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등록농약 중 맹독성 품목 없어
농약은 3~10일 이내 자연분해
잔류농약 부적합 농산물
즉각 폐기 또는 출하연기 처분
PLS 시행으로 무분별한 농약 오·남용 방지
안전성 검증 안된 수입농약 차단 가능
[농수축산신문=이문예 기자]
‘농약’은 위험하다는 부정적 이미지와 함께 막연한 불안감을 갖는 국민들이 많다. 하지만 안전사용기준을 준수해 올바르게 사용하면 실(失)보다 득(得)이 훨씬 크다. 선진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병해충으로부터 작물을 보호하고 안정적인 수확량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농약을 사용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에 작물보호제와 잔류농약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알아본다.
#‘농약≠잔류농약’ 개념 바로서야
1980년대 후반, 농산물 수입 개방의 흐름에 따라 국내로 들어온 미국산 자몽은 신맛, 단맛, 쓴 맛이 한꺼번에 몰아치는 묘한 맛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이러한 자몽 열풍은 1989년 ‘알라(Alar)파동’으로 한순간에 식어버렸다.
위해우려 농약(B2농약)인 알라는 주로 크고 무거운 자몽의 낙과를 방지하는 낙과방지제로 사용됐다. 미국환경보호청(EPA)은 1990년부터 사용을 전면 금지하기로 결정했는데, 시민단체가 미국산 수입 자몽의 과피와 과육에서 알라가 검출됐다고 발표하며 전국이 발칵 뒤집어진 것이다.
알라파동 직전 해인 1988년 9월 우리나라도 처음으로 17종의 농약에 대한 잔류허용기준(MRL)을 마련하며 대응해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완전한 기준이 설정돼 있지 않은 상태여서 규제 근거가 마땅치 않았다.
결국 그 해 7월 보건사회부는 자몽을 수거해 정밀검사했고 알라가 검출되지 않았다는 결과를 내놓으며 일종의 해프닝으로 끝이 났다. 하지만 알라파동은 잔류농약의 관리와 먹거리 안전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우고 국민적 인식 변화를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 ‘맹독성’ 농약 단 한 품목도 없어
알라파동이 있은지 벌써 35년이 지났다. 그동안 잔류농약 검사·분석 기술의 발전, 관리체계 구축 등으로 국내 유통 농산물에 대한 안전성을 확보했지만 여전히 국민들에게 잔류농약은 막연한 불안감으로 다가온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잔류농약을 농약과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잔류농약은 농약과 구별해야 한다.
농약은 플라스틱 용기나 봉지류에 담겨있는 약 그 자체를 말한다. 이와 달리 잔류농약은 농약을 수천 배 희석해 살포한 후 잔류하는 극미량의 농약을 일컫는다. 농도부터 확연히 다른 개념인 만큼 위험도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보통 농약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건 ‘독성’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분류방식에 준해 극미량으로도 시험 동물의 반수(50%)를 죽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독성을 ‘Ⅰ급 맹독성’이라 하며 ‘Ⅱ급 고독성’, ‘Ⅲ급 보통독성’, ‘Ⅳ급 저독성’ 순으로 구분한다.
2022년 12월말 기준 국내 등록농약 중 맹독성은 단 한 품목도 없다. 고독성은 비농업용으로 검역과 저장해충 방제용으로 4품목만 등록돼 있으며 보통독성은 331품목·15.5%, 저독성은 1872품목·84.3%다. 일부 보통독성 농약 이외엔 대부분 저독성 농약이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은 농약의 급성독성에 대한 분류일뿐 잔류농약은 이러한 분류가 의미가 없을 만큼 극소량이다. 독성에 대한 두려움을 잔류농약에 그대로 옮겨올 필요가 없는 것이다.
# 천연 여부보다 안전사용이 더 중요
간혹 일반적인 합성화합물 농약을 천연물질이 아니라 불안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감자싹에 함유된 독성물질인 솔라닌은 체중 1kg에 3~6mg이 치사량이다. 30mg만 먹어도 복통, 구토, 메스꺼움, 현기증, 호흡곤란 등 식중독 증상이 나타날 정도로 무서운 독성을 가지고 있다. 천연 독성은 안전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전하지 않다는 건 오해다. 감자뿐만 아니라 모든 식물은 수많은 천연 독성물질을 체내에서 생산한다.
보톡스 미용 시술에 활용되는 보툴리눔(botulinum) 독소도 1g만으로도 수십, 수백만 명의 희생자를 발생시킬 수 있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강력한 독소 중 하나다. 그러나 까다로운 제조 과정과 적정 용량의 사용으로 미용과 치료 목적으로 안전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농약을 사용해 건강한 작물을 재배해도 수확 농산물에 농약이 전혀 남지 않는다는 가정은 이상적인 만큼 어떻게 농약을 농업 활동에 유용하게 사용하면서도 적정한 사용 기준선을 정하고 엄격히 관리하느냐가 중요하다.
# 농산물 잔류농약, 점점 분해돼 사라져
농약은 살포 시 많은 양은 바람에 실려 대기 중으로 날아가거나 지면에 떨어진다. 작물에 부착되는 양은 5~20%에 불과하지만 그마저도 3~10일 이내에 비, 바람, 태양빛 등에 의해 분해돼 사라진다.
작물 내부로 침투한 농약도 미생물 분해, 체내 대사 작용 등에 의해 분해되고 옅어져 점차 소실된다. 이런 이유로 농약의 잔류량은 농약을 얼마나 자주 살포했는지 보다 시기가 더욱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품목별 또는 제품별로 정해진 농약 안전사용기준에 따라 수확 전 농약 최종 살포 완료일을 준수해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농작물의 뿌리에서 농약을 흡수하기 때문에 최종 수확물에 누적된다는 말도 있지만 이는 근거 없는 낭설이다. 각 농약의 품목별 또는 제품별로 안전사용기준이 있는데 이에 따라 올바르게 농약을 사용했다면 안전하다. 밭에 농약을 뿌리고 일정 간격으로 6회 이상 흙을 채집해 잔류농약 분석 시험과 안전성 확인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농약을 등록할 수 있어서다.
# 우리 식탁 오르는 농산물, 안전관리 ‘파란불’
현재 농약의 잔류와 관련해선 농촌진흥청(이하 농진청)과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로 이원화해 규제·관리하고 있다. 농약 등록 단계에선 농진청이 작물잔류성, 환경오염 관련 사항을 평가하고, 농약 사용에 따른 농작물 잔류 조사는 식약처와 식약처 산하 시·도 보건환경연구원이 담당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2022년 농산물 등 안전성조사 결과’에 따르면 생산단계의 농산물 3만5848건을 조사한 결과 잔류농약 부적합 건은 1.87%이며 즉각 폐기 또는 출하연기 됐다. 유통·판매단계에서 농산물 8481건 중 부적합은 28건으로 비중은 전체의 0.33%로 떨어졌다. 소비자의 식탁에 가까워질수록 부적합 비중은 훨씬 줄어드는 것이다.
매년 시행되는 잔류농약 안전성 조사에서도 약 1~2%의 잔류농약 부적합 건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농산물이 잔류허용기준을 밑도는 수준에서 안전하게 유통·판매되고 있다.
농약잔류허용기준은 농작물 재배 시 기준치에 맞춰 농약을 사용해 수확한 농산물에 잔류하는 농약의 양과 해당 농약의 일일섭취허용량(ADI, Acceptable Daily Intake), 국민의 평균 체중, 국민 개개인이 하루에 먹는 식품의 양 등을 모두 고려해 설정한다.
일일섭취허용량은 사람이 매일 평생동안 섭취해도 안전성에 문제가 없는 양을 말한다. 일일섭취허용량 자체가 엄격한 기준 하에 설정되는데 잔류허용기준은 이의 80%를 넘지 않는 수준에서 설정되고 있으니 잔류농약으로부터의 안전성을 판가름 짓는 기준이 매우 높은 셈이다.
2022년 1월 기준 잔류허용기준은 농약성분 519종 1만458건에 대해 설정돼 있다.
# 잔류농약 관리체계, 신뢰할 만한가
농업 현장에서도 농산물의 잔류농약 안전성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한 노력은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농약 ‘허용물질 목록 관리 제도(PLS)’를 도입해 2016년 12월 견과종실류와 열대과일류에 이어 2019년 1월 모든 농산물에 대해 적용하고 있다.
PLS는 농약 잔류허용기준이 설정되지 않은 농산물에 대해 잔류허용기준을 농약 불검출 수준인 kg당 0.01mg으로 일률 적용하는 제도다.
그간 농업인들은 경험에 의해, 다른 사람의 추천에 의해 농약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재배작물의 병해충 등록사항과 포장지 표기사항을 반드시 확인 후에 사용해야 한다는 인식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또한 농약별 등록된 작목과 적용대상에만 사용하고 사용시기와 횟수를 엄격히 준수하면서 생산단계에서부터 잔류농약 관리가 가능해지게 됐다.
이는 국내 농산물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는 의미도 있지만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수입 농산물의 잔류농약에 대한 관리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다. PLS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무분별한 농약의 오·남용을 방지하고 안전성이 검토되지 않은 농약을 수입단계부터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