연구소'' 연구진으로 합류
-치산녹화 10개년계획을 4년 앞당겨 달성 수훈
-규제->''자율 조장''으로 정책 전환한 산림총수

이보식(李輔植) 선생은 우리나라 산림에 일생을 바친 이 나라 최고의 산림정책 전문가입니다. 불과 며칠 전인 지난 10월 22일 73세의 아까운 나이로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해외 출장 중에 듣고 안타깝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분은 서울 농대 선배로서 제가 현직에 있을 때 여러모로 가르침과 도움을 주셨고 특히 1995년에 제가 농어촌개발국장으로 재임 중 과로로 사무실에서 쓰러져 상당 기간을 건강 문제로 힘들어 하고 있을 때 ‘지압 요법’을 소개해 주면서 아예 10회분의 치료비를 먼저 내주시는 바람에 크게 효험을 보았던 제게는 참으로 잊을 수 없는 고마운 분입니다. 이 선생은 1937년 7월 충남 부여읍에서 태어나 1957년에 부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농대 임학과에 진학하였습니다. 그분은 현신규 선생이 아끼는 제자 중의 한 사람으로 1963년에 대학을 졸업, 임학사 학위를 받고 임업연구사로 현 박사가 설립한 ‘임목육종연구소’의 연구진에 합류하였습니다. 이 선생은 연구실에서 당시 농촌진흥청장을 겸하고 있던 현 박사의 연구 뒷바라지를 하느라고 자정이 되도록 퇴근하지 못하고 통금 시간을 넘겨 뒷골목으로 귀가하는 등 고생이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분은 현 박사를 모시고 ‘소나무의 수정과정에 대한 해부조직학적 연구’를 수행하면서 리기다소나무의 꽃이 핀 다음 수정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실험을 하였는데 이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서 1964년 현 박사의 성탄절 카드로 만들어 외국에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경준 저, ‘산에 미래를 심다. 현신규 박사 이야기’ 2006, 189, 135쪽 참조)

이 선생은 1971년 5월부터 1974년 3월까지 임목육종연구소 남부육종장장으로 재직하면서 당시 제 1차 치산녹화 10개년계획의 목표 달성을 위해 ‘계획적 조림’에 소요되는 개량된 우량종자의 대량생산이 시급한 과제임을 절감하고 남부육종장에 편백, 삼나무 등의 채종원을 조성하여 조림용 종자의 항구적 공급원을 확보하는 동시에 합리적인 관리체계를 확립하였고 본관 및 부속 건물 3동을 신축하였으며 제주도로부터 국유림 30ha를 대부받아 신규 채종원을 조성하였습니다. 이후 1976년 8월까지 제주도 산림과장으로 근무하면서 ‘범도민 나무심기 운동’을 전개하는 동시에 연료 채취로 인한 산림 황폐를 막기 위해 제주도 지역에 아카시아, 오리나무 등 1100ha의 연료림을 조성하는 한편 121ha의 해안사방사업, 화전정리사업 등을 추진하여 제 1차 치산녹화 10개년 사업 목표를 4년 앞당겨 달성하는 수훈을 세웠습니다.

이 선생은 1976년 산림청 기술보급담당관을 거쳐 1979년부터 1986년까지 동부영림서, 중부영림서, 남부영림서장을 차례로 역임하는 동안 1979년부터 시작된 제 2차 치산녹화 10개년계획 기간 중 일선 국유림 경영의 책임을 맡아 민유림의 시범이 되는 국유림을 만들기 위해 유역별, 단지별 경영목표를 설정하고 임업경영에 필수적인 임도망을 확충하고 기계 장비를 보강하면서 공익기능 향상을 위한 기술의 현장 적용, 대단위 임산자원의 조성, 불량 임야의 개량 촉진 등 사업을 직접 현장에서 진두지휘하였습니다. 그분은 1986년 산림청 조림과장으로 전보되어 일하면서 제 2차 치산녹화 10개년계획을 1년 앞당겨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였고 종전의 녹화 위주의 조림정책을 대단위 경제림 단지조성, 산림 토양조사에 의한 적지적수(適地適樹) 조림, 우량임야인 천연림 보육, 농촌에 경제적인 나무심기 보급 등을 도입하여 질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정책적 토대를 마련하였습니다.

이 선생은 1990년 2월 산림청 조림국장, 1991년 영림국장, 1993년 임목육종연구소장, 1996년 산림청 차장을 거쳐 1997년 8월 마침내 산림전문가로서는 처음으로 우리나라 산림정책의 총수인 산림청장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분은 조림국장 시절에는 제 1·2차 치산녹화 사업의 성공적 수행으로 국토녹화의 대업을 완수한 바탕 위에 산림의 자원화를 목표로 하는 제 3차 산지자원화 계획을 수립, 조림정책을 양적 조림에서 질적 조림으로 전환하고 불량 임지의 갱신, 농산촌 소득증대를 위한 특수 조림, 주요 경관지역의 환경 조림 등 조림수종과 방법을 다양화하였고, 영림국장 시절에는 산지의 합리적 이용, 자원 조성과 경영기반의 확충, 산촌 주민의 소득원 개발 및 생활환경 개선과 산림 문화 창달 등 사업을 추진하면서 정부 주도 하의 녹화·규제 위주의 정책을 자율·조장에 중점을 두는 정책으로 전환하는데 힘썼습니다. 이러한 모든 노력이 그분을 산림정책 총수로 만든 밑바탕이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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