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농촌 위기국면 돌파 위해 고품질 농산물 생산과 생산성 제고·부가가치 창출 등 ‘농업 소득’ 제고 급선무
농업소득 10년째 제자리 걸음인데 경영비는 지속증가
농업 소득 높이기 쉽지 않은 상황
기후변화·코로나19·국제협력 등 빠르고 급격한 변화 발 맞추기 위해 다양한 분야 정보 적용 필요
[농수축산신문=박유신·이한태·이문예 기자]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주변에서 ‘혁신’이라는 말을 흔하게 접하고 있다.
혁신은 사전적으로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꿔서 새롭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낡은 구태를 벗고, 미래지향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것을 뜻하며, 이러한 변화를 통해 도약하겠다는 의지도 내포하고 있다. 특히 위기상황이거나 어려운 여건 속에서 혁신은 위기를 기회로 삼기 위해 강조된다.
농업소득이 10년 이상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가운데 생산비 증가, 농어업인의 고령화 지속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어업계에서도 혁신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다. 게다가 최근에는 기후위기와 관련한 도전까지 더해져 농어업 환경은 어려움을 넘어 위기 상황이라는 말까지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다.
이에 지속가능한 농어업을 위한 변화와 도약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지만 농어업 분야 혁신은 비단 농가만의 몫은 아니다. 농가의 의지와 노력에 더해 농협, 정부를 비롯한 주변 여건이 함께 성숙해야 성공적인 혁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미래 농어업을 위한 혁신 과제를 살펴봤다.
# 위기의 농업·농촌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농업소득은 1026만 원으로 1000만 원 전후를 기록하던 10여 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반면 농업경영비는 2418만 원으로 매년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농업을 통해 농가가 소득을 높이기에 쉽지 않은 여건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변화는 지난 1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개최한 농업전망에서 더욱 잘 드러났다. 농경연은 농업경영비 동향과 전망을 통해 1990년대 중반부터 호당 농업소득(농업총수입-농업경영비) 비중이 경영비 증가로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며 2019년 호당 농업경영비 비중은 70.2%로 2000년 44.2%와 비교해 크게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농업경영비가 20년 간 해마다 1.4%포인트씩 증가한 셈이다. 반면 지난해 농업소득은 2018년과 2019년산 쌀변동직불금 지급으로 전년대비 14.5% 증가한 1090만 원이었으나 올해는 지난해 보다 2.3% 감소한 1148만 원으로 전망됐다. 농업총수입이 증가하지만 농업경영비 증가폭이 더 클 것으로 분석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농림축산식품부와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농가인구 역시 2011년 296만 명에서 2019년에는 225만 명으로 줄었다. 이 중 65세 이상 비중도 같은 기간 33.7%에서 46.6%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 농업·농촌의 심각한 인구감소와 고령화 현실이 잘 드러났다.
농경연은 이와 관련해 2000년부터 2019년까지 농가인구는 연 평균 약 3%씩 감소한 것으로 분석했으며 2020년부터는 연 평균 1.6%씩 감소해 2030년에는 농가인구가 187만 명으로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65세 인구비율인 고령화율 역시 2020년 48.1%, 2025년 54.4%, 2030년 59.7%로 추정했다.
소득이 늘지 않아 젊은 층이 농촌에 남지 않고, 인구가 감소하는 가운데 고령화가 심각해지면서 경쟁력을 잃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농업·농촌의 지속가능성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 경영분석과 교육, 혁신 토대
이러한 농업·농촌의 위기 국면을 타개하고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혁신은 크게 세 가지 방향에서 살펴볼 수 있다. 고품질 농산물 생산이나 특화된 재배방식을 통한 생산성 제고와 기술력을 통해 생산비를 낮추는 방안, 유통에서의 부가가치 창출 등 소득을 높이는 것이다.
일례로 전남 장성군에서 사과를 재배하는 박래일 풋가실농원 대표는 2012년부터 경영기록장을 작성하고 있다. 영농일지를 작성해오다 경영기록을 작성, 매년 이를 분석하면서 경영상태를 개선해나갔다. 직접 분석하기도 했지만 농업기술원에서 컨설팅도 받고, 관련 기술교육도 받았다. 비료 투입량을 줄이고, 수분관리를 통한 물 관리를 실시했다. 농약이나 비료에 의존하기 보다는 오남용을 줄이는 적정관리를 택한 것이다. 2018년부터는 사과즙을 가공·판매하기 시작해 부가가치를 더욱 높였다.
또 다른 사례로 경남 의령군의 의령착한농장도 있다. 도시에서 40여 년을 살다가 의령으로 귀농한 조금자 대표는 무작정 시작한 느타리 재배로 큰 실패를 맛본 뒤 휴대전화 응용프로그램(앱)을 통한 영농기록을 시작했다. 재배법을 연구하고, 농업기술센터 역량 강화 교육과 지원으로 최고 품질의 느타리를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판로가 없어 제대로 된 가격을 받기 위해 말린 느타리 상품을 개발, 블로그 등을 통한 홍보에 나섰다. 귀농 5년이 지난 현재는 분말제품은 물론 관련 굿즈 상품까지 제작, 수출까지 다양한 판로에서 경쟁력을 높여나가고 있다.
드론을 통해 생산비를 획기적으로 줄인 사례도 있다. 경기 화성시 농업 드론 활용 1호 농업인인 이세영 농가는 노동 강도, 농작업자 안전 등을 이유로 농작업에 드론을 도입했다. 파종도 드론산파(직파) 방식으로 전환했다. 그 결과 10a 기준 2017년 30만 원 수준이던 소득은 2018년 54만 원으로 증가했으며 드론산파를 시작하면서 2019년에는 28%가 더 늘어 69만 원까지 증가했다. 관행 원거리방제기와 비교해도 단위당 유동비용이 ha당 5만10000원에서 2980원으로 감소해 실질소득이 크게 증가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러한 변화를 이뤄낸 농가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영농일지를 충실히 작성하고, 분석했으며 관련 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많은 농업인들이 영농기록 데이터를 구축함으로써 품목별, 연도별 비교가 가능해 취약점을 파악할 수 있으며 불필요한 영농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 소득증대에 도움이 된다고 전한다. 나아가 농업 관련 기관들로부터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교육을 통해 스스로 조금씩 변화를 이뤄냈다고 덧붙인다.
# 농가별 맞춤 컨설팅과 상호협력도 과제
최근에는 농업인을 위한 교육이 단순히 생산량이나 품질을 높이기 위한 재배기술에 국한될 것이 아니라 회계, 법률, 브랜드, 홍보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되고, 농가별 맞춤형으로 설계돼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급변하는 소비·유통 환경뿐만 아니라 기후변화, 코로나19, 시장개방 등 다양한 현안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농산물을 잘 생산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는 농업인 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농업분야 혁신을 주도할 청년농업인들은 농가소득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꼽으며, 이를 전제로 농가별 맞춤형 대응 방안이 마련될 수 있도록 농협이나 정부기관의 다양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강선아 청년농업인연합회장은 “당장 주거를 비롯한 기본적인 문제들이 해결이 되지 않으면 혁신은 사치로 다가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농업 경영 안정을 먼저 이룰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면서도 “기후변화, 코로나19, 가상화폐, 국제협력 등 빠르고도 급격한 시대 변화 속에서 농업의 영역은 단순히 농산물 재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어서 다양한 분야에서의 정보와 적용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렇다고 농업 관련 교육이나 홍보 프로그램이 너무 뜬구름 잡는 식이나 지나치게 전문적이어선 안 되고, 농가별 맞춤형 개별 컨설팅이나 멘토링 형태로 설계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며 “농업인들 역시도 농업기술은 선배 농업인들이, 최신 정보나 기술의 적용은 후배 농업인들이 주축이 돼 서로 협력하면서 변화에 대응해 나갈 수 있기 위한 여건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 농협, 판매기능 강화 통해 농가 경영혁신 토대 마련해 줘야
농가가 경영안정을 통한 혁신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최대 농업인 단체이기도 한 농협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중·소농이 대부분인 농업 구조의 특성상 소비지시장에서 농업인들이 제 권리를 찾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에 농협도 농가 경영안정을 위해 판매농협으로의 역할 강화에 힘쓰고 있다.
지난해 농협중앙회는 올바른유통위원회를 통해 다양한 추진 과제와 전략을 세우고 실행에 나섰다. 지난해 11월에는 ‘유통혁신 실천 결의대회’를 열어 △생산·유통 디지털화 △도매유통체계 혁신 △온라인 도소매 집중 △협동조합 정체성 확립 등 4대 추진전략을 제시하며 농산물 유통 개혁을 향한 강한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특히 농협은 도매 부문의 역량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농협하나로유통과 경제지주로 이원화돼 있던 농산물 도매유통조직을 통합해 ‘농산물도매분사’를 출범하고 통합구매를 통한 산지 경쟁력 강화에 매진하고 있다.
아울러 소매 부문에선 당일배송체계 구축과 온라인 몰을 통한 농산물 직거래, 우리 농산물로 만든 10대 가공상품 추진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소비자와의 접점 찾기에 나섰다.
하지만 농협이 농산물을 제값받고 팔아주기 위한 판매농협으로서 제대로 역할을 수행해 나가려면 보다 장기적 안목에서 사업을 추진해 나갈 필요가 있다.
소매 유통에 있어 무작정 유통·농식품 대기업의 방향성을 좇기보다 농협의 강점을 살린 생존전략을 세워 나가야 한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협동조합의 특성상 한계점이 분명히 존재하며, 이로 인해 일반 기업과의 무한 경쟁이 사실상 어렵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농협은 이윤 추구를 제1의 가치로 삼는 일반 기업과는 달리 농업인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 향상, 농업 경쟁력 강화를 목적으로 설립돼 큰 위험이 따르는 도전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대기업과의 출혈 경쟁에 뛰어들기보다 농협이 소비지 시장에서 경쟁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다각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요구다.
특히 온라인 부문은 향후 농식품 유통시장에서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인 만큼 빠른 결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종안 한국협동조합연구소장은 “농협이 직접 온라인 사업을 해나가거나, 중소단위의 온라인 유통기업과 공동 투자하는 방법, 현재 온라인 유통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기업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농식품 유통 부문에서 농협이 일정 정도 역할을 해나가는 방법 등이 있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어 김 소장은 “직접 운영은 인력과 자원이 적지 않게 투입되고 기업과의 전략적 제휴 등은 농협이 농식품 부문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딜레마가 있지만,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인 것은 명백하다”며 “선택과 집중으로 온라인 부문에서 농협이 중요한 역할을 해나갈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부가가치 창출이 뒷받침되는 판매사업으로 방향성 전환을 꾀해야 한다는 조언도 따른다. 유통 형태와 경로, 유통주체 등이 다양해진 최근의 유통 흐름 변화에서 보다 성과 효율을 높일 수 있는 판매사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0여 년을 돌이켜 볼 때 물량의 규모화를 통해 시장을 좌지우지 하겠다는 식의 접근은 성과가 분명하지 않았고, 산지 농가나 지역조합의 조직화로도 이어지지 않았다는 자조적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데 따른 것이다.
농협이 유통개혁을 중요 기치로 내세우며 의지를 보임에 따라 농업인의 실익 증대를 위한 판매농협으로서의 역할 강화를 주문하는 목소리는 날로 거세지고 있다.
# 정부, 농업경영위험 효율적 관리 위한 기반 구축에 나서야
고령화, 국산 농산물 소비 정체 등 농업·농촌의 어려운 여건은 지속되고 있으며 통상환경의 불확실성과 기후변화 등의 환경 변화는 농업·농촌의 미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농업인과 농업법인의 경영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펼쳐 왔다.
대표적인 정책이 공익직불제다. 지난해 5월부터 시행된 공익직불제를 통해 직불제를 쌀 소득안정에서 환경·생태 보전 등 공익적 기능 중심으로 개편, 농업·농촌의 역할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특히 소농직불을 도입해 영세 농업인의 소득안정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실제 지난해 전체 직불금 중 0.5ha 미만 농업인의 수령액 비중이 제도 개편전인 2019년 대비 11.8%포인트 증가했다.
더불어 농가소득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농산물 가격안정과 재해안정망 강화도 시급한 과제다.
이를 위해 농림축산식품부는 로컬푸드·온라인 등 직거래 활성화로 중·소농의 판로를 확충하는 동시에 재배복구비·보험 등 재해 안전망을 강화하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수급불안 등 고질적 문제 해결에 집중해 대응체계를 개편하다 보니 정작 이를 안착시킬 제도 정비와 기반 조정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농업계 전문가들은 농업인이 마주하는 경영위험이 갈수록 다양화되고 복합적이며, 불가항력이 경우가 많을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농업경영위험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기반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