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굴 등 주요 수출품목에 대해 강제노동 여부 등 사전 점검과 개선조치 필요
폭력·임금착취·과도한초과근무·여권압류·열악한 생활환경 모두 강제노동으로 간주
ILO기준에 부합하게 근로환경 개선해야
임금지급·근무시간·근로계약서 등 체계적 기록으로 생산자가 노동환경 입증 시스템 구축해야
정부·해수부 중심 감독인력·매뉴얼 확보도 필요

[농수축산신문=김동호 기자]

강제노동 등과 관련한 노동규범이 수산업 전반으로 확산되는데 대응, 사전점검과 대책마련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연안어선에서 외국인 어선원이 조업을 하고 있는 모습.
강제노동 등과 관련한 노동규범이 수산업 전반으로 확산되는데 대응, 사전점검과 대책마련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연안어선에서 외국인 어선원이 조업을 하고 있는 모습.

 

미국 정부가 태평소금의 수입을 금지하며 수산분야에서 노동규범에 보다 발빠르게 대응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은 현지 시각 지난 3일 태평염전에서 소금이 생산되는 과정에서 강제노동이 있었음을

인정해 태평염전에 대해 인도보류명령(Withhold Release Order)을 발령했다. 인도보류명령에 따라 태평염전에서 생산된 모든 천일염 제품은 명령의 해제시까지 미국으로 수출이 불가능해진다.

태평염전에서 생산된 천일염의 금수조치는 시작일 뿐 앞으로 노동규범이 수산분야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 인신매매 등급강등에서 수입금지까지

천일염 산업은 2014년 이른바 ‘염전노예’ 문제가 제기된 이후 노동자의 인권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국내의 인권단체 등에서는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왔는데 특히 2021년에도 유사한 사례가 반복되면서 논란이 커졌다.

미국 국무부는 2023년 인신매매보고서를 통해 염전, 어선 등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의 사례를 직접 들며 2002년 이후 1등급이었던 우리나라를 2등급으로 강등시켰다. 물론 인신매매보고서는 개별 사례가 아닌 정부의 노력을 평가지표로 삼지만 염전 역시 논란이 된 것은 분명하다.

2021년에는 7년 만에 염전을 빠져나온 한 지적장애인 염전 노동자의 사례가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2021년 발생한 강제노동 사건 이후 해양수산부는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 개선조치를 실시했으며 이후로는 신안군 주관으로 고용노동부, 시민단체 등이 함께 참여해 분기별로 점검을 하고 있다.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태평염전은 결국 CBP로부터 인도보류명령을 받았다.

# 통상‧협약‧시장국의 조치로 확산되는 노동규범

천일염 금수조치사태는 천일염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전 세계적인 노동규범의 확산 움직임을 보여주는 한 단면으로 지목된다.

미국과 EU 등 주요국은 전 세계적으로 상품 생산과정에서의 노동자 권리 보호 의제를 규범화하기 위해 나서고 있다. 먼저 통상의 측면에서 노동규범 관련한 논의가 추진되고 있다. 2023년 우리나라도 참여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에도 강화된 노동규범이 제시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포괄적‧점진적경제동반자협정(CPTPP), 미국‧멕시코‧캐나다 자유무역협정(USMCA) 등에서도 강제노동 결부상품의 수입금지, 노동자 폭력 방지 등의 노동규범이 반영되고 있다. 국제협약의 측면에서도 국제노동기구(ILO)의 노동자 권리 관련 협약들이 추진 중이며 특히 수산분야에서는 어선원노동협약(C.188)에서 어선원의 근무조건과 거주구역, 식량, 산업안전보건 등을 다루고 있다.

아울러 수입국의 조치를 통해서도 노동자의 권리보장 요구가 강화되고 있다. 미국은 2022년 6월 27일 바이든 국가안보각서를 통해 불법‧비보고‧비규제(IUU)어업이 강제노동과 범죄, 인권유린에 취약한 만큼 범정부차원의 관리에 들어갔고 같은 해 8월 31일 발표된 국제 어업관리 개선보고서에는 강제노동을 IUU어업의 범위에 포함시켰다. 2023년에는 제임스M. 인호프 국방수권법 제정을 통한 모라토리엄 보호법 일부 개정으로 IUU어업 식별기준에 강제노동과 아동에 대한 억압적 노동문제도 포함시켰다. EU는 공급망 실사법을 통해 인권과 환경에 부정적 영향이 있는지 기업이 실사를 하도록 하는 의무를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역수산기구(RFMO)차원에서도 수산분야의 노동규범 마련을 위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중서부태평양수산위원회(WCPFC)와 대서양참치보존위원회(ICCAT)에서도 강제노동 등 노동규범을 IUU어업의 범주에 포함시키려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박찬엽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전문연구원은 “노동규범은 국제통상에서 의제로 다뤄지고 있으며 ILO 등 국제기구에서의 협약, 시장국의 자국내 시장에 대한 조치를 통해 본격적으로 생산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노동규범 중에서도 요즘 국제사회에서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 것은 강제노동의 문제인데 주요국을 중심으로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상품을 공급망에서 퇴출시키는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어업인 인식과 다른 강제노동

국제사회에서 사용하는 ‘강제노동(Forced labor)’은 국내 어업인들이 인식하는 강제노동과는 괴리가 크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강제노동은 정신상 또는 신체상 억압으로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억지로 행해지는 노동을 의미하며 근로기준법 7조는 사용자로 하여금 폭행, 협박, 감금, 그밖에 정신상 또는 신체상의 자유를 부당하게 구속하는 수단으로 근로자의 자유의사에 어긋나는 근로를 강요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반면 ILO의 강제노동 지표는 보다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ILO의 강제노동 지표는 △이동제한 △신분증 압류 △협박‧폭력 △사기 △임금착취 △열악한 근로‧생활조건 △채무 속박 △과도한 초과근무 등이다.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외국인 근로자의 여권을 사용자인 어업인이 보관하는 것이 흔했으며 근로 또는 생활조건이 열악한 곳도 생각보다 많다. 또한 업종에 따라 노동시간이 과도한 경우가 많으며 외국인 선원제도(E-10) 하에서는 선원의 송입비가 과도하게 발생하기도 한다.

즉 국내의 어업인 등은 폭행이나 억압 등을 통해 강제로 일을 시키는 것만을 강제노동으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ILO에서는 협박과 폭력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구속, 열악한 생활환경, 과도한 근무도 강제노동의 일환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 주요 수출품목 중심으로 사전점검 이뤄져야

국제적으로 노동규범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면서 주요 수산물 수출품목을 중심으로 사전적인 점검을 통해 강제노동 등이 논란이 되지 않도록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태평염전의 사례처럼 강제노동으로 시장국의 수입금지조치가 이뤄질 경우 직접적인 수출감소 피해 뿐만 아니라 국내산 수산물의 평판이 하락, 수출시장 확대에 악영향을 미칠 공산이 크다. 이 가운데 미국은 우리나라와의 교역 중 수산물에서도 무역수지가 적자를 기록하고 있어 세밀하게 들여다볼 가능성도 제기된다.

따라서 김, 굴 등 주요 수출품목부터 우선적인 사전점검과 이를 바탕으로 한 개선조치를 통해 피해를 사전에 예방해야한다는 것이다.

정명화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수산정책연구실장은 “미국은 노동인권문제를 IUU어업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으며 USMCA나 IPEF에서도 지속적으로 노동규범을 논의하고 있는데 이는 공정한 무역을 위해 강제노동을 억제하기 위한 실효성있는 제재조치를 국가가 마련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이같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사례처럼 수산업계가 규범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매뉴얼을 만들고 이를 준수하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임금지급 문제나 채무속박, 과도한 초과 근로 등 ILO가 정한 지표들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을 생산자가 입증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과 절차를 보다 투명하게 마련해야한다”며 “또한 지방노동청에서는 도서지역에 위치한 염전, 양식장, 어선어업 등을 관리‧감독하는데 한계가 있는 만큼 해수부 차원에서 수산분야에서 강제노동에 대한 규정을 마련하는 동시에 근로감독을 할 수 있는 인력확보 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마창모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수산연구본부장은 “2014년 우리나라가 예비 IUU어업국으로 지정될 당시에는 수산자원에 대한 보존조치 등 환경관련 규범들만 주로 다뤄왔으나 최근에는 인권문제 등으로 그 범위가 확대돼가는 추세”라며 “최근 국제적인 동향을 보면 앞으로는 수산물 이 생태‧환경‧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점을 생산자가 스스로 입증할 것을 요구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마 본부장은 “미국의 강제노동 금지법, 유럽의 강제노동 생산 금지법과 공급망실사법 등 시장국의 노동규범 관련 법률이 제정 또는 개정되는 것을 보면 주요 수입국들이 노동자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즉 결국에는 국내 수산업계도 수출을 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된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해야하는 만큼 단발적인 대책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국제적인 흐름에 따라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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