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업 생산기반보호위해 수산보조금 체계 개편해야
면세유 폐지시 어업인 유류비 부담액 2배 가량 늘어
국내 수산업 여건·수산보조금 협상 등 국제적 여건 감안해 어업구조개선 속도내야

[농수축산신문=김동호 기자] 

▲ WTO수산보조금 협상시한이 다가오면서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조업에 나서는 대형선망어선.

WTO(세계무역기구)수산보조금 협상기한이 다가오면서 국내 수산보조금 체계의 개편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환경단체를 비롯한 비정부기구가 WTO회원국이 수산보조금 금지협상을 마무리하겠다는 약속을 지킬 것을 촉구하고 나선 가운데 WTO회원국은 지난달 22~23일 프랑스 파리에서 비공식 통상장관회의를 열고 수산보조금 협상 타결방안을 논의했다.

또한 지난 3월에는 미국·호주가 공동으로 WTO수산보조금 협상안을 제안하면서 내년에 열릴 제12차 WTO각료회의에서 수산보조금 협상이 최종 타결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에 WTO수산보조금 협상의 현황을 짚어보고 국내 대응방안에 대해 짚어본다.

 

# 지지부진한 보조금 협상, 급물살 탈까

수산보조금 협상은 2001년 11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제4차 WTO각료회의 규범협상그룹에서 수산자원보호를 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 2008년 DDA(도하개발아젠다) 논의과정에서 본격화됐다.

과잉어획과 과잉어획능력 등으로 수산자원이 고갈되는 가운데 기존 협정으로는 어족자원의 고갈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수산보조금 협상의 내용을 두고 WTO회원국간 의견차가 커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지지부진한 상황이 이어졌다. 특히 뉴질랜드를 필두로 한 피쉬프렌즈그룹에서는 수산보조금 금지이슈에서 공세적인 입장을 보인 반면 우리나라와 일본, 대만 등은 금지보조금의 범위가 과도하고 수산보조금과 과잉어획간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을 들어 반대하면서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2015년 9월 25일에 UN회원국 만장일치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가 승인되고 2017년 열린 제11차 WTO각료회의에서는 SDGs 14.6을 반영, 2020년까지 과잉어획과 과잉어획능력에 기여하는 수산보조금을 금지하는 합의에 도달하겠다는 각료결정을 채택했다. 이 가운데 피쉬프렌즈그룹과 ACP(아프리카, 카리브해, 태평양) 국가들도 금지보조금의 범위를 IUU어업에 기여하는 보조금과 남획상태의 수산자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보조금 등으로 제한하는 제안서를 제출하는 등 입장이 달라졌다. 우리나라와 같은 입장이던 일본도 CPTPP(포괄적·점진적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가 발효되며 종전의 수세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ACP국가와 피쉬프렌즈 그룹의 제안을 지지했다. 이 때문에 WTO 수산보조금 협상이 급물살을 타게 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규범·IUU어업·개도국 차등대우가 ‘쟁점’

WTO의 수산보조금 협상에서 쟁점이 되는 것은 규범과 IUU어업에 대한 정의, 그리고 개발도상국에 대한 차등대우다.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규범이다. 수산보조금 협상의 핵심은 어떤 보조금을 금지시키는가에 대한 부분인데 금지방식은 금지보조금의 유형을 목록으로 만드는 리스트기반 접근과 금지보조금이 되는 조건을 정하는 효과기반 접근으로 의견이 나뉜다. 금지보조금의 리스트를 나열하는 방식은 규범이 명확하고 향후 예측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수산자원관리의 정도에 따른 각 국가의 재량을 위축시킨다는 문제가 제기된다. 반면 효과기반접근은 금지보조금에 대한 정보가 불투명하고 예측가능성이 부족하지만 수산자원이 잘 관리될 경우 각 국의 정부가 지속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두 번째 쟁점은 IUU어업에 대한 규정으로 IUU어업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인데다 IUU 어업에 보조금 지급을 금지할 경우 그 범위를 선박에 한정할지 아니면 그 선박의 소유자 또는 운영자의 모든 선박에 적용할지 여부가 쟁점이다.

마지막 쟁점은 개도국에 대한 차등대우 문제다. 선진국들은 조건없는 개도국에 대한 차등대우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으로 선진국간에도 입장이 나뉜다. 미국은 수산물 생산량이 많은 25개국 중 18개국이 개도국인 상황에서 개도국에 대한 차등대우를 적용하면 수산보조금 금지가 무의미해진다고 주장한다. 반면 EU 등 일부 선진국들은 수산자원관리시스템의 적절한 운영을 전제 조건으로 차등대우를 부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와 달리 개도국들은 개도국에 대한 차등대우는 WTO협상에 내재된 메커니즘 중 하나인데 이를 수산보조금 협상에서 바꾸려해서는 안 된다고 반박하는 실정이다.

 

# 미국·호주, 보조금 상한제 제안

수산보조금 협상기한이 도래하면서 보조금 상한제로 시작해 점진적으로 감축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지난 3월 미국과 호주가 공동으로 제시한 ‘특정어업 보조금에 대한 상한 기반 접근’이라는 제안서에 따르면 FAO(유엔 식량농업기구)의 2014~2016년 해면어로어업 생산량과 수출량을 데이터를 기반으로 WTO회원국을 3가지 등급(Tier)으로 구분, 각 등급에 맞는 보조금 제한규정을 마련토록 했다.

제안서에 따르면 세계 해면어업 생산량에서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비중이 1.97%로 1등급에 속해 협상된 기간동안 보조금의 상한선을 줄여야한다. 다만 보조금의 상한제에도 불구하고 IUU(불법·비보고·비규제) 어업이나 공해상 조업을 지원하는 보조금, 남획상태에 있는 수산자원에 영향을 미치는 보조금은 금지한다.

미국과 호주에서 상한제를 제시한 것은 보조금 협상 타결을 위한 대안의 성격이 강하다. 기존 협상에서 제시됐던 제안서는 국가간 입장차가 커 합의에 이르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 면세유 폐지시 어업생산비 6000억원 이상 증가

수산보조금 폐지시 가장 심각하게 문제가 되는 것은 면세유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면세유를 통한 세금감면액은 최근 3년 평균 6622억원이며 평균 공급량은 107만6000리터다. 최근 3년간 면세유 공급액 평균이 6083억원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면세유 폐지시 어업인의 유류비 부담액은 2배 가량으로 늘게 된다.

특히 조업시에서 연료 사용량이 많은 근해업종이 더 많은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며 면세유 폐지시 적지 않은 업종의 경영수지가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어선원 고령화와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생산비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면세유마저 폐지된다면 적지 않은 업종이 폐업의 위기에 처할 공산이 크다.

정부의 면세유 정책이 역설적으로 수산업계의 리스크를 키워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산보조금 폐지 논의가 시작됐지만 면세유에 대한 정부의 정책은 달라지지 않았다. 면세유의 일몰은 번번이 유예됐으며 이제 어업인들은 면세유의 일몰시한이 다가와도 전혀 신경쓰지 않을 정도로 만성적인 상황이 됐다.

정부의 수산보조금은 면세유 중심의 구조로 고착화됐고, 연근해어업의 면세유 의존도는 더욱 높아졌다. 어업인들은 싼 값에 기름을 쓸 수 있었기에 유류소모를 줄이기 위한 선체개량이나 엔진개발·도입 대신 싼 값에 중고선을 들여오는 방법을 택했다.

수산업계의 한 전문가는 “수산물 시장이 완전히 개방된 상황에서는 면세유 공급 중단으로 어업경영비가 급증한다해도 시장의 수산물 가격이 생산비 증가분만큼 상승하는 것을 기대하긴 어렵다”며 “즉 면세유 공급이 중단되거나 짧은 기간 내에 빠른 속도로 면세유를 줄여나가야할 경우 외부요인에 의한 어업구조조정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어업구조개선 선행돼야

수산보조금 협상이 진행중인만큼 어업구조개선에 더욱 속도를 내야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현재 수산보조금 협상이 오랫동안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최근들어 상황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제 NGO에서도 수산보조금 협상의 조속한 타결을 촉구하고 있는데다 OECD에서도 수산보조금 금지가 논의되고 있다. 이같은 동향으로 봤을 때 수산보조금의 폐지는 시간문제이지 보조금 금지 여부를 논의하는 단계가 아니다.

이 때문에 수산보조금 협상 타결에 따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면세유 의존도가 높은 수산업의 구조를 개선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특히 상업적 어업인 근해어업부터 과감한 규제개혁과 적극적인 감척과 어선현대화 등을 통해 기업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도훈 부경대 교수는 “WTO 수산보조금 협상은 우리가 무조건 반대만 한다고 해서 이를 부결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며 “어업인의 고령화와 어선노후화, 수산자원감소 등 국내 수산업 여건과 수산보조금 폐지 등 국제적인 여건을 감안했을 때 어업구조개선에 한층 속도를 내야한다”고 지적했다.

 

# 수산보조금 체계 개편해야

수산업의 생산기반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수산보조금 체계의 전반을 개선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국내 수산보조금 중 규모가 가장 큰 보조금은 면세유와 영어자금이다. 이들 보조금은 수산보조금 협상에서 금지되는 수산보조금의 범위가 수산자원의 남획과 과잉어획에 기여하는 보조금으로 국한시킨다해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수산보조금 금지에도 수산업의 생산기반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국내 수산보조금 체계 전반을 개선하는 방안이 마련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중단돼 있는 수산보조금 체계 전반에 대한 개선논의를 재개하기 위한 TF를 구성, 수산보조금 협상 타결에 따른 영향을 면밀히 분석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찾아야한다는 것이다.

김도훈 교수는 “소규모 연안어업은 어촌경제의 중심축이자 수산업의 다원적기능과 직결되는 만큼 수산보조금 폐지에도 연안어업인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할 것”이라며 “더불어 면세유와 영어자금에 집중된 수산보조금의 체계 전반을 개선, 수산업 생산기반이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다른 전문가는 “정부에서는 수산보조금 금지가 가져올 파급효과에 대한 부담으로 WTO협상에서 수세적인 상황에 있지만 수산보조금 체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있다”며 “EU 등의 국가에서는 공동자원관리를 통해 수산자원이 잘 관리되고 있는 터라 수산자원이 잘 관리되는 어업에 대해서는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다는 논리라도 있지만 우리는 그마저도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전 세계적인 수산자원감소세 등을 감안할 때 수산보조금 협상이 가속화됐으면 가속화됐지 속도가 늦춰지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우리나라의 수산보조금 체계 전반을 개선하는 작업이 조속한 시일 내에 시작돼야 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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