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후반 스포츠용품을 제조하던 한 중소기업에 관한 이야기다.
그 당시에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제조업들은 자체 브랜드를 사용하지 못하고 소위 빅바이어(Big Buyer)라 불리는 외국회사의 주문에 따라 그 외국회사의 상표가 부착된 상품을 제조해 수출하고 있었다. 그 당시 우리 기업들이 생산하는 제품의 품질이 상당히 좋은 편이어서 우리 기업들에 대한 외국회사의 주문량은 해가 갈수록 늘어났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우리 기업들은 자체 결정에 의해 또는 외국회사의 요청에 의해 제조시설을 점차 확충하는 추세였다.
필자가 아는 중소기업도 이같은 시대적 추세 및 바이어회사의 요청에 따라 제조시설을 전년도에 비해 대폭 확충했다.
그런 어느 날 바이어회사로부터 수출제품의 가격을 대폭 인하해 달라는 요청이 왔다.
그러한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보다 가격이 저렴한 대만 회사로 수입라인을 변경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바이어회사의 요구는 그 중소기업에게는 청전벽력과 같은 것이었다.
그 바이어회사의 주문이 없으면 생산라인의 많은 부분을 세워둔 채 직원들의 월급만 지불해야 할 것이고, 또한 제조시설 확충을 위해 상당한 금액을 은행으로부터 대출받았기에 이자부담도 만만치 않았다.
따라서 바이어 회사의 요청을 거절했다가는 몇 달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르는 사정이 됐다.
그 중소기업은 독자 브랜드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고 지내왔던 실정이라, 그때부터 독자 브랜드를 정하고, 이를 외국에 홍보하고 나아가 그 브랜드가 부착된 상품을 수출해 국제시장에서 판매되도록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었다.
이러한 사정으로 그 중소기업은 바이어회사의 요구조건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굴욕적인 사건은 그 중소기업에게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이 중소기업은 그때부터 독자 브랜드 제작 및 홍보를 기획했다. 회사가 문을 닫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바이어회사의 상표를 부착한 제품을 계속 제조해 수출하기는 하나 다른 한편으로 많은 돈과 노력을 투자해 독자 브랜드가 부착된 제품에 대해 필요한 국제 공인을 모두 획득했다.
그리고 그 브랜드 제품을 구입하는 경우에는 대폭 할인혜택을 주고 회사 내에 수출 부서를 육성해 독자 브랜드 제품의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초기단계에서는 브랜드 인지도 너무 낮아 아무리 가격을 싸게 해도 수요자들이 그 중소기업의 제품을 구입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바이어회사가 이 중소기업이 독자브랜드를 육성함을 알고서는 주문량을 점차 줄임에 따라 경영상 엄청남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사장 이하 전 직원이 목숨을 걸고 뛰다시피해 시장을 조금씩 넓혀갈 수 있었다.
이제는 이 중소기업의 브랜드는 세계적으로 상당한 인지도를 얻게 되었고, 그 브랜드 제품은 많은 국제시합에서 공인 용품으로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물론 바이어 주문자상표로 수출하던 당시의 가격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 중소기업은 브랜드 없는 자의 설움을 일찍 겪었기에 그 설움을 이겨내어 이제는 훌륭한 독자브랜드를 갖게된 것이다.
- 기자명 농수축산신문
- 입력 2002.09.14 10:00
- 수정 2015.06.19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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