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날 청바지가 날씬하게 홀데 바지를 해입고 빨간 양말을 맵씨있게 신은 그 청년이 대합실에 나타나자 그 뒤에는 비슷한 청년 몇이 따르고 있었다. 그 전날 상주전문학교 학생 몇이 김천역에 나왔다가 농고학생들에게 늘씬하게 깨졌다는 것이고, 그 소리를 들은 상주 어깨들이 마음 먹고 김천 통학생에게 본떼를 보여 주기 위해 우우 완행열차를 타고 작당해서 나왔다는 것이다. 김천학생들은 감히 상주놈들이 여기서 까분다고 얏보고 한방씩 놓았는데 번번이 김천에만 나가면 피칠갑을 하는 아이들의 원수를 갚고 아예 그런 못된 버릇을 고쳐 주려고 마음먹고 나왔다는 것이다.
『이 씨팔 놈들 김천 촌놈들이 뜨거운 맛을 못봐서 환장을 했구먼.』
『오늘이 너들 제사날이다.』
이렇게 큰소리 땅땅치며 기세도 시퍼렇게 완행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들은 군용 워카를 광나게 닦아신고 손에는 짝 달라붙는 가죽 수갑을 끼고 어깨를 좌우로 흔들면서 폼을 까짓 껀 재고 출찰구를 빠져 나왔다.
『어떤 놈이야. 어제 때린 놈을 찍어.』
같이 나온 어제 맞았던 학생에게 이렇게 말하면서도 기세도 등등하게 대합실을 쓸고 다녔다.
그 바람에 험상 궂은 어깨들의 활보에 겁을 먹은 통학생들은 한쪽으로 몰려서고 일반인들도 싸움에 말릴까봐 밖으로 나가 섰는 속에 분위기는 자못 험악하게 바뀌어 갔다. 사람들은 그들과 눈이 마주치지 않게 조심하였으며 말을 나누는 사람들도 조심해서 귓속 말을 나누었다. 대합실 안은 갑자기 적료하게 가라 앉았으며 천정을 나는 파리들의 날개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 그들은 갑자기 구두닦는 곳에 와 구두통에 발을 올려 놓고 말하였다.
『깨꾸 한번 폼 나게 닦아 보더라구. 파리가 앉으면 낙상 하도록.』
이렇게 말하면서 예의 빨간 양말 신은 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때 재식이는 껌을 질겅거리며 팔장을 끼고 서 있었다.
『예. 예.』
팔식이는 죄지은 것도 없으면서 필요 이상으로 굽신거리며 구두솔을 집어 들었다. 그러자 같이 따라왔던 똘마니 들이 뒤에 빙 둘러 섰다.
『너. 이새깨 똑똑히 들어 어제 상주 아이들 팬 놈들이 누구야. 너는 봤으니 알게 아니야.』
상주 어깨는 잇 사이로 침을 찍 내깔기고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모릅니다. 그때 구두 찍으러 갔었어요.』
팔식이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임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상주 어깨는 이렇게 말하면서 구두통에 올려 놓은 발을 들어 팔식이의 얼굴을 찼다. 얼굴을 용코로 맞은 팔식이는 아이쿠 소리와 함께 뒤로 넘어졌으며 대번에 양쪽 코에서 쌍코피가 줄줄이 쏟아졌다. 그때까지 팔장을 끼고 섰던 재식이는 넌짓 팔장낀 손을 풀었는가 했는데 아무런 예비동작을 취함이 없이 그 자리에서 붕 떠올라 2단 옆차기로 상주 어깨의 얼굴을 냅다 갈겼다. 그 바람에 아이쿠 소리를 앞세우고 상주 어깨는 그 자리에서 길게 누웠다. 그와 함께 그를 둘러선 상주 똘마니 들을 이리 차고 저리 찼는데 한참 신명 떨음을 하자 상주 아이들은 조용하여 졌다. 모두 네활개를 펴고 뻗은 것이다.
『이 새끼들 우리 김천에는 사람이 없는 줄 알아. 촌놈 주제에 상황을 바로 알아야지.』
『이 새끼가 내 코피를 터주었어.』
그때 일어난 팔식이가 넘어진 상주 어깨의 얼굴을 축구하듯이 내질러 버렸다.
『야. 임마 분명히 이야기 하는데 통근차 타고 꺼져. 너희 놈들에게 깨잴 김천 아이들이 아니야.』
재식이의 호통 한번에 그들은 비맞은 개새끼 꼴이 되어 고개를 숙인 다음 비실 거리며 개찰구를 빠져 나가기에 바빴다.
『아이구 잘코 사니야. 까불다가 꼴 좋다.』
모여선 여관 찍새들이 박수를 쳤다. 순금이도 박수를 쳤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재식이 총각이 옹골지게 김천 맛을 보였네.』
『그 화적 같은 놈들이 대합실을 휘저어니까 손님들이 모두 도망을 갔다니까.』
『아이구, 시원하다. 10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것 같네.』
그들은 한마디씩 이런 말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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