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격리 통한 쌀값 안정 등 기존 방식 ‘한계’...자생력 있는 산업 구조로 전환할 때

8만ha 감축 위해 재배면적 조정제 시행
양 중심 생산체계를 고품질 쌀 생산체계로 전환
민간 신곡 소비 확대 위해 신규 수요 창출 나서
단일품종·고품질 중심으로 유통구조 전환
생산부터 가공·유통까지 R&D 기반 확충

[농수축산신문=박유신·이한태·이문예 기자]

정부가 구조적 공급과잉 상태에 직면한 쌀산업을 전면 개편하기로 해 주목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12일 쌀산업을 소비자 수요에 맞는 고품질 쌀 적정생산 체계로 개편하기 위해 내년부터 2029년까지 향후 5년간 추진하게 될 쌀 산업 구조개혁 대책을 마련·발표했다.

쌀 산업이 생산보다 소비량 감소율이 더 큰 구조적 공급과잉 상태에 처하면서 정부의 시장격리 등의 수급안정대책에도 불구하고 쌀값 불안정이 반복되는 상황을 근본적으로 타개하겠다는 게 농식품부의 설명이다.

최명철 농식품부 식량정책관은 구조적인 쌀 공급과잉을 해소하고 관행적 생산체계를 소비자가 원하는 고품질·친환경 체계로 전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쌀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쌀값 안정에도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도록 정책 과제를 차질없이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국내 쌀산업이 처한 상황과 벼 재배면적 감축 품질 고급화 신규수요 창출 산지유통 경쟁력 강화 연구개발(R&D) 기반 확충 등 주요 대책을 살펴보고 쌀 생산농가의 의견을 들어봤다.

 

# 구조적 공급과잉 타개 위해 시장기능 작동하는 산업구조로 전환 추진

지난해 쌀 재배면적은 708000ha3702000톤이 생산돼 수요예측량보다 95000톤이 많았다. 올해 역시 정부의 재배면적 감축 기조 속에 698000ha까지 감소한데다 작황마저 좋지 않아 생산량이 3585000톤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수요량보다 56000톤이 많은 상황이다. 반면 쌀 소비량은 매년 감소해 201861kg이었던 1인당 쌀 소비량은 지난해 56.4kg까지 떨어졌다.

문제는 쌀 생산량 감소율보다 소비량 감소율이 더 큰 구조적인 과잉생산 구조를 갖고 있어 정책적으로 한계에 봉착한 상황이라는데 있다.

정부는 이번 쌀 산업 구조개혁 대책에 대해 시장격리를 통한 쌀값 안정 효과가 제한적이고 전략작물직불제 등 기존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쌀산업을 시장기능이 작동하는 자생력 있는 산업 구조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라는 판단 아래 대책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쌀 산업 구조개혁 대책은 크게 생산부문에서는 수급안정을 위한 벼 재배면적 감축과 고품질 생산체계 구축, 소비부문에서는 쌀가공식품 다양화·기능성 확대를 통한 신규수요 창출, 유통부문에서는 고품질 유통구조 전환을 통한 산지유통 경쟁력 강화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 8ha 감축 목표로 재배면적 조정제시행

우선 내년에 벼 재배면적 8ha를 감축하기 위해 재배면적 조정제가 처음으로 시행된다. 농가별 타작물, 친환경 전환 등을 통해 현재 698000ha인 재배면적을 618000ha로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농업농촌공익직불법 개정을 통해 감축을 이행한 농가 중심으로 기본직불금 인센티브 부여 등을 검토할 예정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달 중 각 시·도가 조정면적을 기초로 자체 감축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고 내년 1월 농가별 조정면적안 사전통지와 이의신청 기간을 운영한 후 내년 2월 농가별 재배면적 조정 면적 통지서를 발송할 계획이다. 이후에는 수확기 이전까지 시·도별 자체계획에 따라 감축 실적을 관리해 나갈 예정이다.

 

# 전략작물·타작물 재배 SOC 지원 확대

타작물 전환을 위한 지원도 강화하기로 했다.

전략작물 지급단가를 내년에는 ha당 하계조사료는 430만 원에서 500만 원으로, 밀은 50만 원에서 100만 원으로 상향하고 신규 품목으로 깨를 추가해 ha100만 원의 직불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더불어 식품기업과 연계한 제품개발을 활성화하기 위해 전략작물산업화 지원을 올해 4526400만 원에서 내년에는 533800만 원으로 늘리고 신규사업으로 200억 원을 투입해 콩 가공시설도 조성하기로 했다. 이밖에 내년에는 신규로 10개의 콩단지 배수개선 지구와 1개의 범용화 용수공급 지구를 조성, 작목 전환을 위한 타작물 사회간접시설(SOC)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간척지 역시 내년부터 신규 임대나 계약갱신 간척지의 일반벼 재배를 제한해 나가기로 했다.

 

# 고품질 쌀 전문생산단지 지정·양곡표시제 개편 추진

()’ 중심의 생산체계를 소비지 시장이 원하는 고품질 쌀 생산 체계로 전환한다.

고품질 품종 중심으로 50~100ha 규모의 고품질 쌀 전문생산단지를 내년에는 시·도별 1개소씩 지정하고 2029년까지 2개소로 늘릴 계획이다. 또 내년에는 맛, 향 등 품종별 특성을 부각한 단일품종·인증쌀 마케팅을 추진하기로 했다.

정부 보급종 체계도 소비자 수요 중심으로 개편해 15개 내외의 최우수 품종을 신규 선정하고 2029년까지 정부 보급종 비율을 90%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친환경 벼 재배면적을 202968000ha 목표로 확대하기 위해 내년부터 공공비축·직불제를 개편하고 공공비축 매입단가 인상과 물량 우선 배정, 친환경 벼로 전환 시 공공비축 전량 매입(최대 15만 톤) 등 친환경 벼 재배를 유도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 친환경농업직불 논 단가도 내년에 ha25만 원 인상, 유기재배는 95만 원, 무농약재배는 75만 원, 유기지속은 57만 원을 지급한다.

특히 내년에는 고품질 쌀 생산·유통 확산을 위해 양곡표시제 개편이 이뤄진다. 이를 통해 현재 임의 사항인 단백질 함량 표시를 의무 사항으로 변경하고 쌀 등급 중 ’, ‘보통대상으로 싸라기 최고 혼입 한도를 하향조정할 계획이다.

 

# 시장에 기반한 신규 수요 창출에 나서

민간의 신곡 소비가 확대되도록 신규 수요 창출에 나설 방침이다.

그 일환으로 내년에는 식품기업의 민간 쌀 활용을 확대하기 위한 제도 개선을 추진, 정부양곡에서 민간 신곡으로 전환하는 식품기업은 정책자금 우대 혜택을 줄 계획이다. 이를 위해 내년 예산으로 식품외식종합자금 1634억 원, 농식품글로벌육성지원자금 4582억 원 등이 책정됐다. 또한 2026년에는 식품기업·미곡종합처리장(RPC) 연계 수출·가공용 생산단지를 2개소 시범 구축하고 내년부터 가공용 정부양곡 공급을 국산 신곡 사용물량과 연계하는 방안 마련과 가공밥류의 정부양곡 공급 단계적 제한도 추진하기로 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전통주와 관련해서도 내년부터 주세 감면 구간, 신제품 개발 촉진을 위한 지역특산주 주원료 기준 완화 등 산업 육성을 위한 세제 혜택 강화와 규제 완화를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특히 케이-푸드(K-Food) 인기에 힘입어 성장 중인 쌀가공식품 수출을 202918만 톤을 목표로 확대하기 위해 K-쌀가공식품 수출 홍보관 신설, 온라인 기업간거래(B2B) 판매관 확대, 싱가폴 등 신규 밥쌀용 쌀 수출시장 확대, 아프리카·아시아를 중심으로 식량원조 물량 확대 등을 도모할 계획이다.

이밖에 초등학교 대상 곡물체험학교를 영유아 대상으로 확대 운영하고 과학적 데이터를 활용한 쌀의 가치 홍보를 통해 소비 확대에 나선다.

 

# 고품질 생산이력제 도입·시장교란 행위 제재 등을 통한 산업체질 개선

산지유통에 있어서도 단일품종·고품질 중심으로 유통구조를 전환하기 위해 2026년부터 고품질 쌀 유통 RPC 지정과 고품질 생산이력제를 시범 추진하고 정부지원 RPC는 단일품종·고품질 쌀 중심 유통체계로 개편해 현재 42%RPC 판매액 중 혼합품종 비율을 2029년까지 10%로 낮출 방침이다.

이와 함께 내년에는 RPC 양곡사업 회계정보 공시·경영계획서 제출을 의무화하고 수급상황과 맞지 않는 과도한 저가판매, 재고 허위신고 등 시장교란 행위에 대해서는 벼매입자금 차감, 공공비축미 배정 제외 등 정부 지원사업에서 페널티를 부여하는 등 시장 거래질서를 교란하는 행위에 대한 제재와 함께 RPC 이익을 농가에 환원하는 비율에 따라 정부지원 사업을 우대하고 생산자와 RPC 간의 수탁거래도 활성화해 나갈 계획이다.

정부양곡 체계와 관련해서는 정부양곡 도정공장 진입장벽을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완화하고, 식량원조용 쌀 공급 과정에서 민간 유통주체의 역할을 확대하기로 했다.

 

# 쌀산업 전반에 대한 R&D 기반 확충

생산부터 가공·유통까지 쌀산업 전반에 대한 R&D 기반 확충에 나서기로 했다.

이를 위해 내년에 쌀 적정생산을 위한 비료 저감 재배기술 실증과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지역별 전략작물 이모작 모델과 논콩·유지작물() 생산기술 개발에도 나설 계획이다. 또 내년부터 외국인 수요가 높은 장립종 품종개발을 신규로 추진하고 저혈당 등 메디푸드 식품 등에 대한 소재화·제품개발 지원을 실시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 농식품부는 내년부터 R&D 현장의 애로를 해소하기 위해 쌀가공식품 R&D 협의회도 운영하기로 했다.

 

# 급격한 재배면적은 감축, 쌀산업 위축·농가경영 악화 경계해야

이 같은 정부 대책에 쌀관련 생산자 단체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쌀산업 위축과 농가경영 악화를 우려하며 신중을 기해야 함을 강조했다.

조희성 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장은 쌀 재배면적을 8ha 감축함에 있어 하계작목은 콩, 가루쌀, 조사료 등으로 기타 작목은 전략작물선택직불에서 제외돼 농업인의 선택 범위가 좁고 생산소득 감소가 예상된다쌀 생산량 감소에 따라 공급물량이 부족해져 쌀값이 오를 경우 정부가 가격 억제 정책을 시행할 것이란 염려와 급격한 면적조정에 따른 산업 위축과 농가경영 악화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문병완 농협RPC전국협의회장(보성농협 조합장)수도작 위주의 농지를 타작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돕는 농지 범용화는 좋은 대책이지만 농가가 스스로 작목을 판단할 수 있는 선택지는 확대됐으면 한다이와 함께 수매해서 이고하지 않고 현미로 보관하는 등 관리비용을 줄이는 방안과 대체작목의 과잉생산 우려에 대한 대책, 수확후관리 등을 통한 쌀 품질 고급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최흥식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장은 쌀 재배면적 감축 방침에 속도조절을 강조했다.

최 회장은 “8ha가 결코 작지 않은 규모인데 내년 첫 시행에 한번에 감축하겠다며 다소 성급하게 밀어붙이는 측면이 있다벼 재배면적 감축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유예기간을 두고 연차적 계획에 따라 차근히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책 추진이 조금 늦어지더라도 주요 과제들의 실효성을 면밀히 따져보고 보다 체계적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쌀산업구조개혁대책에 대한 검토의견을 통해 농가의 책임이 아니라 정부의 역할이 강조돼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공익직불제 기본계획()에도 직불금 수령농업인에게 재배면적 조정의무를 부여하고 미이행시 직불금 지급제한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포함시키는 등 벼 재배면적 감축방안의 강제성에 우려가 크다대체작목의 생산, 유통, 판로 확보가 선행되지 않을 경우 작목 전환농가의 피해가 우려되는 만큼 충분한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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