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화·상업화 되고 있는 해루질에 어촌사회 갈등 ‘심각’
공유수면 뿐 아니라 마을어장까지 무분별하게 진입
종묘 방류하고 가꿔온 수산물까지 ‘싹쓸이’
모호한 법령과 상반된 판례로 갈등 고조
해루질 비롯 해양레저행위와 관련된 법령·제도 정비하고
어촌주민·어업인과의 상생방안 마련해야

해양레저의 증가에 힘입어 해루질도 증가하면서 해루질을 둘러싼 갈등이 극심해지고 있다. 사진은 경남 거제시 마을어장에서 물질을 하
해양레저의 증가에 힘입어 해루질도 증가하면서 해루질을 둘러싼 갈등이 극심해지고 있다. 사진은 경남 거제시 마을어장에서 물질을 하

 

해양레저활동이 늘면서 해루질객과 어촌 주민들과의 갈등도 늘고 있다. 낚시객과 어업인간의 갈등에 이어 최근에는 비어업인의 해루질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어촌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다.

이에 지난달 26일 안면도수협에서 열린 ‘비어업인 해루질 대응 권역별 현장설명회’에서는 최근 늘어나는 해루질로 인한 문제점 등이 집중 거론됐다.

# 취미·레저를 넘어선 해루질

해루질은 물이 빠진 갯벌에서 어패류를 채취하는 행위로 주로 밤에 불을 밝혀 불빛을 보고 달려드는 물고기를 잡는 전통적인 어로행위를 의미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해루질이 취미나 레저의 수준을 넘어 전업화·상업화되고 있다.

과거의 해루질이 호미 등 단순한 장비로 바지락 등 패류를 채취하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100만 원이 넘는 잠수복과 써치라이트 등 전문적인 장비를 동원한 해루질이 이뤄지고 있다. 특히 누리소통망(SNS) 등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면서 해루질이 급격하게 늘고 있으며 이 가운데 레저행위를 넘어선 판매목적의 해루질도 성행하고 있다.

더불어 스킨스쿠버는 산소통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 명확한 단속규정이 없어 야간에 양식장이나 마을어장을 자유로이 드나들면서 문어 등 수산물을 대량으로 포획·채취한다는 것이 어촌현장의 전언이다.

안면도수협의 한 어촌계원은 “가족끼리 와서 플래쉬를 비춰 조금씩 잡아다가 조리를 해먹는 것을 두고 누가 뭐라고 하겠나”라며 “전문적인 장비까지 챙겨와서 싹쓸이를 해가다시피하니 지역에서 갈등이 생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기흥 수협중앙회 어업혁신추진단장은 “해양레저행위가 레저 수준을 넘어 어업인들의 생존권까지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어촌지역은 고령화와 과소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소멸우려가 커지고 있는데 이같은 상황에서 해루질이 무분별하게 늘어날 경우 어장황폐화로 어촌의 소멸위기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정식 안면도수협 조합장은 “해루질객들이 해삼을 대량으로 잡아서 상인들에게 1kg당 1만~1만1000원에 넘기다보니 지역의 해삼값까지 전반적으로 하락하게 됐다”며 “무차별적으로 포획해서 판매를 하고 있는데 이를 단순히 레저활동이나 취미로 볼 수 있나”고 꼬집었다.

# 늘어나는 해루질객에 잠 못 드는 어업인들

해루질을 위해 어촌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어업인들의 고충이 커지고 있다. 어업인들은 정부로부터 마을어장면허를 부여받아 어장의 배타적 이용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해루질객들이 공유수면 뿐만 아니라 마을어장까지 들어와서 무분별하게 수산물을 포획·채취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일부지역에서는 야간에 마을어장에서 이뤄지는 해루질을 막고자 불침범을 편성해 순찰을 하는 지역도 생겨나고 있다.

순찰 역시 녹록지 않다. 어촌지역의 고령화와 과소화가 심각한 상황인터라 어업인만으로는 해루질객으로부터 마을어장을 항상 지켜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순찰을 통해 해루질객을 발견하더라도 해루질 동호인들을 막아내는 것이 쉽지 않다. 해루질을 하러온 동호인들은 대부분 30~50대로 젊고 건장하며 해루질과 관련한 법률규정과 대법원 판례까지 숙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마을주민들이 이들의 해루질을 제재하려 해도 오히려 해루질 동호인들이 반발하면서 마을주민들과 해루질객 간 물리적인 충돌도 발생한다는 것이 안면도 수협 어촌계원들의 전언이다.

이날 설명회에 참석한 장종관 씨는 “공유수면에 들어가서 포획을 하는 것을 막는 게 아니라 계원들이 일궈온 마을어장에 무분별하게 진입해 종묘를 방류하고 가꿔온 수산물까지 모조리 잡아가니 반발하는 것”이라며 “마을주민들은 어업만 하는 것이 아니라 농사도 짓기 때문에 밤에는 자야하는 데 해루질객들이 밤에 마을어장에 들어가서 수산물을 싹쓸이해가니 울며겨자먹기로 밤에 순찰까지 돌아야 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손병석 안면도수협 상임이사는 “해루질 하러온 사람들 때문에 해경을 불러도 해루질 객들이 해경보다 수산업법 등 관련 법령을 더 잘알고 있어 단속이나 제재가 불가능해지고 있다”며 “이 때문에 조합원들과 해루질객 간의 물리적인 충돌도 발생, 폭행사건으로 비화되는 경우도 수차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 해루질 전문 펜션까지 등장

최근에는 해루질 전문 펜션까지 생겨나면서 어촌사회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안면도 일대는 전국에서 펜션의 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다. 이 때문에 펜션업주들간의 경쟁이 치열하다. 이에 일부 펜션업주들은 아예 ‘해루질 펜션’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펜션에서 해루질을 위한 장비를 대여해주고 해루질 포인트를 알려주는 등의 형태로 영업을 하고 있다. 특히 일부 펜션업주들은 해루질에 필요한 전문적인 도구와 장비를 완벽하게 구비하고 수십명단위의 해루질객을 모집, 영업을 하고 있다.

김동민 안면도수협 지도상무는 “해양레저객은 이미 등산객을 넘어설 정도로 대중화된 상황으로 안면도수협 관내의 항포구에는 시즌이 되면 마을어장에서 작업하기 위한 어업인들도 차를 대기 힘들 정도로 많은 해루질객들이 안면도를 찾고 있다”며 “특히 일부 펜션에서 영업이 잘 안되다보니 ‘해루질 펜션’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고 수십명 단위의 해루질객을 모집해서 해루질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안면도수협의 한 어촌계원은 “어촌계에서는 해루질 객들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는데 지역의 펜션업주들은 오히려 그들이 더 많이 오도록 영업을 하고 있으니 지역에서 말이 안나올 수가 없다”며 “해루질을 전문으로 하겠다는 펜션을 달갑지 않게 보지만 그들을 막을 수도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라고 토로했다.

# 모호한 법령·상반된 판례에 갈등 ‘심화’

해루질로 인한 갈등이 심각해지고 있는 것은 관련 법령이 모호한데다 대법원 판례에서 해루질객의 손을 들어준 사례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업인들은 관련 법령에 따라 마을어업면허를 받아 어장내에서는 배타적 권리를 보장받고 있다. 하지만 대법원은 마을어장 내에 서식하는 수산동식물에 대한 어촌계의 점유권이나 소유권을 부정하고 있다. 2003년 이뤄진 2002도6326 판례에 따르면 마을어업권자에 의해 관리, 조성된 패류, 해조류 또는 수산동물을 우선적으로 포획·채취하는 마을어업권은 그러한 권능만을 가진 물권일 뿐 구획받은 수면 내에 있는 모든 패류나 해조류, 정착성 수산동식물의 점유권이나 소유권을 자동적으로 취득 또는 상실하게 되는 물권은 아니다. 이를 바탕으로 대법원은 소송당사자의 절도죄를 부정했다.

대법원 판례대로라면 어업인들은 마을어장면허를 통해 배타적 권리가 있지만 해루질객들이 마을어장을 이용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어업인들이 종묘를 방류해 마을어장에서 양식하는 품종이 아닌 경우 이를 제재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민법 209조에서는 점유자는 그 점유를 부정하게 침탈 또는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 자력으로 이를 방위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어 갈등의 소지가 남아있는 실정이다.

수산업계의 한 전문가는 “해양레저가 급격히 늘면서 레저객과 어업인 간의 갈등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지만 해양수산부는 해양레저의 성장을 홍보만 했지 사회적인 갈등을 줄이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며 “해루질을 비롯한 해양레저행위와 관련된 법령과 제도를 정비, 어촌주민, 어업인과의 갈등을 저감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한다”고 지적했다.

# 규제가 능사 아냐

어업인들은 마을어장에서 해루질 행위를 막고 이를 단속해줄 것을 요구하는 반면 수산업계의 전문가들은 해루질에 대한 일방적인 규제가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로 둘러 쌓여있고 각 해역별로 특성이 매우 강하다. 이런 상황에서 공유재인 바다를 이용함에 있어 일방적으로 국민들을 규제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을뿐더러 실효성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행 법령에서는 해루질을 하는 사람이 납벨트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해루질객들은 무거운 배터리를 등에 메고 해루질을 하고 있다. 이는 규제를 피하는 편법이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도훈 부경대 교수는 “기본적으로 바다는 국민이 공유하는 공유재로 어업인들의 배타적인 이용권만을 주장하기는 어렵다”며 “정부에서 규제를 만든다고 해도 여러 편법들이 판을 칠 공산이 큰데다 해경의 인력문제 등 현실적인 한계로 법령이 제대로 집행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안동호와 밀양호에서 낚시객과 어업인이 상생모델을 만들었던 것처럼 해루질객과 어업인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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