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촌 고령·공동화 심화…마을어장 빈매 만연
공유재로 ‘임대수익’ 논란 … 어촌소멸 막을 정책대안 될 것
[농수축산신문=김동호 기자]
마을어장은 어촌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주요 자원으로 연안어촌경제의 근간이 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지난달 13일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마을어장의 임대제도를 활성화한다는 내용을 담은 ‘어촌·연안 활력제고방안’을 발표했다.
임대제도의 활성화는 한편으로는 마을어장을 통해 청년들의 수산업·어촌 진출을 촉진하기 위한 주요한 정책수단으로 평가하는 반면 또다른 한편으로는 현행 법령상 불법으로 규정된 어장의 빈매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 마을어장 임대 활성화를 둘러싼 두 시선에 대해 짚어본다.
# 마을어장, 어촌계 유지하는 핵심축
마을어장은 어촌계를 유지하는 핵심축으로 작용하며 현재 연안의 2049개 어촌계가 서울시 4배 면적인 24만ha의 마을어장을 운용하고 있다.
마창모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수산연구본부장의 ‘마을어장 이용·관리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마을어업면허권은 어촌의 정주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정책적 배려로 어촌계에 부여된 법적 권한이다. 지선의 어업인이 마을어업권을 소유하면서 ‘공동어업권’으로 불리다가 1995년 개정된 수산업법에 따라 명칭이 ‘마을어업’으로 변경됐다.
이들 마을어장은 오랜 기간 어촌공동체 유지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이 때문에 현행 법령에서는 마을어업권의 임대차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수산업법 31조에는 마을어업권자는 다른 사람에게 어업의 경영을 지배하도록 할 수 없도록 하고 있으며 32조는 임대차를 금지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마을어장의 임대는 수산업법에 따라 엄격히 금지되고 있지만 어촌의 고령화와 공동화가 심화되면서 마을어장을 타인에게 임대하는 ‘빈매(貧賣)’가 만연하고 있다. 수산업계에서는 빈매가 이뤄지고 있는 어장이 90%에 달할 것이라는 추정이 나올 정도의 상황이다.
# 마을어장 연간 생산액은 2700억원+@
마을어장에서의 수산물 생산액은 어업생산액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통계청 어업생산동향조사에 따르면 2004년 2만638톤이었던 마을어업 생산량은 지난해 6만5905톤까지 늘었고 같은 기간 생산금액은 311억 원에서 2700억 원 수준까지 늘었다. 하지만 마을어업의 생산량과 생산금액만으로 마을어장의 가치를 산출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해면양식어업면허 중 개인에게 부여된 면허는 경남 일대의 어류나 패류양식장 등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대부분 어촌계가 배타적인 권리를 행사하는 양식장에서 어촌계원과 어촌계가 행사계약을 체결, 수산물을 생산한다. 즉 국내 양식수산물 생산금액에서도 상당 부분이 어촌계의 관리하에 있는 어장에서 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 어촌 공동화·고령화 심화에도 어촌계 폐쇄성 ‘여전’
어촌사회의 고령화와 공동화가 심화되고 있지만 어촌계의 폐쇄성은 여전하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04년 20만9855명이었던 어가인구는 지난해 8만7115명을 기록, 20년만에 58.5% 감소했다. 어가인구가 감소하는 가운데 65세 이상 고령어가의 수는 3만5773명에서 4만1784명으로 늘어 어가의 고령화율은 17.05%에서 47.96%까지 높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촌계의 폐쇄성은 여전하다. 지난해 본지와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의 주최·주관으로 전국 6개 권역에서 열린 청년어업인 권역별 좌담회에 참석한 청년들은 어촌계에 가입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부산으로 귀어한 한석준 어업인은 “5대째 부산 영도구에 살고 있는 토박이인데 어촌계에 가입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며 “어선을 구매하고 어촌계에 가입하려하니 기존 계원들의 반대가 시작됐고 계원 70% 가량이 동의해도 일부가 반대하다보니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어촌계에 가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강원지역의 이용철 어업인은 “귀어를 하는 사람들은 어촌의 진입장벽 문제를 호소하며 특히 어촌계 가입의 어려움을 호소한다”며 “어촌계에 가입이 안되면 지자체의 지원사업 혜택을 못받는 경우가 많아 어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 해수부, 마을어장·양식장 임대 추진
정부는 어촌의 소멸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마을어장과 양식장을 임대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일환으로 우선 양식산업발전법을 개정, 양식장을 임대할 수 있도록 했다. 현행 양식산업발전법상 양식업권은 원칙적으로 임대차를 목적으로 할 수 없다. 하지만 2022년 개정된 양식산업발전법에서는 공공기관을 통한 임대차가 가능하도록 했고 한국어촌어항공단을 통해 양식장 임대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마을어장의 임대활성화도 검토하고 있다. 지난달 13일 발표된 어촌·연안활성화대책에서는 2049개 어촌계의 어장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마을어장 면허의 심사·평가제도를 전격 도입하고 어촌계원의 고령화로 운영이 어려운 어장은 신규 인력이 임대받아 운영할 수 있도록 임대제도를 활성화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신규 인력을 유치한 어촌계에 대한 혜택을 부여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 공유재로 임대수익?
해수부가 추진하는 마을어장과 양식장의 임대사업은 공유재를 이용해 임대수익을 누린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헌법 120조는 광물과 기타 지하자원, 수산자원, 수력 등 경제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자연력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일정 기간 채취와 개발을 특허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수산업법에서는 일정한 지역에 거주하는 어업인의 공동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어촌계나 지구별수협에 마을어업을 면허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어촌계가 보유한 마을어장과 양식장은 국가가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부여한 특허인 것이다.
어촌계가 마을어장에서 배타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것은 국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인데 어촌계가 마을어장에서 어업소득이 아닌 임대소득을 올리게 되는 것이 타당한 일이냐에 대한 물음이 따라붙는다. 이와 함께 어촌계의 이전소득이 늘어나는 것은 오히려 어촌계의 폐쇄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2049개의 어촌계 중 발전소의 온배수 배출에 따른 보상 등 어업피해보상이 지급되는 어촌계는 다른 어촌계에 비해 폐쇄성이 더 강한 경향을 보인다. 이 가운데 어장을 임대할 경우 어촌계의 이전소득을 늘려 오히려 폐쇄성을 공고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류정곤 한국수산회 수산정책연구소장은 “어촌계는 마을어장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 공유재의 이용권을 가지고 있는 것인데 이를 임대해서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대동강 물을 팔았던 봉이 김선달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라며 “마을어장을 임대하는 방식이 언뜻보기에는 손쉬운 방안이겠지만 자칫 잘못하면 근간을 흔들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원칙적으로 마을어업의 면허는 자신들이 이용하지 못할 경우 반납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불가피할 경우 행사계약을 통해 문제를 해소해야지 임대차의 개념으로 넘어가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 레저객과의 갈등 심화 우려
마을어장의 임대사업은 레저객과의 갈등을 심화시킬 우려도 있다. 최근 수년간 해루질 등 해양레저를 즐기는 국민들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이 가운데 해루질로 포획·채취한 수산물을 판매할 정도로 전문적인 해루질객들까지 빠르게 늘고 있어 어촌사회의 심각한 갈등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이 배경에는 국내 연안의 대부분이 마을어장으로 둘러싸여있다는 환경적인 측면도 작용한다. 수산물의 포획·채취활동을 하기 용이한 곳은 대부분 2049개의 어촌계가 배타적 권리를 가진 마을어장이 위치해있다. 즉 사실상 비어업인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연안의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정부가 마을어장 임대사업으로 어업인에게는 임대소득을 제공하는 반면 레저객들이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한 상황을 해소하지 않을 경우 어장임대사업은 오히려 국민들의 반발에 직면할 수도 있다.
# 어촌소멸 막기 위한 정책대안
마을어장의 임대를 바라보는 또다른 시각은 어촌소멸을 막을 수 있는 정책대안이라는 것이다.
어촌계의 마을어업권은 100여년간 이어져 온 것으로 어촌사회에서는 어업권을 두고 많은 이해관계와 기득권들이 교차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정부가 나서서 어촌사회에 뿌리 내려있는 어촌계 제도를 인위적으로 흔들려는 것은 어촌 주민들의 강한 반발과 이로 인한 어촌사회의 혼란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즉 단기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마을어업권 문제가 해소될 때까지 청년들의 어촌사회 진입을 촉진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을 경우 어촌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특히 어촌의 고령화율이 50%에 육박하는 상황인데다 매년 어가인구가 빠른 속도로 감소하고 있는 현 상황을 볼 때 마을어장 임대는 정부가 검토할 수 있는 하나의 정책대안으로 꼽힌다.
박상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어촌연구부장은 “지금의 어촌계 정관 문제나 폐쇄적인 어촌사회의 분위기를 이대로 두면 대체 누가 어촌으로 들어가서 일을 할 것인가”라며 “제도의 기반이 무너지는 것보다 공동체의 기반이 무너지는 것이 더욱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어장임대는 청년들의 어촌사회 진입을 유도할 수 있는 정책으로 어장임대로 수산업에 진입한 청년들을 통해 어업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어촌사회에서 다른 유형의 부가가치도 창출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어장이용, 협력적 전환 필요
마을어장의 이용에 있어 협력적인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어촌계에 마을어장에 대한 배타적인 이용권리를 부여한 것은 어촌공동체의 유지·발전 등 여러 취지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당초의 목적과 취지대로 운영되는 어장이 있는 반면 적지 않은 마을어장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어촌사회가 수행하고 있는 여러 공익적 기능들을 감안할 때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있는 마을어장은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협력적인 방식으로 전환을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특히 어촌이 소멸위기에 직면해있다는 점을 감안해 활용되지 않는 어장을 청년 등 귀어인에게 개방하되 어장을 통해 발생한 수익의 일부를 어촌공동체 유지 등을 위해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마창모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수산연구본부장은 “어촌계에 부여된 마을어장에 대한 배타적인 이용권한은 국가의 필요에 의해 특정한 목적과 취지에 따라 부여된 것으로 어촌사회에서는 오랜 기간에 걸쳐 공고한 시스템으로 자리잡고 있다”며 “이같은 상황에서 인위적으로 어장의 배타적 이용권한을 회수할 경우 어촌사회의 갈등이 극심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어촌계의 마을어장 중 3분의 1가량은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는 상황인만큼 마을어장의 실태에 대해 면밀하게 조사하고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 마을어장을 활용할 수 있는 협력적인 전환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