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어업인 스스로 '경영주'로 인식할 수 있도록 교육·지원 이뤄져야
어업현장 숙련 노동자이지만 가치 저평가
수협 여성조합원 비율 증가세에도 역량 키울 지원조직·연구 등 미흡
여성어업인 인식개선·역량발현 위해
해외사례 참고 세밀한 지원정책마련해야

 

어가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여성어업인들의 역할이 주목을 받고 있다. 여성어업인들은 어업과 수산물 유통·가공업에서 많은 역할을 해왔지만 어촌사회에서는 수산업계에서는 보조적인 존재로 인식돼왔다.

10월 10일 여성어업인의 날을 맞아 여성어업인들의 역할과 과제에 대해 짚어본다.

# 어촌 고령화·과소화 속 주목받는 여성어업인

선진국을 중심으로 어촌사회의 고령화와 과소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여성어업인들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여성어업인들은 어업현장에서 숙련노동자이지만 여성어업인들의 가치는 저평가돼왔고 여성어업인들 스스로도 ‘어업인’이라는 자각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특히 어촌비즈니스 영역에서 여성어업인들의 필요성과 참여도는 높으나 관련된 지식과 중간지원조직, 연구 등이 미흡해 두각을 드러내기 힘든 실정이다.

이는 서구 국가역시 마찬가지다. 성평등이 보편화된 북유럽에서도 여전히 남성중심적인 문화가 이어지고 있다. 핀란드의 경우 맞벌이와 공동양육이 일반화되면서 성평등이 일반화돼있지만 어촌사회에서는 여성은 여전히 해안의 육지에서 일하는 어업의 보조적인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선진국을 중심으로 여성어업인들의 역할과 위상을 정립하고 어업인으로서 역할에 주목하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2021년 개정된 여성농어업인 육성법에 따라 매년 10월 10일을 법정기념일로 지정, 여성어업인들의 권익신장과 위상 제고에 노력하고 있다.

어촌사회에서 여성어업인의 역할 역시 중요해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9만805명의 어가인구 중 4만5591명이 여성이었다. 또한 수협중앙회에 따르면 2013년 기준 15만9252명 중 4만8205명(30.02%)이었던 여성조합원 비율은 지난달 말 기준 15만4250명의 조합원 중 5만4664명(35.4%)으로 늘었다.

# 여성어업인이 꿈꾸는 행복한 세상

해양수산부는 여성어업인의 권익신장을 위해 지난 4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서울에서 ‘여성어업인이 꿈꾸는 행복한 세상’을 주제로 제2회 여성어업인의 날 기념식을 개최했다. 올해 기념식에서는 조승환 해수부 장관과 노동진 수협중앙회장, 안창희 한국여성어업인연합회장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여성어업인의 날을 축하했다. 또한 여성어업인의 지위향상을 위해 애써온 12명의 유공자에 대한 시상식도 이어졌다.

조 장관은 이날 기념식에서 “이번 행사가 어촌의 핵심 인력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 여성어업인에 대한 존경과 사회적 기여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해수부는 앞으로 여성어업인들이 수산업 종사자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다음 세대에 전문지식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노동진 회장은 “오늘날 수산업을 이끌어온 것은 남성만이 아니다”며 “바다, 갯벌, 위판장 등 어업 현장 곳곳을 누비고 있고 여성들 역시 수산업의 주역”이라고 강조했다.

# 여성어업인 인식개선·지원확대 필요

어촌사회에서 여성어업인들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여성어업인들 스스로와 여성어업인에 대한 인식개선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지원을 확대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여성어업인들은 수산물의 생산·가공·유통, 어촌비즈니스 등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지만 어업을 경영하는 경영주라는 인식은 부족하다. 국내 유일의 여성어업인단체인 한국여성어업인연합회 역시 1996년 결성된 ‘수협 부인부’에 모태를 두고 있다. ‘수협 부인부’는 어업인단체라기보다는 지역내 봉사활동 단체의 성격이 강한 터라 여성어업인연합회의 회원 중 적지 않은 수가 여전히 자신들을 지역내 봉사활동을 하는 단체의 일원으로 인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여성어업인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중간지원조직과 현장 지원 조직이 전무해 여성어업인의 역량을 이끌어내고 이를 강화하는데 한계가 있으며 지원 예산 역시 터무니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박상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어촌연구부장은 “여성어업인들이 어촌사회에서 독자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여성어업인 스스로를 생산자나 사업주체로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관련 교육 등이 충실하게 이뤄져야 한다”며 “어촌특화지원센터 등의 지원조직도 어촌계를 대상으로 하다보니 여성어업인에 특화된 지원이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어업 생산의 측면에서 여성들은 보조적인 역할에 그칠 수 있지만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의 꾸리마(Currimar) 사례를 보면 수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상품화를 하는 측면에서는 여성어업인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여성어업인의 경영사례에 대한 사례학습을 바탕으로 여성어업인들의 역량이 발현될 수 있도록 관련 지원 정책들을 보다 세밀하게 설계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여성어업인이 말하는 수산업·어촌]

# 정세연 봉봉이네수산협동조합 대표이사=어촌에서는 여성들의 섬세함이 필요한 일들도 많다. 서류 작업이나 수산물 생산관리 등은 여성들이 잘 할 수 있는 영역인 만큼 어촌사회에서 역할이 많다. 이에 비해 생산작업 과정에서는 여성들이 진입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수산업에서 사용되는 기계 등은 대부분 남성 위주로 만들어져있어 여성이 사용하는 데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어선은 남자들이 주로 타다 보니 화장실 등이 열악하다. 여성어업인들이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이런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수산업은 노동집약적인 형태인 터라 물리적인 힘이 많이 필요하다. 여성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장비 등이 개발되면 좋을 것 같다.

# 우정민 해녀=여성어업인에게는 일과 가정의 양립 문제가 있다. 우선 해녀의 경우 임신·출산시 소득이 전혀 없어지게 된다. 사실상 실직상태에 놓이게 되지만 근로자가 아니기에 고용보험에도 가입이 쉽지 않다. 또한 아이 엄마들은 아이가 아프거나 아이를 돌봐야 할 때 일을 하는 것이 어렵다. 여성어업인들을 위한 돌봄서비스가 강화된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여성어업인들 스스로 변화해야하는 것도 있다. 해녀는 직접 어업을 하는 어업인이지만 스스로를 어업에서 보조 정도로 낮게 평가하는 측면이 있다. 또한 바다에서 작업을 할 만큼 강인하지만 완력을 쓰는 것에는 스스로의 능력을 낮춰보고 남성들에게 의존적이 되기도 한다. 이런 인식들을 개선해 스스로를 한명의 어업인으로 인식하고 활동해야한다.

# 송주현 송원식품 대표=여성들이 어촌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으려면 어촌사회에 남아 있는 남성중심적인 분위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감태 가공에 뛰어든지 10년 가까이 됐는데 사업을 시작한 초기에는 지역의 어업인들과 대화가 쉽지 않았다. 기업의 대표자로 있지만 젊은 여성을 대표자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촌사회의 이런 분위기를 개선한다면 여성들이 어촌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어업은 물리적으로 많은 힘이 들어가는 만큼 정부에서 수산물의 생산·가공관련 기기의 개발과 표준화를 통해 여성들이 진입하기에 보다 나은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수산업·어촌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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