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주민 개발 주도로 사업 추진·소득기반확보
매뉴얼 마련은 '과제'

[농수축산신문=김동호 기자]

 

단군 이래 최대규모의 어촌개발사업으로 주목을 받았던 어촌뉴딜300사업. 어촌뉴딜사업은 주민이 주도하는 상향식 사업구조로 구성됐으나 어업인이 마을 개발을 주도하기에는 역량이 부족한 상태로 시작해 많은 한계를 드러냈다.

이 가운데 주목받은 사업이 300개소의 어촌뉴딜사업 대상지 중 단 3개소에만 시범 적용했던 리빙랩 사업이다. 위‧수탁기관에 의한 개발사업이 아닌 전문가들이 주민 주도로 마을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지원한 만큼 많은 성과를 낸 사업이다.

3개소의 어촌뉴딜 리빙랩 사업 대상지의 사업성과와 향후 과제에 대해 살펴본다.

 

■ [연안 어촌] 충남 태안군 마검포마을

충남 태안군에 위치한 어촌마을인 마검포마을은 80명의 어촌계원이 연안어선을 활용한 어업과 낚시관광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총 8곳 32ha의 마을어장을 활용해 바지락을 생산하고 있다. 마검포항은 서울과 약 142km가 떨어져 있어 낚시관광객이 많이 찾고 있으며 주변에 캠핑장, 네이처월드, 안면도 쥬라기 박물관 등 관광인프라 여건도 있어 가족단위 관광객도 많이 찾는 곳이다.

 

# 4년간 837명 참여

마검포마을의 리빙랩 사업은 2021년 12월 개최된 발족식에서 마을 주민과 지자체, 전문가 등이 참여 한 가운데 사업의 개념과 주체별 역할을 설명하고 기존에 수동적이었던 논의체계를 주민주도로 변경했다. 사업초기 마을 주민들의 적극적 참여를 이끌어내는데 한계가 있었으나 리빙랩을 추진하면서 주민들의 참여가 높아졌다. 마검포마을은 지난 4년간 11회에 걸친 어촌현장포럼과 6회의 전문가 컨퍼런스, 37회의 지역협의체회의를 거쳐 어촌개발사업이 주민들의 삶의 질 개선과 소득증대로 이어지도록 했다.

마검포마을의 리빙랩 사업은 2022년 기본계획 수립과 고시 이후 지난해까지 본격적인 소득사업 추진을 위한 역량강화와 마을 브랜딩 개발을 추진했다. 주변에 유명한 어촌마을과 경쟁해야하는 입장에서 마검포항의 특색을 나타낼 수 있는 브랜드화가 중요했고 이를 위해 마을 주민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태안군, 전문가가 참여한 가운데 마을 로고, 소득사업별 디자인을 제작해 마을 전체 브랜드화가 가능한 디자인집을 마련했다. 이를 바탕으로 예비운영시 관련제품을 제작하여 활용하기도 했으며 마검포항 협동조합도 설립해 소득사업 운영을 위한 별도 조직체계도 마련했다.

올해에는 소득사업 운영방안을 바탕으로 부녀회가 중심이 된 집중역량강화가 이뤄졌다. 마을 자원을 이용한 레시피를 개발하고 카페 운영을 위한 바리스타 교육도 병행했다. 갯벌체험은 어촌계가 자비로 어민회 사무실을 개조, 세척장을 만들고 어촌계 사무실을 빌려 매표소로 개조했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 8월부터 지난달까지 예비운영을 추진한 결과 갯벌체험의 경우 두달간 400만 원의 수익을 기록했다.

# 사업 장애요인 선제적 해결

마검포항의 어촌뉴딜300사업 초반에 부각된 가장 큰 문제는 사업 부지의 문제였다. 부지 일부가 국유지로 한국자산관리공사에서 관리하고 있었으나 협의가 되지 않은 상태였고 해당 부지에 허가받지 않은 어구를 장기간 적치하며 과징금만 3000만 원 이상 부과된 상태라 기본계획 수립이 불가능했다. 예비기본계획에서 부지의 소유관계를 확인하지 않은 채 계획을 수립했고 이 때문에 사업초기부터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이에 한국자산관리공사와 KMI, 어촌계가 지속적으로 협의해 과징금을 적절히 조정, 어촌계가 이를 납부하고 이후 태안군이 해당 부지를 매입해 기본계획을 수립하게 됐다.

 

# 높은 참여율로 안정적 사업추진 기반 마련

마검포마을은 리빙랩 과정을 통해 높은 참여율을 담보할 수 있게 됐고 이를 바탕으로 소득사업을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 리빙랩 추진과정에서는 마을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회의 불참시 별도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겠다는 공감대를 형성, 논의과정에 주민들이 최대한 참여할 수 있도록 했고 그 결과 주민주도의 사업추진이 가능해졌다. 또한 사업 추진과정에서 발생한 갈등은 주민이 참여하고 우선순위를 직접 결정하면서 해결했고 조직간의 갈등은 지자체와 KMI가 직접 참여해 갈등을 조정하면서 안정적인 사업추진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마검포마을은 마을의 차별화를 위한 브랭딩과 주민역량강화를 통해 모든 주민들이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마을 디자인부터 각 소득사업의 디자인, 소득사업에 필요한 품목들의 디자인까지 마무리해 디자인북을 제작했으며 주민들이 실질적으로 소득사업을 운영할 수 있도록 전문가와 함께 역량강화훈련과 현장교육까지 실시해 운영에 어려움이 없도록 했다.

 

■ [도서 어촌] 전남 여수시 유촌‧죽촌마을

전남 여수시의 끝자락에 위치한 거문도는 동도와 서도, 고도 세 개의 섬으로 이뤄져 삼도로 불리워지며 고도를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동도는 면적 3.5㎢와 해안선 길이 12.5㎞를 자랑하는 지역으로 동도의 서쪽으로는 거문도 서도, 동쪽으로는 고도가 있으며 2015년 거문대교 개통을 통해 고도를 중심으로 각 섬들의 상시적 접근이 가능해졌다.

# 1200일간 12회 현장포럼 개최

거문도 지역의 리빙랩사업은 유촌항과 죽촌항, 두 항의 배후마을인 유촌마을과 죽촌마을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2021년 11월 25일 첫 회의를 개최했으며 이 과정에서 두 마을의 리빙랩 사업에서 해소해야할 문제를 확인했다. 두 마을은 하나의 선착장을 활용해 여객선이 접안하고 있으며 접안시설은 마을 사이에 위치해있었다. 따라서 2차 리빙랩 현장포럼에서는 마을 주체별 의견을 모았으며 이 과정에서 어항정비보다는 정주환경과 생활편의시설 부족 등의 문제가 나타났다. 마을특화사업은 마을 진입로의 매력을 높이고 정주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으로 변경, 기본계획이 승인됐다.

사업구조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소득사업을 위한 역량강화가 병행됐으며 소득사업을 운영하기 위한 상품개발과 마을기업 설립 등이 필요하게 됐다. 3차년도 사업 추진과정에서는 어촌뉴딜300사업의 신속한 추진을 위해 어업환경개선사업을 줄이고 마을의 정주환경개선에 초점을 두는 것으로 시행계획을 변경하고 소득사업을 위한 법인설립, 상품개발과 브랜드 창출 등 운영관리 노력까지 이어졌다.

올해는 리빙랩 4차년도로 사업이 추진되는 동안 마을기업의 설립(안)을 마련하고 마을 상품을 개발해 실험을 하고 있으며 동시에 향후 마을 상품을 소포장‧가공해 온‧오프라인으로 판매할 수 있도록 교육과 훈련을 이어가고 있다.

유촌항 어촌뉴딜300사업 리빙랩은 2021년 8월을 시작으로 어촌현장포럼 12회에 458명의 전문가와 지자체, 마을주민이 함께 참석해 열정적인 토론과 합의과정을 거쳤으며 6회 56명 전문가 컨퍼런스 등을 통해 유촌·죽촌마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했다. 또한 지역협의체가 자체적으로 운영되도록 24회 이상 운영회를 가졌으며 마을기업 창업, 상품개발, 마을디자인을 위한 전문워킹그룹도 11회 운영됐다. 다만 유촌항‧죽촌항의 리빙랩 사업은 현장포럼의 개최 횟수보다 취소횟수가 많다. 이는 여객선의 운항횟수와 결항횟수가 비슷한 지역의 여건상 개최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 지역특산물 돌미역 활용한 소득기반 마련

유촌항 리빙랩사업을 통해 유촌마을은 거문도지역의 특산물인 돌미역을 활용해 소득사업 기반을 마련하고 상품 개발과 판매를 위한 마을기업(영어조합법인) 설립을 추진하는 성과가 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위해 지역 관광객이 기념품으로 구매할 수 있는 소포장 상품인 ‘거문도 하트미역’을 개발하고 있으며 전남어촌특화지원센터의 워킹그룹을 통해 상품이 완성되면 전남어촌수산물직거래바이씨(BuySea)를 통해 판매될 예정이다. 또한 죽촌마을 주민들과 협력해 마을기업 설립을 진행하고 있으며 지난해부터 마을기업 검토, 주민 동의, 운영 규약 작성 등 다양한 과정을 거쳐 내년에 법인이 설립될 예정이다. 이와 함께 거문도 동도의 고유성을 나타내는 대표 브랜드(BI)를 개발해 사품 3종과 상품 포장지 등에 적용함으로써 지역 특산물을 판매하여 소득을 높이는 노력을 하고 있다

# 도서지역 어촌마을의 생활환경 개선 ‘집중’

유촌항‧죽촌항 리빙랩은 12회의 현장포럼을 통해 지역주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생활환경개선사업에 집중하는 것으로 사업을 재구성했다. 마을주민들과 전문가, 지자체 등이 현장에서 마을을 진단한 결과 이같은 문제를 공동으로 인식했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과정에서 어촌뉴딜300사업의 예비사업계획상 사업중 타당성이 부족한 사업들을 없애고 안전한 조업환경 조성을 위한 부잔교 설치, 어선수리장 건조 등 공통사업으로 변경했다. 그 결과 어촌계 사무실과 외국인종사자의 쉼터가 있는 ‘유촌한마음센터’를 건립하고 해녀 등 어업인을 위한 안전쉼터와 교육장 등 어촌마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사업으로 재편할 수 있었다. 이같은 사업재편은 섬 어촌지역 주민의 복지와 안전을 우선시해 생활환경을 개선하고자 하는 목표를 반영한 것이다.

아울러 유촌항‧죽촌항 리빙랩사업과정에서는 사업 초기에 발생할 수 있는 인·허가 문제를 사전에 해결해 사업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위해 방파제 실측 측량을 통해 지적현황과의 차이를 조정하고 방파제 내 대합실과 오폐수 처리시설을 설치했으며 공유수면 점사용에 대해 여수청과 기본계획에서 사전에 협의를 마쳤다. 아울러 동도 해안쉼터의 인허가 문제는 산지 관리법에 따라 사전 검토를 거쳐 필요한 절차를 해결해 사업지연 요소를 제거할 수 있었다.

 

■ [도시형 어촌] 울산 북구 우가마을

우가항은 울산광역시 북구 당사동에 위치한 작은 어촌마을이다. 우가어촌계는 35명의 어촌계원으로 소규모 어선어업과 51.7ha 마을어장에 고령의 해녀들이 나잠어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자연산 돌미역을 건조‧판매하는 것이 주 소득원이다. 인구밀도가 높은 도심과 30분 거리에 위치해 도시민들이 주말에 여가활동과 수산물 소비 등을 목적으로 연평균 약 60만 명 정도가 우가항을 찾는다.

 

# 1166일간 1364명이 참여

우가마을은 2021년 10월 27일 첫 회의부터 난관이었다. 주민과 지자체, 전문가 등 참여주체에게 리빙랩의 개념을 이해시키고 각자의 역할과 책무를 규정하는 것부터 쉽지 않은 과제였다. 약 2개월간이었던 1차년도 사업에서는 모든 참여주체가 현장의 문제를 발굴하고 이를 논의‧합의‧이행‧점검하기 위한 ‘라뽀(Rapport)’를 형성하는 과정이었다.

용역사 중심의 역할과 의존에 익숙했던 지자체와 위‧수탁기관의 소극적인 태도와 지속가능한 주민의 적극적인 동참을 이끄는 일은 여타의 농어촌마을사업과 다르지 않았으며 무엇보다도 가장 큰 난관이었다. 2차년도부터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어촌뉴딜사업을 필요한 사업 중심으로 재구조화하는 작업을 통해 선제적인 운영관리 방안을 마련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고 3차년도 사업에서 소득사업을 위한 법인 설립, 상품개발과 브랜드 창출, 어촌관광 재건 등 운영관리를 위한 구체적인 노력이 이뤄졌다. 마지막해인 올해에는 인프라가 갖춰지면서 향후 줌니들이 자력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하는데 맞춰 추진됐다. 이 과정에서 총 36회의 어촌 현장포럼, 6회의 전문가 컨퍼런스, 20회의 주민협의체 회의, 21회의 워킹그룹 회의 등에 1364명이 리빙랩에 참여했다.

 

# 성과를 바탕으로 주민 참여동력 유지

우가마을의 리빙랩사업은 각 단계별 사업과정에서 주민주도의 의견수렴 과정과 유‧무형의 산출물을 도출하고 이후 수정‧보완과 환류과정을 통해 주민 스스로가 사업주체로서 자부심과 참여의식을 높게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선행됐다. 이는 돌미역 가공‧판매를 위한 영어조합법인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잘 나타난다. 법인 설립을 위한 주민 합의과정과 조합원 모집, 자부담 설정, 정관 작성, 합의과정, 관련 교육이수(식품위생 교육), 상품개발과 홍보마케팅, 예비운영(사업자등록증, 영업신고증, 통신판매업 신고증) 등 행정사, 주민, 관련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이행함으로써 사업동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 주민이 결정하는 어촌개발

우가마을의 리빙랩 과정에서는 어촌주민들이 전문가와 지자체 등과 함께 직접 현장을 다니면서 어촌의 현안을 진단하고 희망사항을 적극 제시했다. 이를 바탕으로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사업을 신속하게 진행해 효능감을 경험하도록 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불법 해루질을 막기 위해 해루질객의 동선을 고려해 CCTV를 설치하고 해안 도로와 마을간 단차로 마을이 잘 보이지 않았던 문제를 해소하고자 마을의 랜드마크를 설치하는 동시에 안전성도 높였다. 또한 월파를 막기 위해 파제벽의 높이를 조정하고 높은 옹벽노출로 인한 매력성을 높이는 방안이 마련됐다. 이같은 방안들은 전문가나 용역기관이 제시하는 방안을 마을 주민들이 단순히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의사결정이 아니라 주민들이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 마을의 현안을 직접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줬다. 특히 파제벽, 옹벽, 랜드마크(마을 사인, 해녀 동상) 등은 공공디자인을 적용해 향후 많은 도시민과 관광객을 유인할 수 있도록 매력성을 창출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 돌미역 소포장‧해녀체험 등 소득사업 창출

우가마을의 핵심은 돌미역의 상품화와 해녀체험 바다정원을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로 개발, 부가가치를 높이는 사업이다. 돌미역은 큰 미역을 중간상인에게 판매하는 대신 포장단위를 줄이고 브랜드화해 이를 온라인과 판매장을 통해 판매함으로써 단위중량당 판매가격을 2.4배 높일 수 있었다. 특히 소포장 과정에서 발생하는 돌미역 가루를 모아 국수를 또다른 상품으로 만들 수 있게 됐다.

또한 어항기능을 상실했던 아랫우가항은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중단된 어촌체험으로 다시 살렸다. 기존의 어촌체험을 바다정원과 해녀체험으로 재정비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안정적인 사업정착을 도모하고자 예비운영을 통해 보완사항을 마련하고 주민들의 자신감도 높였다.

 

[기고] 어촌형 리빙랩 시범사업 적용이 어촌정책에 남긴 과제

- 박상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어촌연구부장

해양수산부가 2019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어촌어항재생사업은 소멸위기의 어촌사회에 온기를 넣을 수 있을 것이라는 큰 기대감으로 시작됐다. 섬에서 도시지역에 이르기까지 낙후되고 소외됐던 총 300개 어촌마을에 취약한 인프라를 확충·정비하고 특화사업(소득원 창출 등), 소프트웨어사업 등에 3조 원의 재정이 투입되고 있다. 하지만 어촌의 초고령화와 부족한 역량은 지역협의체를 통한 소위 ‘상향식 주민주도형 사업방식’에도 불구하고 어촌현장에서 노출된 한계점을 보완하고자 추진했던 어촌형 리빙랩이 남긴 의미와 과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리빙랩(Living-lab)은 일반적으로 ‘일상생활의 실험실’로 통용되며 구조적이고 지속 가능한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이해관계자들이 다양한 방법과 수단으로 삶의 현장에서 사회혁신을 일으키는 방식을 말한다. 어촌분야에서도 어촌어항재생사업 3개소(도시어촌, 연안어촌, 섬어촌)에 각각 리빙랩을 시작했고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3년 넘게 촉진자로서 참여했던 필자를 비롯한 사업책임자들은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진 참여주체의 참여와 역할을 이해시키고 리빙랩 과정에서 명확한 이행‧점검 체계를 구축하는데 긴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리빙랩 참여주체들 간에 소위 말하는 ‘라뽀(Rapport)’, 즉 상호 신뢰관계가 형성돼 기대 이상의 결과도 있었지만 리빙랩이 오히려 사업을 지연시키고 일을 어렵게 만든다고 불만을 가진 사람도 적지 않았다. 어찌 마을사업이 순탄하게만 진행될 수 있겠는가? 어찌보면 주인없는 마을사업에 책임감을 갖고 매 순간 최선의 노력을 기대하는 것은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지난 3년 넘는 동안 어촌형 리빙랩에 매달렸던 결과 긴 기간이 요구되는 어촌어항재생사업과 어촌공동체 특성을 기반으로 △어촌현장포럼 △전문가 컨퍼런스 △지역협의체 △워킹그룹 등 4종 협의체를 통해 어촌현장의 난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았다고 자평할 수 있다.

어촌형 리빙랩이 효과적인 사업방식이라 하더라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되는 사업현장에서 우리에게는 어촌형 리빙랩을 선봉에서 이끌 수 있는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촉진자(Accelerator)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촌에서 리빙랩을 이끌 수 있는 촉진자가 전혀 없었던가? 어촌에서 새로운 희망과 발전 가능성을 보고 현장에 뛰어든 사람들이 결코 적지 않다. 필자가 만났던 많은 마을사무장, 지역활동가, 청년귀어인 뿐만 아니라 맡은 바 최선의 노력으로 어업인과 함께 대안을 만들고자 노력했던 전문가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에너지와 열정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는 시스템과 매뉴얼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자문해 본다.

소멸위기의 어촌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어촌어항재생사업 등 재정투자가 ‘밑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표현하는 혹자들도 있다. 준비되지 않은 어촌에 급작스럽게 쏟아부은 투자는 어촌공동체의 부족한 역량과 참여주체의 경험부족으로 크고 작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특히 주민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한 생활서비스(복지) 시설 또는 소득시설 등 하드웨어 조성에 매몰되면서 운영·관리계획이 부실, 여기저기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도 결코 늦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여 주장해 본다. 어촌어항재생사업을 포함한 수산어촌 관련된 사업이 완료됐거나 예정인 곳에 선별적인 어촌형 리빙랩 확대 적용해 획기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우선 어촌형 리빙랩의 성과와 한계를 정리하고 유관기관, 용역사, 전문가 등이 사업과정에서 적용할 수 있는 ‘어촌형 리빙랩 추진 매뉴얼’과 홍보교육 과정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어촌형 리빙랩이 수산사업과 어촌어항개발에 효율적으로 적용돼 철저한 사전준비가 선행되고 이후 인프라가 조성돼 한 푼의 국민 혈세도 낭비되지 않도록 개선이 필요하다.

어촌문제는 오랜기간 축적돼 나타나는 문제들이 많다. 결코 성급한 처방과 하는 척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어촌형 리빙랩이 어촌현장 문제를 해결하는데 조금 느릴 수 있겠지만 부산말로 ‘단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어촌형 리빙랩이 어촌정책에 남긴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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