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업, 거대한 환경변화에 직면…농업·농촌 다원적 기능과 공익직불제 확대 필요”
[농수축산신문=박유신·이문예·엄익복 기자]
한국농업은 거대한 환경변화에 직면해 있다.
농업·농촌의 현안이 몇몇 단편적 정책과 제도를 개선함으로써 대응할 수 있는 성격을 넘어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총체적인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혁신이 필요시 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본지는 창간 40주년을 맞아 평생을 학자이자 행동가로서 대한민국 농업·농촌 발전에 모든 정열을 쏟아온 정영일 서울대 명예교수를 만나 농업·농촌의 과거와 현재 상황을 짚어보고 우리가 추구해야할 농업·농촌의 미래상에 대해 들어봤다.
# 과거 국가 재건과 산업발전 과정 속에서 농업·농촌이 기여한 부문이 크다. 농업·농촌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농업·농촌은 단순한 국민 먹거리 공급원이라는 역할을 넘어 전 국민의 ‘일터’이자, ‘삶터’이며, ‘쉼터’로서 다양한 역할·기능을 담당해 왔다. 특히 지속가능한 발전이 시대의 화두로 대두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다양한 공익적 기능을 지니고 있는 농업·농촌을 유지하는 농업인은 ‘국토의 정원사’라는 역할을 부여 받고 있다.
도시와 농촌은 새의 두 날개와 같은 역할을 지니며 국가균형발전의 핵심과제로 다뤄져 왔다. 지난 세기 우리나라 경제는 농업·농촌의 자원을 제조업과 도시로 이전시켜 산업화·도시화를 추진해 왔다. 이는 농촌의 초고령화, 인구급감 등을 초래했고 도농간 불균형이 심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제는 도시자원의 농촌이전을 촉진함으로써 도시과밀화와 농촌과소화를 동시에 완화해야 하는 시점이다.”
# 대내외적 환경변화로 농업도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는가.
“우리 농업은 국제경쟁력 강화라는 해묵은 목표에 대한 대응과 함께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 개척에 진취적 자세로 임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2050 탄소중립’을 목표로 한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이 ‘발등의 불’로 대두되고 있다. 사실 우리 농업은 집약농업과 공장식 축산으로 환경부하가 매우 높은 편이다. 온실가스를 대량 배출하는 농법을 친환경적으로 재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 최근 세계적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ESG 활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SG는 친환경(E), 사회적 책임(S), 투명한 지배구조(G)를 의미하는 합성어다. 국내에서도 주요 대기업들이 이사회내에 ESG 관련 의사결정기구를 신설하고 농협 등 금융관련분야에서도 금융자원배분을 위한 사업계획 심사에서 ESG 요소를 도입하는 등 대응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 농업부문에서 농촌입지기업과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인 협력을 통해 ESG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사례가 있다. 바로 충남 홍성군 원천마을이다. 원천마을은 마을내 양돈기업인 성우농장과 마을 주민들이 힘을 모아 친환경축산으로 마을 환경을 개선하고 분뇨를 활용한 전력 생산과 폐열을 이용한 시설농업을 통해 주민소득원을 개발하는 상생을 실현하고 있다. 이같은 사례를 농업·농촌 관련 분야에서 폭 넓게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
# 지속가능한 농업은 무엇이고 앞으로의 농업은 어떤 기능과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가.
“UN환경개발위원회는 지속가능발전을 ‘미래 세대의 필요충족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발전’으로 정의하고 있다. 2000년 UN(국제연합) 총회에서 채택된 밀레니엄개발목표(MDGs)는 2015년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어젠다 2030’ 채택으로 발전했고 향후 15년간 추진할 지속가능한개발목표(SDGs)를 결의하기에 이르렀다.
SDGs 채택은 지속가능 농정으로의 이행에 있어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이고 세계 농정패러다임의 변화를 예고한다.
오늘날 농업은 단순한 농산물 공급기능을 넘어 농업과 비농업 활동을 결합시킨 ‘농촌의 변화 발전을 위한 중심축’이라는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농업은 1차적으로 본원적 생산기능을 가리키지만 그 과정에서 결합돼 제공되는 외부성이나 공공재의 특성, 즉 공익적 기능인 식량안보, 환경보전, 수자원 확보, 홍수방지, 지역사회 유지, 전통문화 보전 등의 기능과 역할을 지닌다.”
# 농업정책에서도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고 본다.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는지.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으로 각국은 농정 수단을 농산물가격지지 정책과 같은 감축대상보조를 공익형직불제와 같은 허용보조로 전환해 가는 농업정책의 개혁을 추진해 왔다. 우리나라도 그 일환으로 지난해 5월부터 공익직불제를 도입·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공익직불제가 제대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풀어야할 과제가 있다. 우선 100만이 넘는 농가를 대상으로 2조4000억 원에 불과한 직불제 예산을 점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더불어 직불금 부정수급 방지 조치와 병행돼야 정책신뢰도를 높일 수 있고 제도의 내실화를 꾀할 수 있다. 농업경영체등록제나 관련 정보 통합관리시스템 구축을 촉진시켜야 한다. 지급방식도 면적에 따른 획일적 기준을 넘어 영농규모나 형태에 따라 농가당 최고한도를 설정, 다양한 차등화를 추진해 나갈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농가 의무준수사항과 관련해 모범 영농기준 준수와 친환경영농 실현 등에 대해 보다 투명한 기록과 확인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 농촌의 역할이나 모습도 달라져야 할 것 같다. 어떤 모습으로 달라져야 한다고 보는가.
“먼저 농촌사회의 변화 추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농촌은 엄청난 변화의 물결 속에서 다양화가 진전되고 있다. 농촌지역의 인구구성에서 농가의 비중이 급속히 줄어 30%대로 떨어졌으며, 이 추세는 계속 진전될 것이다. 도시근교냐, 산간오지냐에 따라 농촌지역의 인구구성은 크게 다를 수밖에 없으며, 지역특성에 따라 농촌입지산업이나 농업의 형태도 달라지고 있다.
국가경제사회의 존속·발전을 위해선 농촌지역사회의 유지, 국토 환경의 보전, 수자원의 보전·함양, 홍수예방, 토양침식 방지, 자연경관과 휴식 제공, 전통문화의 계승 등 농업·농촌의 다원적 기능이 요구된다.”
# 삶의 질 제고를 위한 농촌서비즈기반 확충이 국정의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정부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그동안 농정목표는 농가 소득증진이나 영농주체 확보와 같은 좁은 시각에 머물러 왔다. 농촌주민의 삶의 질 향상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이라는 폭 넓은 목적으로 전환돼야 한다. 가령 귀농·귀촌의 현실을 보면 96% 이상이 귀촌이며, 귀농은 4% 미만이다. 따라서 정책대상도 귀농인에 국한시키기보다 귀촌인 전체로 확대해 정착을 유도하고 이 중 영농희망자를 추가 지원하는 게 실효성 있는 접근일 것이다. 귀농을 귀촌의 일환으로 볼 때 정책의 시너지 효과도 거둘 수 있다.
귀촌정책의 대상지역 범위도 마을이나 권역을 넘어 필수적인 생활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초생활권 단위로 설정해야 한다.
다만 정부 주도의 ‘시혜적(施惠的)’ 정책 추진 방식은 분명한 한계를 지닌다는 점을 명심하고 ‘민간주체 주도를 통한 정부의 정책·제도·재정 지원’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농어업회의소’가 주목을 받고 있다. 민관협치 대의기구로서 농업업회의소가 정착하기 위한 과제는.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제가 반쪽짜리라는 비난을 듣는 것은 권한과 재정의 지방분산이 미흡한 측면도 있지만 지역 내 의사결정구조가 소수의 구성원에 집중돼 있는 현실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그런 면에서 지역농정분야의 경우 강원 평창농어업회의소는 민관협치시스템을 정립한 모범 사례로 꼽을 수 있다. 2012년 설립돼 사단법인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평창농어업회의소는 군내 모든 농협과 농업관련 단체가 특별회원과 단체회원으로 참가하고 전체농가의 20% 가량이 개인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특히 군내 다양한 농업관련 주체들의 이해를 조정해 통일된 목소리로 행정에 대한 제안활동을 꾸준히 전개, 농정분야의 대의기구로 인정받고 있다.
선진적인 지역농정 거버넌스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집행부의 지도력과 헌신, 정치중립성과 독립성 유지, 다수 농업인의 자발적 참여를 바탕으로 한 행정과 의회에 대한 영향력 확보 등이 필요하다.”
# 마지막으로 농업계와 농정당국에 전하고픈 말씀이 있다면.
“먼저 농업계는 열린 자세로 농업·농촌을 둘러싼 환경변화를 직시하고 농촌사회의 변화와 혁신에 적극적인 자세로 참여하길 바란다.
농정당국 역시 농가소득 향상, 농산물 가격지지 등의 정책목표를 넘어 농촌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다양한 필요조건을 충족시켜 나가야 한다.
농촌지역 주민도 주인의식을 갖고 주민 주도의 자질향상 노력으로 민관협치시스템을 확립하는데 노력해야 한다.
지난 세기와 같은 정부주도 성장방식은 이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을 명심하길 바란다.”
# 정영일 서울대 명예교수는…
[약력]
- 1940년 부산 출생
- 서울대 상과대학·대학원 졸업
- 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 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
- 전 (사)농정연구센터 이사장
- 전 (재)지역재단 이사장
- 현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 현 (사)농촌사랑범국민운동본부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