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조업 의심 어획물에 미온적 대응…관련 제도 개선 필요

[농수축산신문=김동호 기자] 

해양수산부가 불법어획이 의심되는 어획물 처리에 미온적으로 대응, IUU(불법·비보고·비규제)어업 근절의지가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국내 원양선사인 H사는 지난해 12월 2일 까밀라(CCAMLR,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조약) 사무국의 어기종료 지침을 받고도 조업을 계속했다. 이에 해수부는 지난해 12월 5일 까밀라 사무국의 지침을 위반한 선박에 대해 즉각적인 철수를 명령하고 상황의 중대성을 인지, 이를 조사할 계획이라고 까밀라 사무국 측에 통보했다.

까밀라 사무국 측은 어기종료 지침을 따르지 않은 H사 소속 선박의 행위를 보존조치 불이행(Non compliant)으로 판단했다. 해수부 역시 H사의 행위가 국제수산기구 보존조치를 위반하는 중대한 위반사항으로 보고 2개월의 영업정지처분을 내렸다. 

문제는 H사가 어획한 불법어획물에 대한 해수부의 대응이었다.

해수부는 불법의심 어획물에 대해 합법어획증명서(DCD)를 발급했다. 합법어획증명서는 해당 어획물이 국제 법규와 지역수산기구(RFMO)의 보존조치 등을 이행한 가운데 어획된 수산물에 대해 발급되는 증명서다.

해수부는 선박이 항구에 입항하기 위해서는 합법어획증명서가 필요하다는 점과 선사 측에서 불법어획물로 인해 H사가 경제적 이득을 얻지 않도록 정부가 해당 어획물을 처리하는데 동의했다는 점을 들어 DCD를 발급했다. 하지만 정부의 DCD가 발급된 어획물은 H선사가 직접 판매했다. H선사가 불법어획물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우루과이 정부는 우리 정부의 DCD를 바탕으로 수출확인서(DED)까지 작성해준 것으로 확인됐다.

해수부의 이같은 조치는 까밀라 협약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까밀라 협약에서는 불법어획물에 대해 SVDCD(특별어획증명서)를 발급토록 하고 있다. 또한 보존조치 10-05(2014)의 제5조에서는 기국은 자국 선박이 까밀라의 보존조치를 위반했을 경우 어획물에 대해 DCD를 발급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같은 조치의 제13조에서는 보존조치를 위반한 어획물의 수입과 수출, 재수출을 금지하고 있다.

또한 현행 원양산업발전법 35조에 따르면 중대한 법령 위반행위자가 소유 또는 소지한 어획물·제품·어구·폭발물·유독물 등을 몰수토록 하고 있으며 범인이 소유 또는 소지한 물건의 전부 또는 일부를 몰수할 수 없을 때 그 가액을 추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H사가 어획한 불법어획물을 몰수할 법적 근거는 이미 마련돼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법부의 확정판결이 이뤄지기 전 해당 어획물을 몰수 내지 압류할 수 있는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 해수부 측은 아직 사법부의 판단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어획물을 몰수할 근거가 없으며 어획물을 반환한 것은 어획물의 부패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해수부가 H사 측에 불법어획물을 반환해 판매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과거의 사례에 미뤄 봐도 잘못된 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농림수산식품부 동해어업지도사무소 공고 제2008-80호’를 보면 당시 남극 이빨고기(메로) 25만8741톤에 대해 공매가 진행됐다. 공고문의 유의사항을 보면 까밀라 규정에 따라 당시 농식품부가 SVDCD를 발행했으며 이를 첨부해 유통하거나 미국이 아닌 외국으로 수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승룡 해수부 국제협력총괄과 사무관은 “과거에는 관련 처벌규정이 과태료로 장관이 결정할 수 있었기에 몰수 등이 가능했다"며 "하지만 원양산업발전법이 개정되며 관련 처벌이 강화되는 동시에 행정벌이 아닌 사법적인 처벌이 이뤄지면서 SVDCD발급이 불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국내외의 NGO에서는 해수부가 규정을 위반한 이들의 권리를 보호하느라 선량한 준법조업자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다며 비판하고 있다. 또한 해수부의 이같은 조치들은 국제사회에서 한국 정부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는 동시에 수산외교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는 격이 될 것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김현정 환경정의재단(EJF) 선임캠페이너는 “해수부는 지난 10월 열린 까밀라 총회에서도 H사의 어획물을 우리 정부가 처리한 것처럼 말했지만 실질적으로는 H사가 수산물을 판매해서 판매대금을 가져갔다”며 “해수부는 사법부의 판단 이후 판매대금을 몰수할 수 있다고 하지만 법원에서 무죄판결이 나올 경우 해수부는 국제사회에 거짓말을 한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정부가 불법조업을 하는 선사의 편의를 봐주는 것은 우리 정부의 불법어업 대응의지와 조치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일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은희 시민환경연구소 연구위원도 “우리나라가 IUU(불법·비보고·비규제)어업 예비비협력국으로 지정된 이후 우리 정부가 원양어업을 굉장히 엄격하게 관리하며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었는데 최근 들어 해수부의 기조가 원양업계의 편익 위주로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IUU어업자에게 유리하도록 정책을 집행하는 것은 준법조업을 하는 원양업계에 큰 피해를 주는 일인 동시에 수산외교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만큼 관련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역수산기구 등에서 규정위반 여부 등에 대한 결론이 날때까지는 판매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누가봐도 납득할 수 있을 정도의 시스템도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해수부 원양산업과 관계자는 “H사의 보존조치 위반이 발생했을 때 해수부는 해당 어선을 즉각적으로 철수시키고 지난 8월 행정처분으로 영업정지 2개월의 처분을 내렸다”며 “관련 사안은 원산법에 따라 적절하게 처리됐으며 지난 10월 열린 까밀라 총회에서도 회원국들이 납득할 수 있게 모두 설명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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